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당신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종, 2월20일 연중 제7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0일 연중 제7주일 낮 성 베드로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이날 복음(루카 6,27-38)을 인용,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악행에 분노나 폭력이 아닌 용서와 친절로 반응하라고 촉구했다. 교종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지침으로 예수님께서는 ‘가장 어려운 상황, 곧 우리에게 리트머스 시험이 되는 상황’에 대한 현명한 대처를 언급하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모든 예수님 제자들은 ‘본능과 증오에 굴복하지 말고 더 멀리, 한 단계 더 나아가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주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하시면서 “만일 누가 너희의 뺨을 치거든 다른 뺨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뺨을 맞고 다른 쪽 뺨을 돌려야 한다면 억울함과 불공평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대제사장 앞에서 부당한 재판을 받으시는 동안 경비병 한 사람이 뺨을 때릴 때 우리에게 맞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받은 악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십니다. 다른 쪽 뺨을 돌린다는 것은 결코 고통을 당하면서 침묵하고 불의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경비병의 불공정한 것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노나 폭력 없이, 오히려 친절한 말씀으로 질책하십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매 맞는 것보다 오히려 더 강한 반응입니다.
다른 쪽 뺨을 내미는 것은 패자의 후퇴가 아니라 내면의 힘이 더 강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에게서 값없이 받은 과분한 사랑을 느낄 때 모든 복수를 거부하시는 예수님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질문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만 달려 있다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으로 우리는 선으로 악을 대할 수 있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교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여기고 서로 전쟁을 생각’할 때 얼마나 슬픈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신자들의 자세입니다. 여러분 모두 시련을 받는 동안에도 온유하시기 바랍니다.
“심각한 재해 입은 마다가스카라와 브라질 국민들 위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말미에 최근 강력한 사이클론으로 타격을 받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라 섬 남동쪽 지역과 심각한 홍수피해를 당한 브라질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교종은 “최근 강력한 열대성 사이클론으로 타격을 입은 아프리카 섬 남동쪽과 홍수와 산사태로 황폐화된 브라질 페트로폴리스 주민들을 기억합니다. 하느님께서 죽은 자들을 당신 품 안에서 환영해 주시기 간구합니다. 또한 그들의 가족들을 위로해 주시고 구조 작업에 나선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라는 몇 주 간격으로 아나, 바트시라이, 두마코 3개 사이클론에 의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티칸 국무장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서명해 마다가스카르 공화국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에게 보낸 위로 전문에서 지금까지 사망자 120여 명을 낸 자연재해로 수십만 명이 집을 잃어 실향민이 발생한 마다가스카르 국민 모두에게 연대와 친밀감을 표시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바닷물에 논밭이 침수되어 주요 생계 수단인 수확물의 파괴로 마다가스카라 섬의 160만 명 이상의 주민이 피해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종, 브라질 홍수 피해자들에 위로 전문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18일 바티칸 국무장관 피에트로 파롤린이 서명한 전보에서, 현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산악 지역에서 엄청난 폭우로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한 교종의 기도와 연대감을 표시했다. 이번 홍수는 지난 2011년 900여 명 사망자를 낸 홍수와 필적하는 강도의 강우량의 이틀간 집중 호우에 이어 붕괴, 산사태 등 브라질 전역에서 시간 단위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17일 현재 사망자 117명과 실종자 116명이 확인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한 많은 주택과 차량이 흙더미에 파묻혀 있으며, 수많은 이재민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 당국은 앞으로 더 많은 폭우가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해 위험에 처한 여러 지역에 긴급대피령을 내렸다.
한편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진흙과 잔해 사이에서 실종자를 계속 수색하고 있다. 당국에 따르면 수백 명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소방관 500여 명이 구조에 동원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특히 피해가 심각한 페트로폴리스 교구장 그레고리오 네투 주교에게 보낸 전문에서 비극적 결과에 직면한 신자들에게 저의 깊은 슬픔을 전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희생자 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모든 것을 잃은 슬픔에 잠겨 고통과 위로를 나눈다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자비로운 하느님께 죽은 자를 위한 영원한 안식과 온 국민을 위한 희망의 위안을 호소하면서 빠른 회복을 바라는 마음과 필사적인 구조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고 밝혔다.
