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시작한 '자급퇴비 가농소 입식운동'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와 우리농 생활공동체가 시작한 ‘소입식 운동’이 20년을 맞았다.
10일, ‘자급퇴비 가농소 입식운동’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간담회에서는 지난 평가와 함께, “가농소 입식운동과경축순환농 가치 확산, 자급퇴비 생산을 잇는 농축산물 직거래 나눔 활성화”를 모색하고 앞으로의 20년을 바라봤다.
소입식, 농촌과 도시가 어려움과 감사 함께 나눈 기적의 운동
농민과 도시소비자 간 선순환 공존 가능성 열어
‘가농소 입식 운동’은 도시 본당(성당)에서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에게 송아지를 입식하면, 농민들은 그 송아지를 키워내면서 얻는 소똥으로 자급 퇴비를 만들어 농사 짓고, 성장한 소는 도축해 적당한 시기 입식한 본당에 고기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입식하는 송아지는 6-7개월령으로 일반 축산 농가에서 도축하기까지 키우는 시간의 약 2배인 최소 45개월(약 4년)을 기른다. 사료를 먹이지 않고 무농약 볏집, 쌀겨, 콩깍지, 옥수수대 등 일반 유기축산 기준보다 훨씬 엄격하게 먹여 키우기 때문에 걸리는 시간이다.
‘소입식 운동’은 여러 어려움과 고비를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고, 감소세를 겪고 있지만 ‘소’를 매개로 생명농 유지와 건강한 먹거리 생산뿐 아니라 도시와 농촌, 땅과 사람, 교구와 교구 간 상생 관계, 생명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 장이었다. 또 단순히 질 좋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넘어 지나친 육식 소비를 돌아보고, 똥이 곧 밥이고 생명이라는 가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소입식이 본격화된 것은 2004년이지만 시작은 2001년이다. 명절만이라도 믿을 수 있는 한우 고기를 공급받고 싶다는 서울대교구 목동 본당 우리농 활동가들의 바람, 생명농을 지향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퇴비를 구할 방법이 없었던 가톨릭농민회 농민들의 고민이 맞닿았다. 소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장형 대규모 축사에서 나온 것은 유기농에 쓸 수 없다. 그러니 유기축산 방식으로 키운 소가 필요했고, 서울대교구 우리농 생활공동체는 “자급퇴비 마련을 위한 암송아지 입식 지원”을 제안했다.
그렇게 2004년 4월 서울대교구 목동 성당과 양천 성당, 의정부교구 일산 성당, 부산교구 울산 무거 성당은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봉강분회, 쌍호분회, 월소분회, 한울분회에 각각 송아지 입식 자금을 전달했다. 한 마리에 350만 원인 입식 자금은 우리농 직매장 수익금을 주로 하되, 모자란 것은 본당 지원금이나 모금으로 충당했다.
그 뒤 10년 동안 소입식 운동 참여 도시는 서울, 의정부, 부산, 인천 4개 교구, 28개 본당으로 늘어났고, 입식 기금은 148마리분이 건네졌다. 입식소 농가 규모 역시 2005년 대비 8농가 17마리에서 28농가 354마리로 늘었다. 자급퇴비 생산비율도 입식소를 키우는 농가는 비사육농가(66퍼센트)에 비해 88퍼센트로 높아졌고, 사용량도 5-6배 증가했다. 여러 과정과 경험을 거치면서 ‘도농 간의 약속’, 도농협력모임 운영 규정, ‘가농소 사육 규정’ 등 방침도 마련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 목적처럼 아름답고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시작부터 농민들은 유기축산으로 키운 가농소 고기의 품질이 일반 소고기와 달라 마블링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했다.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입식소 축사도 문제였고, 생각대로 소가 임신을 하지 못하거나 유산, 사산하는 경우, 이른바 손실도 발생했다. 예측하지 못한 큰 어려움도 있었다. 2010년 말 일어난 구제역이었다. 살처분 지역 내 있다는 이유로 병에 걸리지도 않은 건강한 소들을 살처분해야 했다. 당시 안동교구에 입식됐던 소 68마리 중 13마리를 그렇게 잃었다. 하지만 사람과 가축이 함께 비명을 질러야 했던 구제역 사태는 역설적으로 가축을 기르고 먹는 현실의 참상을 알려줬고, 생명순환 중심의 농업, 축산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확인시켰다.
소입식 운동 20년과 현재
10일 좌담회에서 안동교구 가농.우리농 최난희 사무국장은 소입식 운동 현황을 설명했다.
2013년 이후 다시 10년, 그 사이 축산법 개정, 농민 고령화, 사료 수급 어려움 등의 사육 환경 변화는 ‘소규모 분산 사육’을 어렵게 만들었고, 사육 농가 감소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민들은 약속을 지키기 위한 고충들을 감내하고 있다.
