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신학생, 농촌의 숨결 배우다

"신부가 될 땐 꼭 초대해 줘. 그땐 우린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서울가톨릭대학교 신학생 20명이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4박5일 동안 안동교구 쌍호마을에서 생태 농촌 활동을 함께 했다. 이들은 서울대교구 14명, 의정부교구 6명으로 2026년에 3학년 복학을 앞두고 있다. 기자는 신학생과 농민, 공동체의 살아 있는 신앙과 노동의 의미를 함께 호흡하고자 마지막 이틀간 현장을 찾았다.

이번 농활은 이승현 신부(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그는 “서울·의정부교구처럼 주로 도시에서 자란 신학생들은 농민을 추상적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신학생 때 실제 농촌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생명의 현장을 경험하는 기회를 꼭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신학생 시절 농활 경험이 사제로서의 삶을 깊이 있게 바꿔 놓았다며, 이번 체험이 신학생들 마음에 작은 씨앗이 되어 자라나기를 바랐다.

지난 12일 점심,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운영위원들이 농민과 신학생들을 위해 서울부터 식재료를 준비해 와서 마련한 점심 식사 자리. ©경동현 기자<br>
지난 12일 점심,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운영위원들이 농민과 신학생들을 위해 서울부터 식재료를 준비해 와서 마련한 점심 식사 자리. ©경동현 기자

신학생들은 새벽 기상 후 밭일, 마늘·양파 캐기, 논둑 작업, 공동 취사, 마을 어르신들과의 대화, 그리고 미사와 기도로 이어지는 일상을 함께했다. 앞서 5개월간 사회사도직 현장 체험을 마치고, 마무리 피정에 이어 바로 농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부분 ‘학교 프로그램이니까 따라간다’는 생각이 많았고, 부담도 컸다.

소지환 씨(루피노)는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농민들과의 상호작용, 살아 있는 밭의 생명, 그리고 내 손으로 요리를 만들며 자연의 순환을 체험하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신비롭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던 자연과의 조화, 이 모든 과정이 신학생으로서 값진 경험이란 걸 깨달았고, 어르신들의 ‘신앙과 노동이 하나된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박현준(제르마노, 신학생 대표) 씨도 처음엔 예전 농활의 푸근한 기억과 설렘도 있었지만, 사회인이 된 뒤엔 농촌 생활의 불편함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그러나 “현장에 와서 몸을 움직이고 농민 어르신들과 대화하며, 우리가 쉽게 소비하는 쌀·양파·마늘의 진짜 가치와 밥상에 담긴 노고를 직접 체험하고 나니, 신앙적·인간적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양파 한 트럭을 캐도 6-7개월 농민의 노고에 비해 돌아오는 수입이 너무 적다. 소비자와 농민의 현실, 그 사이에서 밥상의 가치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신학생들은 12일 저녁 마을 잔치에서 “공소 어르신들이 ‘여러분이 신부가 될 때쯤이면 우린 이 세상에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서품식 때 초대해 달라’고 말씀하실 때, 농촌의 인구 소멸과 교회의 미래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고 입을 모았다.

생태 농활 신학생들의 일상, 1. 매끼 식사당번을 정해 식사 준비하는 신학생들 2. 농민들과 양파 캐는 신학생들 3. 마늘밭에서 수확하고 있는 신학생들. ©경동현 기자<br>
생태 농활 신학생들의 일상, 1. 매끼 식사당번을 정해 식사 준비하는 신학생들 2. 농민들과 양파 캐는 신학생들 3. 마늘밭에서 수확하고 있는 신학생들. ©경동현 기자

도시-농촌, 교회 공동체의 미래와 ‘씨앗 심기’

쌍호공동체는 생명 농업을 기반으로 도시 본당과의 자매결연, 직거래, 도농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과 도시가 함께 살아가는 길을 실험해 왔다. 40여 년 역사는 신앙인들이 땅을 일구고, 밥상을 나누고, 도시와 농촌을 잇는 생명 공동체의 살아 있는 증거다.

쌍호에서 밥 한 톨, 마늘 한 쪽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이곳 어르신들은 자신의 노동과 신앙을 일치시키며 살아간다. 하느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도시에서는 체험하기 어렵다"는 신학생들의 말처럼, 밥상과 땅, 공동체의 삶은 신앙의 구체적 실천이 된다.

신학생들은 “도시 공동체와 농촌 공동체의 가장 큰 차이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이라며, “쌍호 같은 공동체의 힘과 철학에서 도시 교회도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박현준 씨는 “이런 현장 체험을 통해, 사제가 된 뒤에도 도시와 농촌, 다양한 신자들의 삶에 더 깊이 공감하고, 이웃을 향한 마음을 잊지 않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지환 씨도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절실히 느꼈다. 앞으로 사목자로서 이런 만남과 경험을 잊지 않고 신자들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이승현 신부는 파견 미사 강론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현장에서 만나는 얼굴과 마음에서 시작된다”며, “농민과 도시·농촌의 이웃을 잊지 않는 마음, 현장 경험의 씨앗을 끝까지 간직하기를” 당부했다.

