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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로 내몰린 구두노동자들미소페 제화노동자 인터뷰

수제화 전문 브랜드인 ‘미소페’의 하청공장이 12월 26일 폐업하면서 10년 이상 일했던 제화노동자 25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에 따르면, 미소페의 원청인 비경통상은 인건비 상승과 신발시장의 변화라는 경영상 이유로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겠다며 공장 문을 닫았지만, 사측의 설명과 달리 이 회사는 2018년 105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에 비해 7퍼센트 성장했다.

미소페 하청공장과 제화지부는 지난 10월 22일 단체협약을 맺은 바 있다. 20년 동안 동결됐던 신발 한 켤레당 공임을 5500원에서 6800원으로 1300원을 올리고, 12월 1일부터는 200원을 더 올리기로 했으나, 원청은 갑자기 공장 폐업을 결정했다.

제화지부는 미소페의 하청공장들이 노동자들에게 합의한 공임비에서 500원을 낮추자거나 중국과 비슷한 인건비를 맞추지 않으면 일감을 주지 않겠다는 제안까지 했다고 전했다.

25명의 제화노동자들은 그동안 월급제가 아닌 신발 개수 당 임금을 받는 개수임금제로 일했고, 4대보험이 없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해 당장 생계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은 원청에 “직고용을 통한 고용보장”, “제화공에 대한 하청공장의 여러 탄압 중단”, “신발공장 중국이전 중단”을 요구하고, 정부에 “실직한 25명에 대한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한편, 제화노동자들은 지난 8월 탠디 노동자들의 본사 점거 농성을 시작으로 미소페, 슈비즈, (주)영우, 탑드림, 코오롱 FnC 등과 공임 인상에 대한 단체협약을 맺어 임금 인상을 이끌어 냈다. 당시 이들은 공임 인상 외에도 “소사장제 폐지”, “4대 보험과 퇴직금 보장”을 요구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제화지부 조합원은 30명에서 715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현재 38퍼센트에 달하는 백화점 수수료와 41퍼센트의 홈쇼핑 수수료 인하도 요구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20년 넘게 신발을 만든 제화노동자 A씨를 만나 현재 상황과 입장을 들었다. 그는 이번 미소페 하청공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25명 중 하나다.

지난 12월 27일 열린 미소페 공장 중국 기습 이전 규탄 기자회견에 참가한 제화노동자들. (사진 제공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제화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회사의 입장은 무엇인가?

-회사는 공장 폐업하고 3000만 원이 남았다며 우리와 월급제로 일한 사람들을 포함한 38명이 나누라고 한다.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인데…. 앞으로 얼마나 쉬어야 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것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고 한다.

공장 폐업 통보는 어떻게 받았나?

-한 25일 전에 얘기를 들었다. 우리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어 상태를 지켜봤다. 물건들을 싸서 중국에 부치고 있었다. 간부들이 모여서 폐업한다기에 중국 건은 어떻게 할지 물어봤더니 중국 것도 들어온 것만 하고 차차 안 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 경영이 어려워서 그만두는지 알고 안타까웠는데, 알고 보니 폐업이 아니고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위장폐업이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중국에 보내면서 공장 이전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너무 억울해서 우리 얘기를 들어 달라고 본사로 찾아갔다.

미소페가 7퍼센트 성장했다면 돈을 많이 번 것인데, 우리가 20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공임을 인상한 적이 없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 이렇게 수익을 내는데도 지금 중국으로 간다는 것은 공임을 안 올려 주고 회사의 이익을 더 남기겠다는 것이다. 너무 원통하다. 우리가 좀 살아 보려고 하는데 그것마저도 빼앗으니까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신발 만드는 일은 얼마나 했나?

-신발만 30년 가까이했다. 정부는 성수동을 구두 장인의 메카이자 수제화 특화거리로 만들기 위해 보조를 많이 했다는데, 그 보조가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냥 열악한 환경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만 한 것이다.

보통 아침 6시 반에서 7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작업한다. 가장 일찍 나온 사람은 새벽 4시에도 출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정을 유지할 수 없다. 월급제가 아니고 도급제라 밤새 일해야만 생활이 되니까 죽자 살자 일만 했다.

