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콘클라베’(Conclave)라고 부르는 교황 선거에서는 교회법적으로 만80세 미만의 추기경들에게만 교황 선출권이 주어진다. 콘클라베는 라틴어 ‘쿰’(Cum, 함께)와 ‘클라비’(Clavi, 열쇠)의 합성어다. 직역하자면 ‘열쇠와 함께’ ‘열쇠로’라는 뜻으로, 그 의미는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한다.

하지만 교황 선거를 처음부터 콘클라베라고 부르지 않았다. 교황 선출방식은 역사의 변화에 따라 그 방식 역시 변천을 거듭했다. 현재처럼 추기경단에게 교황 선출권이 부여되기 시작한 것은 교황 니콜라우스 2세(재위 1058-1061년)가 1059년 교황선출 방식을 개정하면서 부터다. 초기에는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직접 교황을 선출했다. 이후 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획득한 후인 4세기 무렵부터는 황제와 귀족들이 교황 선출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교황 니콜라우스 2세가 교황선출 방식을 추기경단에게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선출은 여전히 세속권력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 결과 교황 클레멘스 4세 (재위 1265-1268년)가 선종한 후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 (재위 1271-1276년)가 선출되기까지 약 3년여 동안 동안 사도좌는 공석으로 비어있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 선출에 있어서 드러난 문제는 세속권력의 간섭만이 아니었다. 교황 니콜라우스 2세가 1059년에 개정한 교황선출 방식은 시간제한을 두지 않아서 그야말로 교황선출은 지난한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 일부 추기경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이가 교황에 선출될 때까지 무기한 교황 선출을 미루기도 했다.

한 예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 (재위 1227-1241년)이 선종한 후 약 2달여 만에 개최된 교황선거에서 로마 귀족들은 새 교황을 빨리 뽑으라며 추기경들을 무너진 궁전에 감금했다. 외부에서 격리된 채 새로운 교황을 뽑는 전통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불볕더위 속에서 두 달 동안 계속된 회의 기간 동안 추기경 한 명이 숨졌고, 새 교황 첼레스티노 4세(1241-1241년)도 후유증으로 선출된 지 16일 만에 선종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약 2년여가 지난 1243년 교황 인노첸시우스 4세(재위 1243-1254년)이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런 폐단은 교황 클레멘스 4세 선종 1268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약 3년 동안 계속된 교황선출 선거에서 추기경 2명이 숨졌다. 이에 새로 선출된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는 이런 폐단을 없애고자 제2차 리옹공의회가 한창이던 1274년 ‘회의 시작 사흘이 지나면 추기경들에게 점심 저녁 중 한 끼만, 닷새가 지나면 빵과 물만 제공하며, 교황을 선출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방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교령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교회에서 공적으로 콘클라베가 시작된 계기다.

현재 교황선출 방식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표한 교황령 <주님의 양떼>(Universi Dominici Gregis)에 따른다. <주님의 양떼>는 교황 선출이 교황 선종, 또는 공석 후 최소한 15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교황 선출에 참석하지 못한 추기경들에 대한 배려차원이다. 또한 교황 공석 20일이 경과한 후에 선거업무를 개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제37조 참조).

교황이 선출되면, 수석 추기경은 밖으로 나와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즉 ‘우리에게는 교황이 있다’고 선언한다. 또한 새 교황은 교황복으로 갈아입고 대중 앞에 서서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 로마와 전 세계에)라는 말로 축복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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