"교종, 스페인 어선 침몰 희생자들 위해 기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2월15일 캐나다 서부 뉴파운드랜드 연안에서 침몰된 스페인 어선 희생자들에게 슬픔과 위로를 보냈다. 바티칸 국무장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18일 교종을 대신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교구 줄리안 바리오 대주교에게 보낸 전보에서 교종은 “빌라 데 피탕소 어선의 침몰 소식을 듣게 되어 슬프며, 피해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애도하는 가족들과 슬픔을 함께합니다. 또한 이 사고로 영향을 받은 모든 이에게 주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모성적인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주님의 끊임없는 도움의 서약이자 부활에 대한 희망의 표시로 사도적 축복을 전합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마린항에서 출발한 50미터 길이 어선에는 스페인인, 페루인, 가나인으로 구성된 선원 24명이 타고 있었으며, 2월15일 폭풍우 속에서 배가 침몰한 후 생존자 3명이 구조되었고 시신 9구가 수습되었으나 실종된 선원 12명에 대한 수색은 침몰한 지 36시간 만에 중단되었다. 따라서 희생자와 실종자는 모두 21명이다.
“맹인과 시각 장애인 복지 향상을 위한 노력 계속 당부”
교종, 프랑스 가톨릭 ‘함께 보기’ 회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19일 프랑스 가톨릭협회 ‘함께 보기’(Voir Ensemble)협회 회원들을 접견하고 맹인과 시각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을 당부했다. 말씀 내용.
예수님은 가장 약한 것을 배제하는 외모와 편견으로 눈이 먼 사회에서 우리에게 사람과 사물을 ‘마음으로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90여 년 전 맹인 예수회가 프랑스 리옹에서 설립해 맹인과 시각 장애인들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온 가톨릭 비영리단체 협회 여러분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교인들이 병자와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편견의 문화를 거부하고 만남을 포용하도록 노력해 왔니다. 요한 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맹인을 치유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에 대한 당시의 편견을 근본적으로 거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사물의 겉모습, 가장 피상적인 측면만을 느끼는 데 익숙합니다. 현대의 문화는 사람들이 외모, 옷, 아름다운 집, 고급차, 사회적 지위, 재산 등에 관심을 가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연약함을 지닌 채 만남의 중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즉, 교회와 사회에서 그들도 생명과 믿음을 열어 주시고 형제애를 구축할 수 있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보게 하심으로써 우리들에게 당신의 마음이 고통에 무관심할 수 없음을 보여 주심으로써 우리가 형제들의 상처에 즉시 행동하고, 위로하고, 달래고, 치유하도록 초대하십니다. 복음에서 맹인이 ‘세상의 빛이신 분’을 만나 눈먼 사람이 보게 되는 역설과 예수님을 만나도 여전히 눈먼 많은 사람의 역설이 함께 존재합니다. 이러한 역설은 매우 자주 우리 자신의 삶과 믿음의 방식을 관통합니다.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그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사람은 마음으로만 잘 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과 사물을 보는 우리의 방식을 새롭게 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형제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일련의 이론적 신념, 전통, 관습으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세상과 형제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마음으로 보는 것'은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유대의 길입니다. 옛날 바리사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교인들은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에 나오는 치유된 맹인처럼 '빛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환영하는 태도와 형제적 사랑으로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부디 '함께 보기' 협회에 창립자이신 이브 몰라 신부님의 카리스마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마음으로 '함께 보는' 길에 더욱 박차를 가하시기 바랍니다.
교종, 잠비아 히칠레마 대통령 접견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19일 바티칸을 방문한 잠비아 공화국 하카인데 히칠레마 대통령을 접견하고 환담했다. 히칠레마 대통령은 교종과 면담 후 바티칸 국무장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미로슬라프 바쇼스키 국가관계 차관과 회담하고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 문제와 잠비아와 바티칸 간 양자 협정 초안 작성에 대한 추가 검토 가능성도 논의했다. 바티칸 공보실은 성명에서 잠비아의 경제 및 사회 상황과 사회의 다양한 부문에서 교회의 가치 있는 공헌을 포함하는 ‘진정성 있는 토론’을 펼쳤다고 밝혔다. 교종은 잠비아 대통령과 만나는 동안 히칠레마 대통령에게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모자이크와 함께 “하느님은 노아와 함께 피조물과 모든 인간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라는 문구와 2022년 평화메시지를 포함한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종이 코로나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와 함께 기도한 2020년3월27일 텅 빈 성 베드로광장에서의 역사적인 ‘우르비 엣 오르비’에 관한 책들을 선물했다. 이에 대해 히칠레마 대통령은 잠비아의 전통 악기를 나타내는 나무와 구리 조각품을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증정했다.
