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성소수자 사목 가능하겠나”
우신연 세미나 ‘차별금지법과 가톨릭교회’

가톨릭 생명 윤리에 관한 두 천주교 위원회가 잇달아 차별금지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계와 신자 대다수의 침묵이 계속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25일 온라인으로 열린 우리신학연구소 세미나 ‘차별금지법과 가톨릭교회’에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30여 명이 모여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교회가 교리와 차별금지법안을 분리해서 다루지 못하는 문제, 성직자들에 대한 실질적 교육 기회와 교회 내 관련 논의의 장 부재, 성행위 문제에만 한정된 교회의 성 윤리 담론, 윤리 문제 결정권을 둘러싼 교회의 패권적 태도 등을 다뤘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2020년 차별금지법안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조항이 동성애 행위를 옹호하고 성 정체성을 자의적으로 규정한다며 반대한다는 서한을 냈다. 2021년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도 생명주일 담화에서 비슷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 박상훈 신부(예수회)가 발제했다. 박 신부는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모임’ 공동 대표로 활동하며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연대하고 있다.

그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부인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다. 이 법의 초점은 모든 신앙인의 과제인 인간 존엄, 차별받는 이들의 아픔”이라며 “그런데도 교회가 그 아픔을 위로하지는 못할 망정 특정 조항을 들어 반대하면서 사회를 억압하고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교회의 도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박 신부는 이어 “교회의 역할은 약자들을 위로하는 것이며, 위로는 함께 서 있는 자비의 마음인데 사회적 입장 발표로 법안 제정의 앞길을 막아버리고 있다”면서 “차별금지법은 교리와는 다른 문제로, 인권을 증진해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두 위원회의 입장이 한국 교회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교회 안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한다. 박 신부는 한국 신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결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크고, 사제나 수도자들 역시 개인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교회의 공식 천명 때문에 말을 꺼내기 어렵다고 봤다.

(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교리를 바탕으로도 교회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의 차별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인권 침해를 막는 법안이므로 이를 반대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기미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가톨릭 교리와도 맞지 않는다. 박상훈 신부는 교도권이 교회 전통과 복음을 지키기 위해 윤리적 판단을 내리고 동성애를 죄라고까지 규정할 수도 있지만 이를 넘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교회가 성소수자 문제 등 성윤리에 대해 말할 때 그 초점이 성행위에 있다는 것도 문제다. 박 신부는 성은 인간성과 인간 본질, 인간의 상호관계를 실현하는 것이므로 교회는 성행위라는 잣대를 넘어선 새로운 방식으로 성을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동성애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동성애자를 존중해야 하며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2358항)고 하면서도, 동성애는 자연법에 어긋나고 동성애 행위는 “그 자체로 무질서”하며 동성 간 성행위를 절대 인정하지 않아(2357항) 성소수자 문제에서 성행위에만 집중된 교회의 성 윤리적 잣대는 더 문제가 된다.

차별금지법과 교리 충돌하지 않아

토론에 나선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장예정 씨(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먼저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가톨릭교회 인식의 가장 큰 문제를 교리와 법안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에 따르면 차별금지 사유 20여 개와 전체 40개 조항으로 이뤄진 차별금지법안의 극히 일부인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을 들어 이 법을 동성애 옹호법이라 보는 것은 오해다. 차별금지 사유에서 일부 조항을 빼야 한다는 주장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 법 적용은 고용, 교육, 행정서비스, 재화 용역에 한정돼 입법될 가능성이 크며, 교리 설파, 미사나 예배는 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종교 활동이 차별금지법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이 법을 반대한다. 교리와 법이 충돌한다는 가짜뉴스로 인한 오해, 차별금지법이 동성혼 합법화의 근거가 된다는 주장 때문이다. 장예정 씨는 차별금지법은 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법안이 아니고 동성혼은 또 다른 논의 영역이라면서, 동성혼 자체는 정당한 절차로 인정되지 않을 뿐 동성혼이 불법이란 규정도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소수자 사목 방향에서 분명하게 부당한 차별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차별금지법과 맞닿은 내용”이라며 “한국 가톨릭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계획인가도 없이 단지 교회 입장만 반복하는 것은 교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을 성소수자 사목 논의에서 풀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 여성 성소수자 모임에서 활동하는 크리스티나 씨(알파오메가 대표)는 “요새 많이 바뀌는 것 같았는데 최근에도 강론이나 교리 시간에 동성애는 죄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이 때문에 천주교를 떠날까 생각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실망했다”면서, “차별금지법은 동성혼과 분리된 논의라고는 하지만 교리로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 분리해서 따로 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박상훈 신부는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 우상의 지배를 받는 것이 죄라고 말했다. 고정적으로 동성애는 죄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단죄하는 행동이 우상이란 것이다.

