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시노드, 성소수자 모임 진행
공식적 첫 대화의 장

서울대교구가 시노드 준비 과정에서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한국 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세계 주교시노드를 준비하면서 각 교구는 본당, 단체, 사목 분야별 의견을 듣고 이를 수렴하고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과 교회가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번 만남에는 성소수자의 의견을 듣자는 정순택 대주교의 의견이 반영됐으며, 그동안 성소수자 관련 사목 활동을 했던 사제, 수도자,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모임은 지난 3월 진행됐으며, 현대일 신부(서울대교구), 원동일 신부(의정부교구), 박상훈 신부(예수회),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부모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참석자들에게 이날 모임에서 나눴던 이야기와 모임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지면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참석자들은 그동안 교회가 성소수자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교회에서도 자신들의 신원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상황을 알기를 바랐다며, "그 기회가 마련된 것이 고맙고, 반갑다"고 말했다. 

또 한 사제는 “이 모임이 현실적으로 교회의 입장이나 태도를 한꺼번에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성소수자들 역시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해 정말 미안하고 슬펐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부모인 하늘 씨는 그동안 교회 안에서 개인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현실을 알리기 위해 애써 왔다면서, “하지만 성소수자를 혐오 대상으로 설파하는 한 사제와 이야기하려 했지만 전혀 답변이 없었던 적도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런 자리가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성소수자를 만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기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부모 오은지 씨는 “교회가 성소수자를 떠올리고 만나려고 생각했다는 것이 정말 뜻밖이었지만 반갑고 고마웠다”며, 대구대교구 신자인 그는 “서울대교구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로써 공감대가 이뤄지고, 교회가 소극적 태도를 벗어나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신자 중에 당연히 여러 소수자,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교리에는 맞지 않는다. 성당에 가지 못하는 이들, 성당을 불편해 하는 신자들이 있는 것, 오히려 신자 이웃들은 포용하는데 사제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며,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문제인 상황에서 종교에서라도 위로받고 내 잘못이 아니라 태어난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지지할 곳이 되어 준다면 고마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대교구가 시노드 과정으로 마련한 성소수자 대화 모임. 이날 모임에는 사제 3명과 성소수자 당사자, 성소수자 부모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 제공 = 성소수자부모모임)<br>
지난 3월 서울대교구가 시노드 과정으로 마련한 성소수자 대화 모임. 이날 모임에는 사제 3명과 성소수자 당사자, 성소수자 부모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 제공 = 성소수자부모모임)

교회 안에서 지워지는 존재, 성소수자
교회에 성소수자가 없는 이유? 숨었거나, 떠났거나
포기할 수 없는 두 이름,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

“사회교리 책 ”DOCAT"에는 ‘동성 혼인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성 배우자를 선택한 사람을 배척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는 구절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고, 지금도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성립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배척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는 걸까요? 이를테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존재가 성소수자들입니다. 교리서에 스치듯 몇 구절로 지나가지만, 그마저도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말로 진술되어 있는. 저희 성소수자들은 이런 존재입니다. 동성애 이외에 양성애, 범성애, 무성애 등 다른 성소수자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 유령도 아닌 투명 인간인 셈입니다.“(가톨릭 여성 성소수자 공동체 '알파오메가' 회원 서희)

이날 모임에 참석한 서희 씨는 최근 창세기 성경 공부 모임을 하면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는 나눔 구절에서 동성 애인과 결합할 수 없느냐는 의문, 동성 애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죄를 고해소에서 말할 용기가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이렇듯 교회 안에 있지만 “숨어든 신자”의 현실에 대해, “교회가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라면, 교회 안에서 더 친교와 나눔을 쌓고,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숨어버린 신자뿐 아니라 ‘지워지는 존재’에 환멸을 느껴 떠나버린 신자도 많다. 실제로 종교에 혐오를 가진 사람들이 많고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고 정신적 위기를 겪는 이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서희 씨는 자신이 가진 두 가지 이름,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고 포기도 되지 않는다며, “이 이름을 오롯이 가지고 하느님 앞에 설 때만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이 하느님 앞에 당당하게 서는 것은 우리의 노력만이 아니라 교회의 노력과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에 “성소수자들이 교회를 안전한 곳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 구성원의 인식 개선, 사목 방식 마련, 성소수자에 대한 애매한 태도 변화” 등을 요청하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워야 마땅한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라며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교회는 지금 동성애 ‘행위’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성애자를 볼 때, 누구도 이성애자의 성행위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자를 볼 때는 그들의 ‘성행위’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것이 차별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왜 교회가 스스로 부정합니까. 교회에 부탁합니다. 저희 성소수자를 ‘성’소수자가 아니라 ‘성소수’자로, 행위가 아닌 존재로 봐 주십시오.”