농촌 소멸과 신앙의 위기 속에서도, 땅과 밥상, 공동체에서 뿌리내린 신앙의 씨앗은 자란다.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 신학생들이 함께한 시간은 그 자체로 교회와 사회 모두에 심어진 ‘새로운 씨앗’이다. 신학생, 농민, 교회가 서로에게 남긴 울림과 성찰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 작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신학생들의 농활을 마무리했다.

6월 13일 파견 미사 후 쌍호 공소 앞에서 가농 쌍호 분회 회원들과 신학생들. ©경동현 기자
6월 13일 파견 미사 후 쌍호 공소 앞에서 가농 쌍호 분회 회원들과 신학생들. ©경동현 기자

쌍호공동체의 오늘 – 살아 있는 신앙과 생명 공동체의 역사

가톨릭농민회(이하 ‘가농) 쌍호 분회는 경북 의성군 쌍호리의 작은 농촌 마을을 기반으로 1979년 3월 29일 창립됐다. 이 해는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눈엣가시였던 가농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원춘 사건을 조작해, 가농과 안동교구, 나아가 한국 천주교회 전체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마을 앞 두 호수에서 유래한 '쌍호'라는 이름답게, 자연과 어우러진 이 공동체는 6가구 조합원이 오랜 시간 한마음으로 농사짓고 있다.

이곳은 단순히 생산 공동체가 아니다. 40여 년간 월례회를 무려 545회 가졌고(2025년 5월 기준), 임원진(분회장 진상국, 총무 김정상)을 중심으로 모든 구성원이 부부 동반으로 ‘생활 나눔의 장’을 실천한다. 중요한 의사 결정은 모두 함께 논의하고, 일상도 나누는 협동·생활 공동체다.

주요 생산 품목은 가농 소(가축), 고추, 김장 채소, 마늘, 쌀, 양파, 잡곡, 그리고 자급용 퇴비 생산을 위한 다양한 밭작물과 채소들이다. 각 회원의 농가마다 특화된 품목을 돌보고, 농사 부산물은 가축 사료로, 가축 분뇨는 다시 밭에 환원시키는 생태 순환 구조가 완비돼 있다.

쌍호 분회는 1990년대 초부터 합성 농약·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생명 농업’을 실천해 왔고, 자체 생산 퇴비의 비율이 80퍼센트에 달한다. 탄소 중립을 위한 농사, 버드나무 파쇄목·가축 부산물을 이용한 자급 퇴비, 텃밭 생산물의 직거래, 에너지·일회용품 줄이기, 마을 환경 정화 등 생태환경적 실천도 활발하다. 이러한 노력이 높이 평가되어, 2019년에는 ‘가톨릭환경상 대상’을 받았다.

쌍호는 오늘도 “함께 결정하고, 함께 실천하며, 함께 정리하는 생명·생활 공동체 운동의 모범”이자, 한국 농민 운동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쌍호공동체의 또 다른 특징은 도시-농촌을 잇는 연대와 개방성이다. 서울대교구 목동 성당(2001), 양천 성당(2003), 목3동 성당(2008), 안동교구 갈전마티아 성당(2025) 등 여러 도시 성당과 자매결연을 맺고, 도농교류와 직거래, 봉사활동, 상호 방문을 정기적으로 이어 왔다.

쌍호공동체가 특별한 까닭은 신앙과 생활, 노동이 완전히 결합된 구조에 있다. 이곳의 뿌리는 쌍호공소(의성 안계 성당 소속)이며, 일상에선 ‘생활의 성화’, 즉 밥상·밭일·공동 결정으로 신앙을 실천한다. 월례회가 540여 차례 이어진 것은 단순한 축적이 아니라, “신앙으로 살아가는 삶의 지침”을 지속적으로 나눈 결과다.

구성원 다수가 고령(평균 70-80살)인 현실, 후계농이 없고 청년 유입 한계로 여전한 위기도 있지만, 쌍호는 지역과 도시, 교회와 사회를 잇는 소중한 신앙의 중추 역할을 한다. “쌍호 같은 작은 공동체가 전국 곳곳에 더 늘어난다면, 우리 농촌과 교회, 사회 전체가 새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쌍호 분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 성당의 암송아지 구입비 지원으로 운영하는 축사를 둘러보는 신학생들. 쌍호 분회는 경종(논밭농사)과 축산(가축키우기)을 서로 연결해 농촌 생태계를 순환시키는 경축순환농법을 20년 넘게 실천하고 있다. ©경동현 기자<br>
쌍호 분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 성당의 암송아지 구입비 지원으로 운영하는 축사를 둘러보는 신학생들. 쌍호 분회는 경종(논밭농사)과 축산(가축키우기)을 서로 연결해 농촌 생태계를 순환시키는 경축순환농법을 20년 넘게 실천하고 있다. ©경동현 기자
지난 9일 신학생들의 농활 첫째 날에 태어난 송아지.&nbsp;©경동현 기자
지난 9일 신학생들의 농활 첫째 날에 태어난 송아지. ©경동현 기자

한편, 서울대교구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는 이번 신학생 생태 농활을 계기로 생명 농업과 먹거리의 소중함에 대한 ‘새로운 씨앗’이 계속 심어지기를 기대하며, 청년 대상 농활 프로그램을 오는 7월 말에서 8월 중, 3박4일 일정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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