그는 “교리대로 민감하게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 사제든 누구든 신앙인이라면 한 사람에 대한 평가의 말을 조심하면서 자신이 어떤 가치나 왜곡된 인식을 지녔는지 늘 성찰해야 하며 그것이 자유”라면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우상에 매여 있고 사람들을 단죄하는가를 기도로써 식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모습. (왼쪽) 성소수자와의 연대를 뜻하는 오색 팔찌를 채워 주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 (오른쪽) 성공회는 묵주, 연꽃십자가 배지 등을 나누고 축복식을 진행했다. ⓒ김수나 기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성 윤리에 가두는 교회
현실에선 차별 빈번
교계에 폭넓은 교육과 논의의 장 필요

성별 정체성은 단지 성적 행위 같은 성 윤리 문제가 아니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사회에서 여러 차별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장예정 씨는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의 정당성을 따질 때나 각종 면접에서 당락을 결정할 때 성소수자는 처음 봐서 면접에 한 번 불러 봤다는 괴롭힘 등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차별과 괴롭힘을 판단할 때 그 근거가 되는 것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조항이다. 교회가 반대하는 두 조항이 결국 현실에서는 차별 상황을 판단하고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동일 신부(의정부교구 1지구장)도 “신부들이 대체로 차별금지법에 동의하면서도 동성애 행위는 안 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서 “성직자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사랑과 자비, 희망과 인권적 측면에 접근해야지 동성애 행위에 매몰돼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또 신학생 때 받는 성 윤리 교육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매우 단순한 내용만 다루므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서 신부들에게도 성소수자와의 만남 등 좀 더 적극적이고 폭넓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영인 씨(루치아)는 “침묵하고 이슈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성당에서 성 정체성이나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돼 매우 답답하다”면서 “우리가 대항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해나갈 사제와 신자들이 필요하고, 그런 자리들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평소 혼전 성관계, 피임 등 교회의 성 윤리 자체가 현실에 맞게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야만 동성 간 성행위도 내적 친밀감을 위한 사랑의 행위이므로 죄가 아니라는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사실상 모두가 교리를 답답해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동성애는 죄가 아닌데, 동성 간 성행위는 죄라고 하는 한, 동성애 및 성소수자 사목이 가능할까 싶다”고 말했다.

김영진 씨(로사)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유의지가 아닌데 그게 악이 될 수 있는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면 죄가 될 수 없다”면서 “교회 조직이 소외된 이를 환대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자비하지도 않은 것 같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교회가 좀 더 하느님의 선과 가까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경화 씨(세실리아)는 “차별금지법은 당연히 제정돼야 하는데 왜 교회가 반대하는지 궁금했다. 신부님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는데 정말 몰라서 반대할까? 알린다고 해서 해결될까? 몰라서, 오해해서 생긴 반대라면 그 방법으로 가능하겠지만 주교회의가 반대하는 이유는 또 다르지 않을까, 무엇을 지키고 싶고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상훈 신부는 “군비 축소, 전쟁 반대, 해외 빈민 지원 등이 생명윤리인데, 지금의 생명윤리는 오로지 성이라는 것에 집중돼 있고, 이는 윤리적 패권”이라면서 “옳다, 그르다를 따지고 결정할 수 있는 권력, 힘을 갖는 것은 매혹적이며, 교회가 이념화, 권력화된 것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박 신부는 교도권의 윤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양심의 실천에 맞지 않는 태도라면서 “교회법은 매우 폭넓어서 양심이 최선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가 말하는 윤리 규범을 수용할 때는 하느님 앞에서는 자유로운 의지와 선의를 가지고 충분한 정보와 기도, 실천을 통해 훈련된 양심을 기준으로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홍정선 씨(성소수자부모모임 대표)는 제닌 그래믹 수녀의 신앙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바른 양심', 가톨릭 교회와 성소수자 공동체의 온전한 관계를 모색한 책 “다리 놓기” 등을 함께 읽자고 제안했다. (이미지 출처 = 제22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온라인부스 홈페이지)
이날 홍정선 씨(성소수자부모모임 대표)는 제닌 그래믹 수녀의 신앙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바른 양심', 가톨릭 교회와 성소수자 공동체의 온전한 관계를 모색한 책 “다리 놓기” 등을 함께 읽자고 제안했다. (이미지 출처 = 제22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온라인부스 홈페이지)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 내주길”

박진균 씨(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는 “각 교구 정평위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긍정적 입장이지만 지금과 같은 미묘한 상황에서 교회 이름으로 대선 후보들에게 관련 질의를 할 수 있을지 매우 안타깝다”면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사람을 살리는 길이 어떤 것인가란 기본 물음부터 다져가야 하겠다”고 말했다.

송명은 수녀(성가소비녀회)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교회가 본심을 놓치고 가는 것이 아닌가, 수도자 성직자들이 교리만으로 보지 말고 교리가 어떻게 일상생활에서 적용되고,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 가운데 살고 있나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볼 필요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여성 수도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려고 노력하며 기도하고 있고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한 홍정선 씨(세실리아, 성소수자부모모임 대표)는 무엇보다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그 부모들의 걱정과 목소리, 현장을 사제들이 돌아봐 줄 것을 당부했다. 크리스티나 씨도 성소수자 당사자, 엘라이(사회 속 차별을 없애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든 이) 초대 피정, 기도 모임, 미사 등을 준비한다는 소식만 나와도 힘이 된다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이미영 소장(우리신학연구소)은 “우리 안에 다양한 이야기들,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에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적인 교회로 가기 위해서도 이번 논의는 중요하다. 교구의 의견 수렴만이 아니라 이 자리 같은 작은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도 바로 세계 주교시노드로 보낼 수 있다”면서 “가톨릭 신자로서 성소수자를 만나고 차별금지법에 대해 어떤 이야기 나눌지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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