단가가 너무 낮으니까 밤새서 일하고 못 하면 일요일에도 나온다. 구두일 하며 자식 대학 보낸 사람 중 대출 안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자식들도 졸업하면 빚 갚기 바빠 결혼도 못한다. 그러니까 이 빈곤을 서로가 벗어나질 못한다. 내가 빈곤하니 자식도 빈곤을 이어가는 상태다. 기업이 노동자와 상생해서,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구두일은 6개월은 바쁘고 6개월은 한가하다. 도급으로 일하니까 월평균 소득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 못 벌 때는 한 150만 원도 못 가져 간다. 일이 적을 때는 점심 사 먹을 돈이 아까워서 라면을 먹는다. 그럴 때는 하루에 신발을 4-5개 작업한다. 한 켤레에 7000원씩 잡아도 하루 수입이 3만 원도 안 된다. 남는 게 없으니까 먹는 걸 줄이는 수밖에 없다. 밥 안 먹고 커피 안 마시고 점심은 컵라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집에 월급이라고 내놓는다.

일이 바빠지면 새벽에 나와 날밤도 새고 일요일에도 일한다. 일이 있을 때 더 벌어서 없을 때 생활하려고 죽어라 해야 한다. 몰라서 그렇지 성수동에서 일하다가 머리 박고 죽은 사람들이 많다. 퇴근하면서 ‘잘 들어가, 내일 봐’ 했는데 다음 날 출근을 못한다. 그럼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 과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장들도 잘 알 것이다.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설치된 구두 만드는 장인의 손 조각상. ⓒ김수나 기자

일하다 과로로 죽으면 보상은 어떻게 되나?

-산재보험 혜택은 물론 아무 보상도 없다. 마음이 아프다. 그런 보장은 아예 생각도 안 한다. 안 해 주니까. 그런 걸 떠나서 살아서 일할 때만큼은 대우를 해 달라는 게 진짜로 바라는 작은 소망이다. 그렇게 죽어 가도 나 몰라라 한다.

지금 우리도 일자리를 잃었지만 4대 보험이 있길 하나, 그냥 놀아야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같이 살아가자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 보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 조건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나?

-내가 일한 동안 아무 변화가 없었다. IMF 전에는 구두 단가가 7000원 정도였다. 그 뒤로 단가가 5000원까지 떨어져 계속 이 상태다. 지금도 5000원씩 하는 데가 많다.

그동안 우리가 힘이 없었다. 공임을 올려 달라는 말도 못했지만 말을 꺼내도 ‘맘에 안 들면 나가라’면서 일을 안 주고 갑질을 하니까 눈치 보기 바빴다. 힘도 없는데 얘기했다가 당할까 말을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겠나?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면서 끌려왔다.

백화점이 수수료 30퍼센트, 본사가 30퍼센트, 하청공장이 또 가져 간다. 그들이 다 먹고 나머지가 우리한테 온다. 그러다가 자기들이 좀 덜 가져 가게 되면 우리 것을 빼앗아 채우는 거다. 이런 악습이 20년 넘게 이어졌다. 우리는 몸으로 때우며 간신히 가정을 지키며 일했는데 그것마저도 빼앗아 길거리로 내모는 게 가슴 아프다.

노동자를 (형식상) 사업주로 만들어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그걸 반대하면 공장에서 나가야 한다. 일을 하려면 그 내용이 합당한지를 떠나 계약을 해야 한다. 노예 계약 같은 것이다. 남들처럼 4대보험이 들어가나 실업수당을 받나? 아무 것도 없다. 그런 것도 변해야 한다. 해고자가 준비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길거리에 내몰려 커피 한잔 사 먹을 돈도 없는데 어떻게 재기하겠나?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가?

-정부에 긴급구제 요청을 추진하고 있는데 과연 본사나 하청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거리에 나앉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중국으로 가겠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할 힘은 없다. 다만 먹고 살 거를 해 주면 우리가 나름대로 뭐라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회사에 너무 지나친 것을 요구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상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말 없이 쓰러져 가면서 일하지 말고 살기 위해 말을 하자고 노조에 이번에 많이들 가입했다.

개인적인 계획은 없다. 어제 집사람한테 인력사무실을 가 볼까, 가면 청소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 당신 나이로 가능하겠냐고 하더라. 그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먹고 살 일을 얘기하다 보면 잠을 못 잔다. 갑자기 이렇게 되니 잠이 오겠나.

다 같이 웃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세대는 대부분 기술로 일해 왔다. 내가 구두 말고 다른 기술로 30년 일했다면 어디 가더라도 대우받고 장인으로서 긍지를 가질 텐데, 구두일은 긍지는커녕 일할수록 자꾸 가난으로 떨어졌다. 좀 더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큰 구두업체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주면 좋겠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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