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몰라서 반대하는가

‘차별금지법의 내용이 뭔지 정말 몰라서 반대하는가?’ 최근 우리신학연구소가 주최한 차별금지법 관련 온라인 토론회에서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한 여성 신도가 던진 질문이다. 오해나 무지에서 생긴 반대라면 이를 제대로 알려서 풀면 간단할 테지만, 설령 학습해서 이제 안다고 하더라도 반대를 철회하겠냐는 것이다. 이어 차별반대라는 당연히 제정되어야 법안을 교계는 ‘무엇을 지키고자 또 무엇이 두려워 반대하는가’를 재차 물었다. 아무리 ‘교회 전체’가 아니고 전 서울대교구장과 주교회의 일부의 의견이라고 애써 한계 짓고 구분하려 해도, 이미 가톨릭 신도와 사회 일반은 가톨릭 교회가 이 법안을 반대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너무나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물어도 답으로 돌아올 것 같지 않아 꺼내지 않으려 했다는 이 신도의 주저함 그 자체가, 교회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다고 위에서 언급한 이들의 반대 이유를 다시 늘어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지각 있는 신도라면 누구든 던질 법한 아주 상식적인 물음이 물어지지 않고, 토론되지 않으며 강요된 침묵 속에서 어떠한 반대 의견도 살아 있게 두지 않는 교회 문화가 숨막힐 따름이다. 이날 발표를 맡은 예수회 사제의 대답처럼 어쩌면 교회는 중세 때처럼 ‘생명에 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권한, 그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윤리적 패권’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하나씩 따져 시비를 가리는 일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러한 태도가 세상 변화를 전혀 좇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로 보인다.

동성애자를 포함해 ‘포괄적 차별반대’를 주요 골자로 하는, 인권 수호가 핵심인 이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인권을 넘어 생물권과 인류세를 말하고 있는 동시대인들의 싸늘한 냉소와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천주교 대표자들의 총회에 단 한 명의 일반 언론사 기자도 얼씬거리지 않은 지도 벌써 오래된 일이라서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기는 하다. 어쨌든, 이날 토론회는 여러모로 의미 있고 유익했지만 누구도 이 문제가 성(sex 또는 sexuality)을 불결하고 추하며 속된 것으로 간주해 온 교회의 오랜 습관과 연결시켜 말하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교계는 자신을 늘 그 반대에 위치시키고 ‘독신’(celibacy)을 무기요 방패 삼아 ‘세상과는 다른 성스러움’으로 차별해 온 데에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성과 결혼을 거룩하다고 말하면서도 동성애 또는 동성혼 이해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데에서 보이듯, 깊게 들어가면 실은 이런 ‘지상적인 것’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부정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의회와 공동합의성을 말하지만 최종심급에서는 여전히 이런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해묵은 신학과 구시대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전 교황과 독일 교회의 성학대 사건

서구 교회, 특히 독일 교회가 겪고 있는 성학대 사건을 보노라면 성을 둘러싼 이런 이원론적 세계관 및 신앙관이 낳은 불행한 결과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성학대는 교회법과 시민법의 공정한 판결과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중죄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 독일 주교회의 의장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은 독일 교회가 ‘성학대 재앙’을 처리함에 있어 ‘체계적’으로 실패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주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뮌헨 교구장인 그는 고발된 혐의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조사하고 즉각 행동하지 못한 주교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교회가 저질렀던 제도적 문제와 실패에 대해서도 (독일 교회의 지도자로서) 제도적 책임성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독일 가톨릭 중앙위원회’(Central Committee of German Catholic, ZdK) 같은 진보적 교회 개혁 그룹은 성학대 문제와 교회 개혁 이슈에 적극적인 마르크스 추기경의 사퇴서 제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등 술렁였다.1) 다행인지 불행인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옹이에 매듭이요,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화불단행, 禍不單行)고 했던가.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뮌헨 대교구가 이번에 다시 발표한 성학대 보고서에서는 현 교구장 마르크스 추기경과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연루된 ‘비행’이 드러나 독일 교회는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보인다. 비행이라 함은 이들의 재임 당시 성학대 범죄자들이 제대로 심판을 받지 않고 또다시 사목을 수행하도록 허용된 문제와 연관돼 있다. 교회 기관이 아닌 일반 연구소에 맡겨 2년간 조사 끝에 펴낸 1900쪽에 이르는 보고서는 1945-2019년 사이에 발생한 교구내 성학대 사건을 정리했다. 보고서는 전임 교황의 교구장 재임 당시 4건, 현 마르크스 교구장 재임 중 2건 등을 포함해 피해자 497명과 가해자 235명을 확인했다. 보고서 발표자들은 실제 건수는 보고된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본다면서, 2010년에야 비로소 독일 교회가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베네딕토 16세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성학대 추문의 뿌리가 1960년대에 신앙과 윤리의 확신을 잃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신앙의 감각과 옳고 그름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이전에 발표한 한 성명서에서 주장하기도 했다.2)

