에드바르트 베르거, 2025
다시 시스티나 성당 굴뚝의 하얀 연기를 기다리는 시절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따뜻하게 미소 짓는 교황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2013년 3월 어느 날 아침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료 추기경이 최초 라틴아메리카, 예수회, 프란치스코란 이름으로 새 교황이 되었다는 소식이 그때는 당황스러웠다.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교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심상치 않은 교황의 행보에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에 빠지고, 교회 안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난 12년은 정말 순식간에 흘러왔고, 교회 안에 많은 일이 있었다.
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어떤 추기경이 새 교황이 될지를 기다리는 시간이 다가왔다. 5월 7일 콘클라베(교황 선거)를 앞두고 참여 추기경의 자격을 비난하는 여론도 있고, 일부 추기경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회의 연속성과 통합성을 아우르는 중요한 일이고, 전 세계인은 몇십 년마다 흥미롭게 지켜보는 행사로 여겨지기도 한다. 다시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기다리는 이 시점에 영화 '콘클라베'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권모술수와 협잡이 판치는 정치 드라마?
콘클라베, '로마의 주교를 뽑는 자리'라는 표현은 무척 겸손하지만, 그로 인해 탄생한 교황은 엄청난 상징성을 지닌, 즉 ‘신의 대리인’으로 표상되는 무거운 자리다. '두 교황'과 '콘클라베'에서 자리를 탐하지 않는 자가 가장 자격을 가졌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영화 속 추기경들은 교황이라는 자리에 대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붉은색 주케토(성직자가 쓰는 동그란 작은 모자)와 망토를 한 무리가 그들 중 한 사람의 복장을 하얗게 바꿔 주기 위해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경당으로 모여든다. 수석 추기경 로렌스는 사임하고자 했으나, 선종한 전임 교황은 사임을 허락하지 않아서 그가 콘클라베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영화 '콘클라베'는 로렌스 추기경, 진보파로 대변되는 벨리니 추기경, 보수파로 대변되는 테데스코 추기경, 중도파 트렘블레이, 아프리카의 아데예미 추기경, 베니테스 비밀 추기경 그리고 아그네스 수녀가 중심 인물들이다.
진보파의 회동에 로렌스도 함께한다. 여기서는 벨리니로 몰아주는 분위기다. 벨리니는 라틴어 전례와 다자녀 가족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고, 성직자가 더 우월하지도 않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겠으며, 교회 안의 다른 목소리를 듣겠고,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여기서 한 추기경이 여성은 언급하지 말자고 하니, 벨리니는 표를 가져오기 위해 자기 견해를 감추지 않을 것이며, 보수파 테데스코가 반대하는 모든 것을 지지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교회가 6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벨리니는 여기까지 꽤 강직해 보인다.
콘클라베 첫째 날 로렌스는 본격 표결이 시작되기 전 강론에서 갑자기 이렇게 말한다. 이 강론은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기도 하다.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에페 5,21) 함께 일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관용이 필요합니다. 어떤 개인이나 세력도 다른 이를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으로 구성된 에페소 신자에게 다가갔던 사도 바오로를 보면서 하느님이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다양함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사랑과 관점의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교회를 강하게 만듭니다. 제가 수년 간 교황청에서 봉사하면서,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화합의 가장 큰 적입니다.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마지막 순간에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주님도 부르짖으셨습니다. 믿음은 살아 움직입니다. 믿음은 의심과 함께 존재합니다. 만약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는 없을 것이고 더 이상 믿음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하시도록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죄를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교황, 그리고 다시 나아가는 교황을 허락하시도록 기도합시다.”
드디어 첫 번째 표결이 시작된다. 아데예미 21표, 테데스코 18표, 벨리니 17표, 트렘블레이 16표, 로렌스 5표, 베니테스를 비롯해 31명이 1표씩 갈린다. 로렌스는 자기에게 5표가 몰리자 벨리니에게 미안함을 표하는데, 벨리니는 로렌스에게 야심이 있는 줄 몰랐다며 살짝 몰아붙인다. 그러면서 표가 찢어지면 테데스코가 되고 그렇게 되면 전임 교황이 이룬 성과도 무너지며 6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이번 콘클라베의 중요성을 상기해 준다. 로렌스가 아데예미를 언급하자 그는 동성애자는 모두 수감해야 하고, 지옥행으로 믿는 자라며 대안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두 번째 표결에서 아데예미 34표, 테데스코 25표, 벨리니 18표, 트렘블레이 16표, 로렌스 9표, 베니테스 2표가 나왔다. 세 번째에서는 아데예미 52표, 테데스코 30표, 트렘블레이 10표, 벨리니 9표, 로렌스 5표, 베니테스 4표로 아데예미에게 판세가 유리하게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최초 흑인 교황 탄생을 맞이하는 분위기다. 진보파에서는 아데예미를 반동적으로 여기지만 테데스코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듯하기도 한데, 아데예미와 한 수녀 사이에 큰 소리가 오간다. 로렌스는 사누미 수녀를 만나고, 아데예미와 그녀 사이에 아이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하지만 왜 사누미 수녀가 여기에 온 것일까 의심스럽다. 트렘블레이가 그녀를 데려온 정황이 확인이 되어 그 사실을 묻자, 트렘블레이는 전임 교황의 지시였다고 발뺌하며 교황에 야심을 가진 로렌스가 경쟁자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몰아붙인다.
