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 국회 통과, 위험의 외주화 방지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 씨, 2017년 제주도 음료 공장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 숨진 이민호 군, 그리고 지난 11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씨.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안전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위험한 일을 혼자 하다 목숨을 잃었다.

2017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법 시행 10년 동안 2년 이내의 초단기 근로계약과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불법파견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 현행법으로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고용관계가 생겨났다.

산업재해도 비정규직에게 주로 일어났다. 하나의 예로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발전 5개사에 일어난 산재 346건 중 337건(97퍼센트)이 하청노동자에게 일어났다.

위험의 외주화, ‘도급’의 탈을 쓴 ‘파견’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기계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된 고 김용균 씨. ⓒ김수나 기자

하청노동자는 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기 때문에 원청업체는 각종 노동관계법상의 책임을 지지 않고, 사용자로서 지휘, 명령 등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원청-하청 관계는 기업 사이의 ‘도급’ 계약에서 나온다. 도급은 어느 한 쪽이 일을 완성하면 다른 한 쪽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주는 것을 말한다. 둘이 상하 관계라면 원도급-하도급이 되며 이를 원청-하청이라고도 부른다.

도급과 달리 파견은 노동자가 파견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지만 사용사업주의 일을 하기에 사용사업주에게 지휘, 명령 권한이 있다.

비정규직 고용에서 문제는, 겉으로는 도급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파견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도급이면 원청업체가 하청노동자에게 지휘, 명령을 해서는 안 되는데, 실제로는 지휘, 명령이 이뤄지는 경우를 불법파견(위장도급)이라 한다.

태안 화력발전소도 발전소 운영 주체인 한국서부발전이 고 김용균 씨가 소속된 한국발전기술과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한국발전기술 소속 노동자들에게 지휘, 명령을 했다는 정황이 있어 조사 중이다.

결국 원청업체가 책임질 부분이 있음에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김용균 씨가 숨지면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개정해서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간 국회에 계류 중이었던 산안법 개정안이 12월 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산안법은 산재를 막고 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81년 제정됐다.

유해, 위험한 일 도급 금지 조항 신설

이번 개정안은 고용 구조와 산업 구조의 변화를 반영해 법의 보호 대상을 넓혀 특수고용직에 대한 사업주의 안전 조치와 보건 조치 의무를 강화했다. 여기에는 배달노동자도 포함됐다.

또한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작업을 멈추고 긴급 대피할 수 있는 권리를 명확히 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권이 추가됐다.

현행법은 인가를 받으면 일부 유해, 위험한 일에 도급을 줄 수 있었으나 개정안에 따르면 유해, 위험 작업에 대한 도급이 금지된다. 도급 받은 사업주가 다시 하도급을 줄 수 없고, 산재 예방 조치가 가능한 사업주에 도급을 주는 규정도 새로 만들어졌다.

다만 개정안의 일시, 간헐적 작업에 한해 승인 뒤 도급 가능하다는 조항에 대해 노동계는 도급 금지 대상을 확대해 방사선 작업 종사자, 철도와 지하철의 선로 및 승강장 안전문 수리 보수, 화력발전 및 화학물질 설비 수리 보수 등도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12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열린 '산안법 개정안' 공청회. ⓒ김수나 기자

산재에 대한 원청의 책임과 처벌 규정 강화

현행법에서는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만 원청이 산재 예방 책임을 졌으나, 개정안에서는 작업 장소를 넓혀 원청이 지정, 제공하거나 지배, 관리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도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규정했다.

여러 차례 도급을 준 경우라도 원청은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다만, ‘안전 보건 책임 의무’는 재계의 입장이 반영돼 원청이 ‘지배, 관리하는 장소’에 한정됐다.

애초 개정안인 산재 사망 시 10년 이하의 징역이 과도하다는 재계의 입장에 따라 노동자가 산재로 숨지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현행법은 그대로 두되, 5년 이내에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가중 처벌하는 조항이 새로 만들어졌다.

산재 예방 조치를 소홀히 한 원청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는 현행법도 3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조정됐고, 노동자가 숨졌을 때는 법인이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노동계는 노동자가 죽으면 사업주가 받는 징역형의 하한선이 없고, 산재예방 조치 소홀에 대한 처벌조항과 도급 금지 범위 등에서 애초 정부 개정안보다 기준이 낮아지거나 축소됐다는 입장이다.

부산교구 직장노동사목 담당 이영훈 신부는 이번 문제의 핵심은 “원청과 하청 사이의 갑을관계에서 나온 문제”라며 “원청과 하청 간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제2의 김용균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이어 “요한 바오로 2세가 노동 문제를 사회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듯,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노동자에 대한 배려, 관심과 함께 노동자를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아닌 인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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