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소입식운동의 10년은 특별하고도 작은 인연이 빚어낸 기적입니다.”

지난 8월 12일 ‘자급퇴비 가농소 입식운동’ 10주년 기념식에 참여하기 위해 경북 예천군 농은수련원을 방문한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시종일관 기쁜 얼굴로 참석자들을 만났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권 주교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 자신이 안동교구 쌍호공소 출신이기도 한 권혁주 주교는 지난 2001년 주교로 서품됐고, 그 즈음 시작된 가농소 입식운동을 꼬박 지켜봐왔다. 그런 만큼 권 주교는 특별히 가농소 입식운동이 꾸준히 이어져 온 것에 대해 특별한 감사와 애정을 드러냈다.

▲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권 주교는 소입식운동에 동참하는 도시 소비자들에게 “도농 나눔에 있어 보다 더 깊은 신뢰와 우애, 협력과 운동 확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농촌 현장을 자주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현진 기자

소입식운동, 가난함 가운데 이뤄낸 놀라운 기적
“참여해 준 모든 이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권혁주 주교는 “소입식운동을 통한 농촌 살림 운동이 이렇게 좋은 운동이 될지 처음에는 몰랐다”면서,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순환적으로 농사와 삶이 자연적으로 이어지는 운동을 통해 사람들도 이제는 신이 난 것 같다. 정말로 고맙다”고 말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2010년 3월, 파라과이에서 열린 국제가톨릭농민연맹 세계 총회 결의문)라는 말을, 우리가 자급퇴비 가농소 입식운동을 통해 이룬 유기순환적 생명농업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땅을 살리면, 농촌도 살리고, 자연도 살리고, 지구도 살립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굶주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권 주교는 소입식운동의 의미에 대해 “작은 규모로 농사짓는 가난한 농민들도 농촌살리기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권 주교는 소입식운동에 참여하는 농부들도, 도시 가족들도 부유한 이들이 아니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작은 것을 나누려는 이들이라고 칭하며 “하느님께서는 이 가난함 가운데서 놀라운 기적을 이루셨다”고 말했다.

권혁주 주교는 1분에 23명의 어린이가 죽어가고, 1년에 4~6천만 명이 굶어 죽는 현실을 언급했다. 그는 “단 한 명이 먹을 소고기와 우유를 얻기 위해 22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콩과 옥수수를 사료로 주입하고 있다”며 “가농소 입식운동으로 축산과 먹을거리 체계가 달라진다면 장기적으로 이러한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모든 생명을 살리는 농사 사도”
소입식운동의 중심에 ‘생명’이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

소입식운동을 비롯한 생명농업은 비단 농업 방식의 전환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의 회심을 요구한다. 특히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생명마저도 경제성과 효율성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생명농업이 가르치는 바는 무엇일까?

권혁주 주교는 생명농업의 길이 분명히 힘들지만, 소신을 갖고 공을 들이고 기다리다 보면 분명히 생명 살림에 대한 보람과 신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권 주교는 “농민들은 모든 생명을 살리는 농사 사도로서 그리스도인의 기본 사명인 복음 전파 임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촌 현장은 하느님을 더 가까이 하고 복음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함께 구원되는 세상을 지향하는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어 준다고 굳게 믿고 있다.

▲ “오늘은 절기 중 가장 더운 날이라고 합니다만, 여러분에게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권혁주 주교는 기념미사 중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정현진 기자

“나는 농사를 사랑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돈도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누구든지 돈이 있다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렇지만 사도는 땅을 소중히 여기면서 일을 하고, 땅을 헤치지 않으면서 최대의 것을 얻어내며, 마치 하느님께서 땅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땅을 사랑하면서, 땅속에 기도와 사랑을 바치는 농사를 짓는다.” (캐서린 도허티, <농사 사도직> 중)

권혁주 주교는 최근 번역되어 출판된 캐서린 도허티의 <농사 사도직>을 언급하면서, 이 책을 읽으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권 주교는 “생명농업은 농촌뿐만 아니라 자연도 지구도 살린다. 근본적으로 농사를 짓는 이유는 부양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고 더 나아가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라는 구절을 소개하며 “생명농업이 우리 자신과 이웃을 살릴 것이며,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이웃 사랑에 동참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입식운동은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순환농업으로서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것은 농촌을 살리는 새로운 대안이자 방법이며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다. 소를 매개로 하지만 그 중심에는 생명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권 주교는 소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살림 밑천이었던 것처럼, 이제 ‘가농소’가 생명 살림의 밑천이 되었다고 전했다. 그는 “(소입식운동이) 여전히 시작단계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것을 이뤘으며, 지금은 신앙인들이 중심이지만 10년 후에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나의 밥상 역시 텃밭 농산물로 차린 ‘시골 밥상’
신자들은 물론 사목자들도 생명농업과 생명농산물에 관심 갖기를

농촌과 농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안동교구의 생명농업운동이 하느님 나라를 구현할 것임을 확신하는 권혁주 주교. 문득 권 주교의 밥상이 궁금했다.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저 시골 밥상”이라면서, 덕분에 생활비가 적게 든다며 웃음 짓는다.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맛보라며 가져다 준 농산물, 교구청 뒤편 텃밭에서 거둔 수확물이 권혁주 주교를 비롯한 교구청 사제들의 밥상에 오른다. 이 때문에 고기보다는 ‘풀’이 많다고 귀띔한다.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추수 때가 되면 으레 사제들과 함께 권 주교도 팔을 걷어붙이고 텃밭 농사를 거들고 막걸리 한 사발도 나눈다고 한다.

끝으로 권혁주 주교는 “예수님 삶의 터전 역시 농촌, 시골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또한 “이 일은 제 자리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며, 끊임없이 찾아와 만나면서 신뢰를 쌓아야만 가능한 일”이라면서 “특히 사목자들이 생명농업과 생명농산물 소비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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