“인류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 같습니다”
교종, 동방전례교회 총회에서 동유럽 지역 전쟁 위기 우려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18일 바티칸에서 열린 바티칸 ‘동방교회성’ 총회 연설에서 인류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며, 동유럽의 대초원을 가로지르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전쟁 위기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연설 내용.
라틴교회, 그리스 정교회, 슬라브 정교회와 동방전례 가톨릭 등 모든 그리스도 교회는 하느님 자녀들 사이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베네딕토 15세 교종께서는 재위기간 지속적으로 전쟁의 무례함을 ‘쓸모없는 살육’이라고 비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경고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 지도자들에게 무시당했습니다. 성 요한바오로 2세의 이라크 전쟁을 피하라는 호소가 무시된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도 인류는 여전히 어둠 속을 더듬는 것 같습니다. 특히 중동, 시리아, 이라크 분쟁으로 인한 학살과 에티오피아 티그레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레바논을 관통하는 살육의 드라마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들 나라는 동방 가톨릭교회들의 조국입니다. 동방가톨릭은 그곳에서 천년 전통을 보존하면서 발전했으며, 디캐스터리(dicastery, 역자 주: 공의회 또는 고대 교회법정) 회원인 많은 분의 자녀이자 상속인입니다.
역설적으로 평화를 위한 가장 큰 상은 전쟁에 주어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모순입니다. 우리는 전쟁에 연루되어 있으며 이는 비극입니다. 과학에서, 사상에서, 많은 아름다운 것들에 앞서 있다고 자부하는 인류는 평화를 짜는 데는 뒤쳐져 있습니다. 인류는 전쟁을 일으키는 챔피언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는 인류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기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지금 여전히 동유럽 대초원에는 무기의 방아쇠에 불을 밝히고 가난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위협적인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동방가톨릭이 전통인 지역의 그들의 삶에는 과거의 ‘보배로운 금가루’와 현재 많은 사람의 믿음의 영웅적 증인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우리도 책임져야 할 비참함의 진흙탕과 외력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가한 고통도 있습니다. 먼 대륙의 동방가톨릭 신자들이 개척한 길과 캐나다, 미국, 라틴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및 기타 많은 지역에 설립된 교구들은 최소한 당분간은 라틴 주교들이 위임받은 길에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화의 중요성과 다양한 전통의 풍요로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특히 성인을 위한 예비신학 과정은 동방교회에서 어린이에게 보존되고 실행되는 관습입니다. 우리 인간성의 '점토'는 의견을 바꾸거나 필요한 사회학적 분석이 아닌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과 영에 의해 형성되는 경험이 있습니다.
동방교회 교회법 전례규정 적용에 관한 훈령 25주년을 기념하는 전례회의가 이번 주 로마에서 열렸습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길을 따라 바티칸과 자문위원들이 함께 걸어가라는 초대입니다. 또한 유일한 교향곡인 가톨릭교회는 각자의 독창성을 유지하면서 항상 다른 전통과 그들의 연구와 개혁의 길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교회와 동방정교회 형제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그들과 같은 성찬 식탁에 앉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항상 거의 같은 전례 텍스트에 의한 성찬을 거행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의 가시적 일치를 향한 여정을 해칠 수도 있는 실험은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은 친교의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전례적 분쟁으로 추문을 일으키면 분단의 주인이신 분의 손에 들어가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는 단순한 ‘총각’(독신)이 아닌 열린 마음의 착한 목자”
교종, 국제 신학 심포지엄, 사제들에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17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주최한 사제직(신권, 神權)에 관한 국제 신학 심포지엄에 참가한 사제와 신학자들을 만나 “사제들은 하느님과 그들의 주교, 동료사제, 그리고 모든 하느님 백성들을 섬기도록 부름 받았다”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오늘날 사제들은 하느님 백성들이 ‘성령이 베푸시는 평화와 풍요로움을 경험’하도록 돕기 위한 신권을 이어받았습니다. 저는 ‘착한 목자’의 얼굴을 반영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삶의 증거를 통해 보여 주신 사제들뿐 아니라, ‘첫사랑의 불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역이 메마르고 반복적이며 무의미해진 사제들과도 동행해 왔습니다. 급격한 시대적 변화의 시대에 사제들은 과거로 후퇴하여 '위험으로부터 도피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도전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는 변화의 어려움을 무시하는 '과장된 낙관론'이 아닙니다. 대신 저는 우리가 두려움 없이 '깊숙이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주는 현명하고 살아 있는 교회 전통에 기반을 둔 현실을 신뢰하는 수용에서 나오는 반응을 선호합니다. 사제성소를 포함한 모든 성소에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 결정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분별력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많은 질문과 유혹에 직면해 있는 오늘날 사제의 삶에 '결정적'인 것, 즉 '우리를 사제로 지지하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사제생활의 네 기둥'은 '네 가지 형태의 친밀감'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 주교, 동료사제, 하느님 백성에 대한 친밀감입니다. 사제들은 '무엇보다' 하느님과 가까워지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이는 사제들이 직무에 필요한 모든 힘을 끌어내는 데 절대적인 도움이 됩니다. 사제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경험합니다. 이는 바로 그들이 자신의 능력이 아닌 그분의 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친밀함은 기도와 하느님께 대한 묵상을 통해 길러져야 합니다. 