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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엑스터시에서부터 만물과의 연대로[서평] “사랑과 노동”, 도로테 죌레, 분도출판사, 2018

태초에 혼돈과 암흑으로부터의 해방이 있었다. 하느님이 손수 만드신 것을 보니 모든 것이 참 좋았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이 창조 이야기에, “맞아, 모든 것이 참 좋아”라고 긍정할 수 있는가? 독일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이 물음을 제기하면서 우리가 피조 세계를 찬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랑과 노동”을 쓴 목적이라고 한다.

언뜻 어울려 보이지 않는 ‘사랑’과 ‘노동’ 두 단어가 한 제목으로 묶였다. 거기다 목적이 ‘창조를 찬미하는 것’이라니. 순간 머릿속에 이 그림이 바로 그려지지 않은 건, 이때가 홀로 일하다 기계에 끼어 숨진 청년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의 죽음으로 노동 현실이 생존 투쟁이라는 걸 실감한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그 참담한 때에 하느님은 창조를 시작하셨다. 아득한 그때 세상은 빛으로 밝혀졌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생기 있게 움직였으며, 사람은 사랑으로 땅을 일구는 거룩한 소명으로 일했다. 그때 노동은 피조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었고, 함께하는 이들과 창조를 보전하며 삶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사랑과 노동 - 창조의 신학", 도로테 죌레, (박경미), 분도출판사, 2018.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

“사랑과 노동”은 이러한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노동신학과 창조신학을 전개한다. 이 책은 35년 전에 산업화 사회의 비인간적 임금노동 문제와 성 문제를 다뤘지만, 놀랍게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새롭게 노동을 정의하는 토대를 마련해 주며, 임금과 이윤으로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의 회복을 위해 제도적 변화를 이끄는 희망을 북돋는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 아래서 노동자의 가치는 떨어지고, 사람들은 자기비하와 냉소주의로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언어를 잃어버린 ‘고장 난 인간’이 되어 버렸다. 성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적 소통이 아닌 획일화된 육체적 관능을 추구하며, 정신성이 결여된 쾌락만 맴돌고 있다. 돈과 성은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구가 되어 자신과 이웃, 사회와 자연을 파괴해 가고 있는 지금, 죌레는 노동과 사랑의 영역에서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인간을 기계화하는 구조를 바꾸려면 공동체적 연대가 특히 중요하다. 죌레는 존재의 심연을 연결시키는 성적 엑스터시에서부터 만물과의 연대로 확장될 때, 우리는 생명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하느님과 창조를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자본의 가치관을 벗어난 순수한 자기 인식은 자신과 파트너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으로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생명체에 대해 사랑과 책임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에서 시작된 이 엑스터시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통합할 때 사랑과 노동은 개혁된다. 죌레는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해방되었지만,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불의한 사회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면서 금지로부터의 해방을 넘어서 정의롭고 자유로운 세계를 향한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지금의 비인간적 노동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 있는 긍정적 노동 감각이 필요하다. 죌레는 모든 이에게 자리가 있는 ‘예술적 삶을 창조하는 노동’의 개념과 함께,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것, 한 부품으로서가 아닌 노동 과정과 결과에 참여함으로써 책임과 창조성이 발휘되는 것이 노동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한다. 또한 노동은 노동자가 자신의 삶의 리듬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동료들과 서로 소통하는 분위기 안에서 각자가 필요한 존재로 인식될 때 소외 없는 성취적 노동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조건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노동의 목적이 바뀌어야 한다. 노동의 목적은 늘 파괴된 자연을 복구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웃에게 빵과 노동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노동이 생명을 살리는 노동이 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참 인간이 되고, 신적 자아를 발현함으로써 만물을 다시 노래하게 하는 하느님의 공동 창조자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땠어?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라고 물을 수 있는 이 공동 창조자는 오랫동안 수탈당한 땅을 위로하며, 창조에 ‘참여하는 삶’으로의 부름에 응답한다. 죌레는 피조물과의 사랑의 연대가 이뤄지면 자신을 이 땅의 일부로 인식하게 되고, 이렇게 나와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은 죽는 두려움도 사라지게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연대 안에서 폭력과 착취를 끊을 수 있고, 분열에서 화해로 나아가는 투쟁으로 ‘모든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세상은 창조의 빛을 기억하며, 자기 존재를 되찾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삶과 일터를 일구어 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막힌 소통의 물꼬를 트고 자신과 공동체를 변화시킬 사람들, 모두에게 생명과 자유, 먹을 것과 노동이 주어지는 정의 사회를 실현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더 많은 이들이 삶의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생명의 구원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숙고할 때다. 

이 책을 통해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이들이 희망으로 저항할 힘을 얻기를, ‘아직 아무도 가 보지 못한 창조의 고향'으로, 모두에게 찬미의 노래를 들려 줄 창조자 동료들이 곳곳에서 깨어나길 기대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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