이와 관련해 미국 평신도 중심 주간지 <National Catholic Reporter, NCR>는 1월 27일 사설을 내고 베네딕토 16세는 이번에 불거진 사태와 관련해 “명예 교황”(pope emeritus)이라는 호칭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3) 사설은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전 교황을 지지하는 보수파와 반대하는 이들로 교회가 양분되었지만, 결코 이것이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로 변질될 수는 없으며 ‘많은 일반적인 잘못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NCR>은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성학대에 대해 사과했으며 희생자와도 만나는 등 전임 교황들에 비해 성학대 스캔들과 관련해 ‘개혁적’인 면모가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사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끝부분에서 사설은 일반 신도들, 특히 계급적 질서에 익숙한 신도에게는 도발적으로 보일만한 주장을 한다. 곧 <NCR>은 ‘사제 성학대 생존자 네트워크’(SNAP)가 ‘명예 교황’이라는 호칭 사용을 중지하라고 요구한 것을 지지하며, 대개 교황이 입도록 되어 있는 흰색 수단(cassock) 착복을 중지함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파괴한 이 스캔들과 관련해 참회(penance)하는 가시적 표지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2021년 6월 독일의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사퇴서를 냈다.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 위기를 처리함에 교회가 체계적으로 실패한 데 대해 주교들이 책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진은 2015년 2월에 바티칸에서 찍힌 것이다. (사진 출처 = CNS/KNA)
2021년 6월 독일의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사퇴서를 냈다.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 위기를 처리함에 교회가 체계적으로 실패한 데 대해 주교들이 책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진은 2015년 2월에 바티칸에서 찍힌 것이다. (사진 출처 = CNS/KNA)

독일식 공동합의적 교회의 길과 바티칸

혼란 속에 있는 듯 보이는 독일 교회의 예에서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번에 나온 보고서는 뮌헨교구에서 의뢰한 것으로서, 이는 독일 교회가 사제 성학대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의 시정을 교회 개혁의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교회 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는 사례로서 독일식 ‘시노드의 길’(Synodal Path)이 희망을 걸 만한 거의 유일한 지역 교회의 움직임으로 여겨진다. 교회 개혁을 위한 ‘시노드의 길’은 독일 교회내 성학대 문제가 불거진 그 충격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번 조사 전인 2018년 가톨릭 기관에서 68년 동안 3677건의 미성년자 성학대 사건이 있었다고 보고되었고, 독일 모든 성직자 중 약 5퍼센트가 가해자로 고발되었다.4)

독일 교회사상 전대미문의 이 사태로 독일 교계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성직자와 교회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시노드의 길은 성학대 관련 연구가 발표된 지 불과 몇 달 후에 평신도 조직 ‘독일가톨릭 중앙위원회’가 주도하여 출범하게 됐고 독일 주교회의도 이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독일과 해외 가톨릭 우파뿐만 아니라 주교회의 내 보수파가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일 내에서는 특히 전통적으로 가장 가톨릭교도가 많은 지역인 바이에른과 쾰른에서 반발이 심하다. 보수적인 주교들이 이 시노드의 길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보다 성학대 위기의 충격이 너무 크고 근본적이어서 주교조차 이를 거부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5)

‘시노드의 길’에 대한 바티칸의 입장도 보수적이어서 지속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이 교회 개혁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바로 전인 2019년과 진행 중인 2020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독일 하느님 백성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일 교회의 이 시노드의 길을 축하하는 한편 복음이 그 과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 독일 주교회의가 2021년 9월 개최한 추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의장은 ‘철저한 개혁’을 주문한 반면 교황대사는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고 교황의 지시를 따를 것’을 거듭 촉구해 불협화음을 냈다.6) 교황의 축하와 지지로 끝났으면 더 복음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매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독일식 시노드의 길이야말로 복음 정신대로 성직자와 평신도가 힘을 합쳐 교회를 쇄신하고자 하는 안간힘이요 올바른 의미의 공동협력성(synodality)을 보여 주는, 어쩌면 이 개혁 프로젝트에서 실질적인 결실을 낼 가능성이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두려워해야 할 게 복음이고 하느님이라면, 그 외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바티칸은, 교계는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1) 편집국, '독일 마르크스 추기경 사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1.6.9.
2) 편집국, '교황청, 베네딕토 교황 관련 독일 성학대 보고서 ‘검토할 것’',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2.1.21.
3) Editorial, “In penance for mishandled abuse cases, Benedict needs to give up ‘pope ereritus’” <National Catholic Reporter>
4) Zita Ballinger Fletcher, “Leaked German report shows 3,700 cases of abuse of minors in 68 years” <National Catholic Reporter>, Sep 12, 2018
5) Renardo Schlegelmilch, “What America should understand about Germany’s Synodal Path”, <National Catholic Reporter>, Sep 17, 2021.
6) Agnes Wuckelt, “German bishops’ plenary assembly begins with appeals on church reform”, <National Catholic Reporter>, Sep 21, 2021.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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