2007년 워싱턴의 한 교회 문 앞에 성소수자 환영 깃발이 걸려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Flickr)
2007년 워싱턴의 한 교회 문 앞에 성소수자 환영 깃발이 걸려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Flickr)

이 모임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해 온 ‘알파오메가’ 회원 크리스 씨와 아리 씨는 “현재 300여 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고, 수도자 지도로 성경 공부 등을 하고 있으며 이런 모임을 통해 냉담을 풀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매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천주교 신자인 가족에게 동성 친구와 결혼한 소식을 알렸을 때, 가톨릭은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가장 처음 들었다. 축하는커녕 사회적 합의와 교회의 인정을 기다려야 하는 관계라는 것이, 천주교 신자로서 가장 서럽고 괴로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성소수자 차별은 안 된다는 교황님의 말씀에도,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창조주 섭리’를 거스르는 동성혼은 인정할 수 없다는 몇몇 교구 신부님들과 교리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큰 상처가 된다”며, “잉태되지 않은 생명과 태아 수호도 중요하지만, 차별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사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교회 안의 성소수자들은 ‘교회는 우리를 버릴지라도 하느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신앙을 갖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느님과 일치하지 않다니, 너무나 모순적이지만 성소수자가 교회 안에서 신앙을 지키며 버티려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으며 사제마저도 ‘무지’로부터 오는 혐오와 차별을 숨기지 못했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모임 참가자 한나)

시스 젠더 남성으로 동성애자인 한나 씨(활동명, 요한 비안네)는 이번 모임에 대해 “천주교 신자인 성소수자들에게 ‘드디어 교회가 공식적으로 성소수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낮은 곳에 있는 이들’로 품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기념비적인 모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화에 참여한 이들이 공통으로 느낀 것은 “이런 기회가 있어 기쁜 한편, 이제 와서? 그리고 얼마나 심도 있게 우리 이야기를 들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며, “그 이유는 그동안 교회가 성소수자에게 보인 태도는 무관심 혹은 차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염수정 추기경께서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한 부당한 차별의 반대를 ‘동성혼’ 등을 용인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천주교인 성소수자들에게 큰 상처였다”고 말했다.

“교회로부터 입은 상처와 신뢰감 상실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이 용기 내 대화에 참여해야만 했던 이유는 하느님의 사랑은 선별적으로 닿지 않는다는 ‘보편’의 가치가 왜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는지 교회와 교구에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20대 절반을 청년성서 모임을 비롯해 꽤 많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커밍아웃해 왔다는 하나 씨는 “내가 느꼈던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은 이에게 전달하고 싶었고, 성소수자라고 해서 그 사랑의 바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로부터 밀려나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제들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차별과 혐오적 발언들이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인 것을 그만둘 수는 없겠느냐”
“교회에서 규정한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이 제대로 된 말씀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
“네 자신의 존재와 교리가 충돌하는데 버틸 수 있겠느냐"

그는 “이런 말들은 도저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는 아픈 말이었다.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하느님, 예수님은 나 같은 존재도 미워하고 버릴 분이 아닌데 신자들과 사제들은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분노해 결국 교회와 공동체를 떠났다”며, “지난 7년간 여전히 기도를 바치고 성가를 들으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지만, 교회 공동체에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다. 이런 성소수자가 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앞으로는 성소수자들이 같은 상처를 받지 않도록 교회에 분명히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 씨는 이번 모임을 통해 최소한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을 봤고, 성찰하며 듣는 사제들 모습에서도 작게나마 희망을 가졌다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사제, 수도자, 주교님들이 이해와 공감을 통해 변화를 주도해 준다면 더 많은 이에게 널리 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요청했다.

그는 “누군가 천주교회는 느리지만 꾸준히 과오를 인정하며 변화와 개혁을 통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종교이니 성소수자들에 대한 입장과 시선도 그렇게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이번 세계 주교시노드를 통해 성소수자와 같이 교회가 외면해 왔던 사회적 소수자들의 입장 역시 자주 듣고 반성하며 포용해야 한다는 단단한 결의와 기틀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지지와 연대를 요청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