동시에 그것은 사제들로 하여금 자기 백성에게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 줄 뿐 아니라 사제 자신을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두 번째 사제들이 자신의 주교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은 듣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에게 순명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느님의 뜻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교는 사제들과의 유대감으로 교회를 일치하게 만들고 보존하게 됩니다. 사제들은 자신의 주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유대를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 번째 친밀함의 유대’, 즉 동료 사제들과의 친밀함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친교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러한 ‘사제적 형제애’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룩함을 추구하기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적이고 정직하지만 겸손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호 사랑에 기초한 형제회의 ‘전령’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제직 독신의 가치는 즉 ‘라틴 교회가 보존하는 선물’이지만 이는 건강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제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제의 합당한 자리는 하느님 백성의 한가운데, 곧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어려움과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보다는 그들의 '실제 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식', 즉 '가까움, 연민, 부드러움'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제들은 또한 많은 사람이 모든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끼는 시대에 소속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자의 기도는 자양분을 받아 하느님 백성의 마음에 성육신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친밀함과 백성과의 친밀함 사이의 관계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주교와 사제들은 “나는 이러한 형태의 친밀함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마음은 친밀함을 간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친밀함의 주된 형태는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친밀함의 형태는 추가적인 부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명을 생생하고 열매 있게 유지하기 위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사제로서의 친밀함이란 ‘연민과 부드러운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 자신의 스타일에 따른 친밀함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제는 단순한 '총각'(독신자)이 아니라 언제나 열린 마음을 가진 착한 목자여야 합니다.
“예술은 하느님께 대한 갈증을 부추깁니다.”
교종, ‘아름다움의 디아코니아’ 창립 10주년 예술가들 격려
프란치스코 교종은 ‘아름다움의 디아코니아’(Diakonia of Beauty. 역자 주: 예술인 지원단체) 창립 10주년을 축하하면서 예술가들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킨다고 격려했다. 교종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교종을 방문한 예술가 대표단을 만나 그들의 교회를 위한 봉사에 감사를 표했다. 2012년 설립된 동 단체는 음악가, 시인, 가수, 화가, 건축가, 조각가, 배우, 무용수 등 회원들에게 교육과 기도, 영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교종은 성경이 우주의 아름다움에 대해 광범위하게 말하고 있으며, 이는 창조주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비유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씀 내용.
예술적 창조는 어떤 의미에서 창조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그것이 믿음에 의해 영감을 받을 때 그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의 신성한 사랑을 사람들에게 더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저는 여러분의 ‘아름다움의 디아코니아’가 지난 10년 동안 계속한 일과 믿음과 복음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사랑과 열정'을 높이 평가합니다. 예술은 특정 기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친교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술가는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것, 특히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각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예술은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선하심을 웅변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성 요한바오로 2세 전임 교종님 말씀처럼 예술은 하느님의 영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지할 수 있고 가능한 한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자체로 형언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용어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예술가들이 ‘이해할 수 없고 봉인된 스타일’의 예술을 창조하기보다는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남성과 여성에게 다가갈 것을 촉구합니다. 여러분의 가장 최고 부분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교회는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들이 민감하고 동정심 많은 마음과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새로운 사랑의 시선을 갖도록 돕기 위해 여러분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슬픔과 거리감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의 임무는 하느님이 인류와 공유하는 아름다움을 세상이 재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아름다움과의 접촉은 항상 우리를 고양시키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예술은 믿음에 생기를 불어넣고 지탱해 주며 주님께 나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