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 상임대표 안영배 신부
올해 30주년을 맞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하 우리농운동). 1994년 고 김수환 추기경의 지지와 주교회의의 결정으로 시작된 도농 상생, 땅과 사람을 살리고자 시작된 교회의 생명운동이다.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농운동은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우리농운동의 한 축인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은 여전히 생명농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농업 자체가 겪는 극한 어려움, 농민 고령화로 그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다른 한 축인 도시생활공동체 역시 수치상으로 보면 지난 1년 사이 본당 14개, 활동가 308명이 줄어들었다,
2023년 말, 가톨릭농민회는 13개 교구에서 65개 분회, 농민 857명이 생명농을 이어간다. 도시생활공동체는 10개 교구 181개 본당에서, 1500여 명의 활동가가 활동 중이다. 수적으로도 적지만, 농민은 농민대로, 활동가들은 활동가대로 고충이 적지 않다. 농민들이 처한 구조적이고 정책적 문제도 있지만,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들의 어려움까지 들여다 보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은 ‘교회 내 인식' 문제’다.
교회 구성원들이 농산물 나눔을 여전히 ‘장사’로 보고, “유기농산물은 비싸다”며 가격으로 우선 접근하는 현실, 애써 마련한 우리농 매장과 농산물 나눔터가 본당 사제가 바뀌면서 쉽게 사라지는 모습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다.
지난해 말,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가톨릭농민회는 30주년을 준비하며, 조직 진단을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농업과 식탁을 살리는 우리농운동이 교회의 생태사도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 이 조사에서 전국 농민회원과 활동가, 우리농 실무자와 회원들은 우리농운동의 가장 큰 이유를 “생명의 가치 확립과 창조질서 보전,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적 삶의 실현”으로 꼽았다.
우리농활동가들은 활동의 가장 큰 자부심이 “먹거리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리는 것”에 있다고 답했으며, 우리농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민들을 직접 만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직거래 활성화”를 꼽았다.
‘생명’이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교회에서 우리농운동은 명분, 당위성, 절박함, 책임이 분명한 운동이다. 특히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뒤, 모든 교구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지금, ‘먹거리’를 매개로 우리의 삶과 피조물을 돌보고 살리자는 우리농운동은 왜 아직도 우리 자신의 운동이 아닌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30년을 딛고 나아갈 미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안영배 신부(안동교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안 신부는 2021년부터 우리농운동 활성을 위한 TF팀을 꾸렸고, 올해 권역별 간담회를 거치면서 답을 내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 왔다.
"운동은 운동 답게, 사업은 사업 답게"
안영배 신부는 우리농운동이 농산물 유통을 위한 물류 등 사업 부분과 운동 부분이 병행되는 구조에서, 한편으로는 그 두가지가 뒤섞여 온 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농의 장점은 결국 운동이며, 공동체간 교류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운동을 중심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 신부의 생각뿐 아니라 올해 우리농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이기도 하다.
사업 부분은 농산물 나눔, 직거래, 유통이고, 이는 농업을 지속하기 위한 기본적 조건으로 필요하다. 결국 “운동은 운동 답게, 사업은 사업 답게 좀 해나가자”는 것이 향후 30년의 방향성이자 과제다.
안 신부는 사업 부분에서 기존 틀을 개선시키는 방법으로 ‘통합 쇼핑몰’을 준비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교회가 반드시 쥐고 가야 할 부분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업과 운동의 균형이 중요하지만 둘 중 교회가 선택해야 한다면 ‘운동’이다.
하지만, 농민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작아지고, 사회적으로 농업에 대한 인식의 비중도 낮아졌다. 교회의 사목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나 신자들의 관심사에 편승하게 된다. 안 신부는 “교회도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농민을 살려야 하지만 장사는 왜 하는거냐는 물음은 결국 하기 싫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교회와 사목자, 사목의 방향이 농민의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삼고, 농민이 주축으로 설 수 있는 힘과 역량을 키울 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안 신부는 우리농운동이 농민을 어려운 사람으로 보고, 농산물을 팔 자리만 마련해주는 것은 결국 농민이 스스로 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교회가 하라는대로 따라하는, 객체로 살도록 하는 구조는 가망이 없다. 농민의 문제를 내 문제,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의 운동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인식해야 할 것 역시 “농업 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도시 소비자들의 건강과 삶의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안 신부는 “운동의 중심성을 마련하고 스스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교회다운 사목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농운동의 기본이 돼야 한다. 교회가 농산물 물류 사업을 번창시키겠다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농민사목이나 우리농운동만이 아니라 모든 사목이 당사자가 바로 서도록 하는 것, 함께 하는 이들이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게 교회의 일이죠. 그 과정에서 갈등과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픔과 혼란을 최소화하고 정상화되도록 도와주는 것일 뿐, 교회가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태도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판매가 아닌 나눔, 농민과 '얼굴이 있는 농산물을 만나는 일"
우리농운동에서 농산물 소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도농 간 만남을 통해 “농민을 알고, 그들이 지은 ‘얼굴이 있는’ 농산물”을 먹는 것이며, 판매가 아닌 나눔을 위한 ‘직거래’다.
본당에 우리농 조직이 없더라도 모든 본당에서 직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면서, 생활공동체가 없는 본당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고, 직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직거래를 하는 데에는 많은 노동력, 헌신이 필요하지만, 장점도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은 제철 유기농산물을 보다 싸게 살 수 있고, 산지 농민들은 농산물을 오래 저장하는 비용을 절감하면서 소비 규모를 파악하고 다음해 농사를 안정적으로 전념할 수 있다.
안영배 신부는 “이런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운동의 효과다. 도시 소비자들이 이런 체험을 직접 하고, 참여가 확장되면 직거래 나눔 운동도 활성화될 것이고, 농민들도 자신들이 하려는 농사에서 이탈하지 않고 다음을 이어가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라며, “계속 시도하고 서로 교류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현장과의 괴리감을 좁혀 나가는 것이 도농 교류 활동이었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숙제들이 있다.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지만, 안 된다고 포기한다면, 결국은 유통사업만 남는 것이고, 교육이나 의식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안영배 신부는 30년 전 농업의 큰 문제가 농산물 시장 개방이었다면, 지금은 가장 큰 문제는 기후위기와 농촌소멸이며, 유기농은 커녕 관행농도 이어갈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기후위기 시대에 생명농업이 최선의 대책임은 분명하다. 생명농업 확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또한 생명농업에 이르기 위해 애쓰는 소농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길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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