2024년 5월 현재, 입식소(가농소) 사육 농가는 24농가에서 9농가로 줄었다. 농민들 상황에 따라 가농소 입식은 2018년부터 본당별 4두, 1년 1마리로 제한해, 현재 25-30마리 규모를 유지하는데, 현재 총 230마리다. 이 가운데는 12개월령 미만 송아지도 포함돼, 어미소는 절반 정도다.
입식 지원 본당/공동체 수도 줄었다. 10주년이던 2013년까지 39개가 참여했지만, 현재는 15개가 참여하고 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소입식에 참여하는 본당/공동체는 서울대교구 6개 본당과 우리농 서초 직매장, 의정부교구 4개 본당, 인천교구 2개 본당, 안동교구 우리농, 우리농생활공동체 OB팀, 왜관수도원이다. 가농소를 키우는 6개 분회는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구천, 솔티, 쌍호, 온혜, 장수, 풍양이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좌담회에서는 솔티분회 이재민 농민, 서울대교구 문정동 성당 우리농 이연수 활동가, 의정부교구 주교좌 의정부 성당 우리농생활공동체 김미경 회장을 비롯해 각 본당 생활공동체 활동가, 농민,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밭에서 나고 논에서 난 작물의 부산물을 소한테 먹이고 소가 싼 똥으로 자급퇴비를 만들어, 다시 토양에 투여합니다. 이렇게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런 걸 ‘경축 순환 농법’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도 계속되도록 하기 위해, 힘 닿는 데까지 소도 먹이고 농사도 짓겠습니다.”(솔티분회, 이재민 농민)
이재민 농민은 “지역순환 자급사료, 자급퇴비 농산물 직거래, 명절 소나눔 등 도시와 농촌이 함께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일궈 온 ‘소입식지원운동’은 특별한 지역, 특별한 이들의 사례가 아니며, 공장형 대규모 축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와 농촌이 함께 노력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또 의정부교구의 월 1회 가농소 나눔, 서울대교구 우리농에서 농민들에게 빌려준 기금을 자급퇴비로 지은 양파로 돌려받기로 한 사례를 들며, “편한 농사, 쉬운 소비를 버리고 뿌리님(농민)들과 꽃님들(소비자)이 서로 만나 의논하고 또 의논하며, 번거롭고 힘든 이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다”면서, “다국적 곡물기업과 축산 자본의 독점에서 해방된 깨끗하고 떳떳한 먹을거리, 땅을 살리고 식량 자급을 희망하는 것이 가농, 우리농 운동”이라고 말했다.
이연수 활동가는 서울대교구 문정동 성당 우리농운동, 가농소 입식운동 참여 사례를 소개하면서 “유기순환농업, 생명농업을 위해 소를 키우고 퇴비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이 땅을 살리고, 안전한 먹거리가 생산되고, 도시에서 그 작물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일정한 시간 뒤 건강한 소나눔을 한다는 것은 땅과 생명을 살리는 긴 기다림과 지지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농 운동의 대표적 활동이자, 우리농이어서 가능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또 식생활과 소비 성향 변화와 같은 시대적 흐름, 우리농 활동과 운동에 대한 인식 확산의 어려움은 우리농 활동을 지속하는 데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신앙실천 운동일 것이다. 가농소 입식부터 농산물 직거래, 소나눔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도농이 함께 짓는 농사, 도농 상생의 의미가 잘 전달되려면, 더 자주 만나고 의견을 나눠야 한다. 절대 혼자가 아닌 함께여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소입식 운동이 20년이 되었는데, 이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분명한 기약이 없고, 위험 부담이 있는데도, 소값을 농가로 보내고, 믿고 기다려 준 과정이 있는 겁니다.”(가농소 입식운동 이상식 공동위원장)
“우리가 키운 가농소는 정말 귀한 소입니다. 좋은 고기여서 중요하다는 것보다 1차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기초 토대를 마련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눔의 경험 없이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본당에서 나눔의 경험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문정동 성당 활동가 이병임 루시아)
좌담회에 참석한 최덕천 교수(상지대)는 “우리농은 가톨릭의 생태적 영성을 기반으로 만든 도농공동체이고 다른 유사한 운동과 또 다르다”면서, “생태적 영성, 생태적 순환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 공동체가 20년 유지됐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또 “거래가 아니라 나눔을 해 왔다고 하는데, 일반 소고기가 상품이라면 가농소는 가치재”라면서, “이 가치 실현은 소비자가 돈으로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함께 소를 키운다는 마음과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결국은 우리 교회가 이런 가치, 신뢰를 책임져 주는 책임 소비의 모범을 보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종열 박사(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는 “가농소 입식운동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둔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이고, 가족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집은 지구다. 우리는 그 집을 먹고 사는 것”이라며, “가농소를 통해서 우리는 집, 밥, 몸이 모두 연결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농촌살리기 운동은 도농살리기운동이라는 정확한 재규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알고, 가농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태순환농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공유하면서, 지속가능한 농업, 지속가능한 인류 공동체를 향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가농소 입식운동 2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는 7월 21일 29회 농민주일 행사와 함께 마련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