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신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강연
“서울대교구 생명 주일 담화, 꼭 이렇게 써야 했나”

22일 박상훈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퀴어를 향한 가톨릭의 입장과 대화 가능성’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우선 박 신부는 얼마 전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이 발표한 생명 주일 담화문에 대해 “차별금지법이 큰 이슈인 시점에서 이런 담화를 낸 것이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글을 성소수자 신앙인 당사자들과 그 가족, 지인들이 보고 얼마나 상처받고, 존엄이 훼손되고 자신의 가치가 유린당하는 느낌을 받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생명 주일 담화문은 “어떤 성적 행위든 반드시 혼인의 형식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부부의 행위는 생명의 전달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성 윤리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원칙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배제된다.

박 신부는 그러나 성 윤리에 대한 가르침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있어서, 윤리적으로 복잡한 현실 안에서 매우 다양한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사회 문제에 있어 교회가 “이성적 성찰의 도움으로 사회에 책임 있는 소명을 지닌 이들이 잘 응답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을 들어, 이를 성 윤리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말한 "교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만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전통은 긍정적으로만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를 인용하며, 가정, 혼인, 성 등에 관해 변하고 있는 현실을 교회가 수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 윤리에 관해 “교도권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바꿔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 22일 박상훈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배선영 기자<br>
5월 22일 박상훈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배선영 기자

그는 또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해야 한다”는 교회의 절대적 윤리규범에 비춰봤을 때도 동성애냐 이성애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가 옳고, 정의로운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또  “성매매, 포르노 등 성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행위가 옳지 못한 악이지,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는 상관없다”며, 성 정체성에 윤리적 기준을 댈 수 없으며, “(성소주자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신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랑의 기쁨' 사이의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의 입장도 이 변화를 지향해야 함을 제안했다. 이어 '사랑의 기쁨'은 가정과 혼인에 관한 교황 권고지만, 그는 이를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교회는 혼인의 1차 목표를 출산, 두 번째로 부부애로 보았지만, 교황의 권고는 부부애를 우선으로 하는 흐름에 있다.

그는 “올바르게 형성되고 내용이 풍부하나 양심에 근거해 윤리적 가능성의 판단을 보장해야 한다”고 '사랑의 기쁨'을 인용하며, 성소수자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에 식별과 양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비에 대한 깊은 헌신이 있고, 양심에 기초한 식별에 따른 은총을 경험하고, 보다 큰 사랑 자체로 소명에 이끌려 간다”고 '사랑에 기쁨에 나타난 소명을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사랑의 기쁨'에서 나타난 보다 현실에 열린 가능성, 자비와 사랑을 위한 개방적이고 관대한 마음, 약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섞일 때, 가톨릭 교회와 성소수자 사이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나고 참여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이번 서울대교구 생명 주일 담화문에 대해 “굳이 차별금지법에 관해 입장을 냈어야 했는지” 서운함을 표했다. 한 참가자는 “아이가 성소수자인 것을 본당 신부한테 밝혔을 때 우호적인 반응이어서 마음이 놓였고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주보에서 담화문을 보고 실망했다. 안 그래도 아이가 성소수자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데, 그 담화문 이후로 더 이야기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성당에 나갔고, 성가정이 되길 기도하며 성가정을 이뤘는데, 얼마 전 아이가 성소수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종교가 없었으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교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아이를 보면 상처를 받게 돼 성당에 발을 끊었다며, 과연 하느님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가톨릭 교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이 변화 가능한지,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한 참가자는 이런 자리처럼 소통이 더 필요하며, 사제 등 더 많은 교회 안의 사람과의 만남이 연대로 이어지고, 확장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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