다섯 번째 표결 트렘블레이 40, 테데스코 34, 벨리니 13, 로렌스 11, 아데예미 9, 베니테스 6표. 점차 트렘블레이에게 몰아주는 분위기다. 테데스코를 막기 위해 진보파도 트렘블레이를 지원하는데, 로렌스도 베니테스에게 자기에게 투표하지 말고, 트렘블레이에게 투표하라고 하지만 그는 트렘블레이는 교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전임 교황이 트렘블레이를 해임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로렌스는 결국 금지된 행위를 하고 만다. 봉인된 전임 교황의 처소에 들어간다. 무언가 물증을 찾다가 갑자기 통곡한다. 그러다가 트렘블레이의 성직 매매 비리가 담긴 문건을 발견한다. 이를 들고 벨리니를 찾아가지만, 그는 시큰둥하고 이 사실을 묵인할 것을 요청한다. 거기엔 교회를 보호하자는 명분이 있었지만, 트렘블레이와 일종의 거래가 있다는 것도 로렌스는 포착한다. 로렌스는 벨리니에게 실망을 표한다.
로렌스는 추기경들 앞에서 트렘블레이의 비리와 그가 아데예미를 물먹이기 위해 사누미 수녀를 데려왔다는 걸 폭로한다. 이때 아그네스 수녀가 로렌스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이제 트렘블레이도 물건너간다. 벨리니는 로렌스에게 사과하며, 꿋꿋한 자네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며 교황으로 밀어줄 것을 시사하며 지향하는 교황 이름을 정하라고 한다.
결국 인간이 하는 ‘하느님의 일’ 그 한가운데 신의 섭리가 작동한다면
어떤 교황을 뽑을지 수 싸움을 하고 합종연횡을 하고 이렇게만 흘러갔다면 정치 스릴러물이 되고, 이 영화는 반쪽짜리가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 야심이 전혀 없던 로렌스는 결국 자신인가 싶기도 하고, 그것이 하늘의 뜻인가 싶기도 하고, 내심 반기는 듯하면서 교황 명으로 ‘요한’을 거론한다. 요즘 한국 정치계에서 유행하는 ‘난가병’처럼, 요한 24세를 준비하며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투표지에 자기 이름을 적어 낸다.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는 순간, 폭탄 테러로 시스티나 경당이 아수라장이 된다.
투표는 중단되고 추기경들은 안전한 장소로 옮겨간다. 테데스코는 생긴 대로 이슬람을 이 땅에 살게 해 주어 이런 일이 생겼다는 둥 막말을 해대기 바쁘다. 이때 항상 내전 중인 곳에서 사목했던 베니테스가 그때 세계 참상의 본질을 말한다.
“여러분은 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아시나요? 저는 콩고, 바그다드, 카불에서 사목 활동을 해 왔습니다. 줄지어 있는 시신들을 보면서 고민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우리가 싸워야 한다고 하셨나요? 무엇과 싸운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오늘 아침 이 사건을 저지른 그 망상에 빠진 자들과요? 아니오, 형제님. 우리가 싸우고 있는 곳은 여기입니다. 여기, 우리 각자의 마음속, 우리가 지금 증오에 굴복하고 편을 나눌 것이 아니라 모든 남성과 여성을 대변해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오게 되었지만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외람되지만 요 며칠 우리는 스스로 작고 하찮은 사람임을 드러냈습니다. 자신들만 생각했습니다. 로마, 선거, 권력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전통도 아니고 교회는 과거도 아닙니다. 교회는 다가올 미래입니다.”
마치 하늘의 진노와 같았던 폭파 뒤, 베니테스의 모두를 각성시키는 이야기가 이 영화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베니테스는 콘클라베 참여가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실현되었다. 물론 베니테스가 의도했던 바와는 방향이 다르기는 했지만. 영화는 투표수를 굳이 헤아리지 않고 곧바로 베니테스가 새로운 교황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교황감이긴 하다. 기도 중에 존재감 없던 수녀들에게 감사 인사까지 전하는 딱 봐도 훌륭한 인품에 헌신적인 인물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청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정의’가 실현된 정치 드라마다.
하지만 베니테스가 교황에 선출된 뒤 또 반전이 등장한다. 베니테스의 비밀이 로렌스에게 뒤늦게 전해진다. 베니테스와 이야기하면서, 전임 교황 또한 그의 비밀을 알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전임 교황의 밑그림이랄까. 결과적으로 그가 뿌린 씨앗의 결실일 수도 있고, 한편에선 신의 섭리가 작용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마지막 반전은 이 영화의 성격을 정치 드라마 그 이상으로 승화시킨다.
영화에서는 가톨릭교회의 고민과 갈등도 비쳐진다. 영화 속 전임 교황은 여러 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우라(기품)가 느껴진다. 이번 콘클라베는 어떻게 펼쳐질까? 베네딕토 16세의 용감한 결단 뒤에 하느님의 참 심부름꾼 프란치스코 교황이 찾아왔던 것 같은 섭리가 작동할지, 교회를 뒤로 돌리는 누군가가 찾아올지 많은 사람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곧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교황 선출 직후 외치는 선언문) 외침 뒤에 새로운 로마의 주교를 맞이한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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