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농민 주일 맞아, 서울과 안동교구 우리농본부 공동 기념행사 열려
1994년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이름으로 출범하고, 올해 30번째 농민 주일을 맞았다. 지난 20일, 안동교구 농은수련원에서 서울대교구와 안동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공동으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30 농민주일, 우리농 희망 만들기’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생명 농업에 힘쓰는 농민들과 도시의 생활 공동체 활동가 130여 명이 함께 모였다. 이들은 도농 간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고, 농민 주일 30년의 역사와 신앙적 의미를 함께 나눴다.
"생명의 선택이 좋은 몫이 됩니다"
행사는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안동교구장의 주례로 봉헌된 감사 미사로 시작됐다. 강론에서 권 주교는 신명기와 루카 복음의 말씀을 바탕으로 ‘생명의 선택’이 농민 주일의 핵심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농민은 하느님의 정원사이자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도시민인 우리도 마르타처럼 일할 뿐 아니라,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생명을 선택하는 신앙인의 태도를 살아가야 합니다.”(권혁주 주교 강론 중에서)
한편, 제30회 농민 주일을 맞아 발표된 담화문은 농민 주일의 신앙적·사회적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설명했다.
박현동 아빠스(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는 담화문에서 “농업의 위기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의 위기”라고 지적하며, 우리농 나눔터 운동, 유기순환 농업, 소비자와 생산자의 공유 경제 실천 등을 교회의 생태 사도직으로 규정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인용해, 생태적 삶의 전환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상기시키고, 절제·절약·감사의 생태 영성 실천을 제안했다.
희망 잇는 공동체, 도농이 다시 손을 맞잡다
미사에서는 서울·안동 교구의 공동 봉헌 예물이 눈길을 끌었다. 생명농 쌀 약정 운동, 자급 퇴비 생산, 가농소 입식, 생명 농산물 직거래 등 30년간 실천한 도농 교류 활동을 하나하나 상징하는 봉헌물들이 제대 앞에 놓이며, 그 자체가 교회의 ‘살림살이’가 되었음을 증언했다.
오후에는 ‘우리농, 희망 만들기’라는 주제로 모둠별 이야기 나눔이 이어졌다.
도시민과 농민의 만남, 본당(성당)과 분회의 자매결연, 직거래와 생명 농업의 어려움과 극복 방안 등이 활발히 논의됐다. 활동가들은 농민에게 감사를 전하는 시간을 통해 리본과 메시지, 생명 농업 소품을 선물로 전했다.
한 농민은 “오늘이 제일 호강하는 날”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고, 활동가는 “감자 상자에 농민의 얼굴이 담겨 보인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도시와 농촌, 소비자와 생산자가 이름을 부르고 마음을 나눈 이 하루는,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공동체로서 희망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믿음이 우리를 지탱했습니다”
농민 주일 30주년을 맞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우리농 전국 본부 상임 대표이자 안동교구 우리농 본부장인 안영배 신부(사도요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다른 교구의 농민 주일 행사는 어떤 양상인가?
전국 대부분의 교구가 해마다 농민 주일에 기념 미사를 중심으로 장터나 물품 홍보, 쌀 약정 회원 모집 등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안동을 비롯해 수원, 원주, 의정부는 교구장 혹은 담당 주교님이 미사를 드리고, 대구대교구는 보좌 주교님이 직접 시골 공소로 가기도 하시지만, 전반적으로 행사의 내용이 고정화되고 있고, 기후 변화로 인해 7월 셋째 주는 아주 덥거나 물난리를 겪는 시기라 행사 자체가 쉽지 않다.
Q. 농민 주일 제정 당시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1994년 농민 주일이 제정되던 시기, 우루과이라운드 체제와 농업 위기를 맞이하며 교회는 농업을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생명과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농 운동이 생겼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농과 고령화로 농촌과의 정서적 거리도 멀어지고 있어, 다음 세대와의 연결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농민과 도시 활동가들이 직접적인 만남과 교류를 통해 관계를 형성해 온 도농 공동체 운동에서 찾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서울과 안동의 도농 교류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전환점이 있다면?
1998년부터 본격화된 직거래 자매결연도 중요했지만, 가장 의미 있었던 건 가농소 입식 운동이다. 자급 퇴비를 기반으로 한 유기순환 농업을 도시와 농촌이 함께 만들어 간 사례로, 일본 생협에서도 놀라워하며 배워 갔을 정도다. 도시 소비자들이 농촌 현장을 보고 감동받아 ‘이 농민이 생산한 것이라면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가 만들어진 것, 그것이 이 운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Q. 최근 기후 위기와 고령화, 소비자 인식 변화 등 농촌 환경 변화 속에서 우리농 운동이 맞이한 도전은?
고령화와 후계농 부재는 현재 농촌이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이다. 더구나 생명 농업을 지향한 우리농 운동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는 논밭을 잃는 것이 더 큰 시련이기에 이를 극복할 시도와 도전이 있어야 한다. 자경농만 고집하기보다 임대농과 농업 회사 경영 등 온갖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산 유지와 생명 농업 존속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또한 가구 구성과 소비 형태가 변화됨에 따라 과거와 같은 형태의 농산물 나눔 운동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소규모 나눔 운동을 넘어서는 물류 사업을 위해서는 급식 등 공공의 영역에 진출하고, 판매 영역을 다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Q. 이번 농민 주일 행사 주제인 ‘희망 만들기’인데, 앞으로 우리농 운동이 도시와 농촌 모두에게 어떤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희망은 거창한 게 아니다. 교회는 본당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때로는 본당 틀을 넘는 소모임이나 가족 단위의 교류도 필요하다. 농민의 삶을 직접 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체험 공간을 마련하고, 활동가들이 그 공간을 통해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이 땅을 일구는가’를 느낀다면, 그 감동이 운동을 지속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운동은 관계 안에 있고, 그 관계를 교회가 함께 살아내야 한다.
30년 전, 농업 위기 속에서 생명과 신앙의 관점으로 시작된 농민 주일은 오늘날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기후 변화와 도시화라는 도전 속에서도, 이 운동이 계속될 수 있었던 힘은 사람과 사람,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기억하고 마주한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그 관계가 다시 신앙 안에서 살아난다면, 농민 주일은 다음 30년을 향한 또 하나의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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