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시사비평
24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유언,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시사비평 - 조현철]

이름은 ‘어떤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름은 가리키는 것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 주지만, 어떤 이름은 오히려 그것의 실체를 감춥니다. 그래서 정확한 이름, 이름이 가리키는 것의 본질과 핵심을 드러내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은 왜곡되고 은폐되고 맙니다. 이런 면에서, ‘하청’, ‘기간제’, ‘비정규직’과 같은 이름은 이 이름들이 가리키는 것의 정체를 잘 보여 주지 않습니다. 아니, 감춥니다.

지난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 청년노동자 ‘김용균’이 작업 중에 사망했습니다. 이 죽음은 하청과 비정규직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확연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청노동은 바로 곁에서 호시탐탐 생명을 노리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강요되는 노동입니다. 2016년 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당시 19살 노동자 김군도 똑같은 하청노동의 실체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겼습니다. 컵라면은 하청노동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노동이란 것을 보여 줍니다. 태안발전소 사고를 조사하는 경찰은 “이동 동선과 시간대를 따져 보면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노동, 이것이 하청노동의 본질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김군들’의 죽음이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지만, 세상의 현실은 아직도 요지부동입니다. 정권을 바꾸었지만, 자본의 논리는 여전히 철벽입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앉아서 죽음의 외주화, 강요된 죽음의 노동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비정규직과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사람 존중과 노동 존중은 비정규직과 철저하게 모순입니다. 비정규직은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을 착취하는 불의한 제도, 노동자의 생명을 갉아먹거나 삼켜 버리는 살인적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도와 구조를 합법화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일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은 불가피한 제도가 아닙니다.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만 불가피할 뿐입니다. 비정규직은 경제적 착취와 함께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자의 인격과 자존감을 갉아먹는 사회적 질병과 같은 제도입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문재인 대통령이 새 정부를 시작하며 내걸었던 슬로건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비정규직 앞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고 김용균 씨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YTN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17일 청와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고 김용균 님에 대한 애도와 함께 사고 원인에 대한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했습니다. 아직도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니,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좋습니다. 아직도 모른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만나길 권합니다. 당사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제쳐 놓고, 도대체 어디서 누구와 비정규직 문제를 상의를 할 수 있습니까.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은 지난 11월 12일부터 대통령과 직접 만나 대화하자는 제안을 해 왔습니다. 청와대는 묵묵부답입니다. 이전에 했던 약속을 생각하면, 만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현실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단호히 거부하고 행동해야 함을 세월호참사와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이라는 부당한 현실 앞에서 가만히 있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왜곡된 현실을 방치해야합니까. 강요된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합법적으로 사람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리는 잔혹한 사회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이들의 문제를 방치하는 한, “함께 잘 살아 보자는 포용국가”라는 구호는 말잔치요 공염불일 뿐입니다.

교회는 지금 성탄을 준비하는 기다림과 희망의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때를 기다리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절박한 기다림과 희망을 지닌 사람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합법적으로 착취당하고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을 외면하는 한, 우리의 기다림과 희망은 공허합니다. 거짓입니다. 아무쪼록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에 귀 기울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많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겠지만,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비정규직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없습니다. 작년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듯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나서야 합니다. 만나서,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강요된 죽음의 고리를 끊어 내는 첫걸음을 함께 내딛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탄은 진정으로 우리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