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으려 하는, 다 아는 문제

(로버트 미켄스)

2013년에 콘클라베(교황선거)가 시작되기 겨우 3일 전에, 나는 여기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스코틀랜드의 키스 패트릭 오브라이언 추기경의 결정에 대해 짧은 글을 썼다.

그 몇 주 전, 그는 1980년대에 여러 신학생과 젊은 사제들에게 성관계를 강제했다는 고발을 당했었다. 그는 지난 3월에 죽었다.

당시 그는 (교회법에 모든 주교가 사임을 청하도록 돼 있는) 75살이 되기에 아직 여러 달이 남아 있었음에도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주교직에서 즉각 사임했다. 그는 또한 자신은 콘클라베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교황청의 압력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로마에서 언론의 관심이 내게 집중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와 그의 계승자에게 그래야 할 것이다.”

그때 나는 오브라이언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2년 뒤에 그 이유를 명확히 정리했다.

나는 2013년 3월 9일자 <태블릿>에 이렇게 썼다.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들 가운데 독신을 지키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깬 이는 오브라이언 추기경 하나뿐이라고 믿는다면 나이브한 사람일 것이다.” “다른 이들도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 이상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라고 나는 경고했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나도 또 다른 추기경인 시어도어 맥캐릭 추기경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워싱턴 대주교인 그는 저지쇼어 해안에 있는 한 집으로 신학생들 가운데 하나씩을 데려가서 자기 침대를 나눠 쓰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이 젊은 남성 사제후보들을 자기 “조카들”로 불렀다. 나는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을 알기까지 했지만, 그들은 늘 자기들의 “테디 삼촌”에게 충성스러웠고 그를 (교회당국이나 사법당국에) 알리거나 그가 한 짓을 공개 선언하기를 거부했다.

물론, 우리는 지금은 맥캐릭이 그 이상으로 나쁜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어도 두 사람이 나섰는데 –하나는 바로 이번에 그랬다- 맥캐릭 추기경이 핸섬한 젊은 남성들을 맛보기만 했을 뿐 아니라 미성년의, 풋풋한 청소년들을 만지기를 좋아했다고 고발했다.

다른 추기경들, 그리고 추기경이 될 야심이 있는 일부 주교들에 관한 미확인된 이야기들도 들었는데, 정기적으로 남성들과 성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자기가 도와줘서 주교가 되게 한 한 남자와 일종의 가정 관계로 살고 있었다. 또 지금은 전직사제인 사람과 장기에 걸쳐,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면서, 성관계를 하고 있는 이도 있었는데, 둘의 관계는 두 사람이 신학교에 있을 때 시작됐다.

로마에 있는 어떤 추기경들이 늘상 스위스 근위대원에게 추근댄다거나 자기 밑에 있거나 자기 개인비서로 일하는 젊은 사제들과 고결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독점 우정” 관계를 맺고 있다는 풍설들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 대부분은 남성들(대부분은 다른 사제들)과 관련됐지만, 교황청의 한 주요 부서장이 모든 이가 “그 아내”라고 빈정대며 부르는 한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성심리적 미성숙과 독신 가톨릭 성직자

최근에 매캐릭 추기경의 약탈적인 성적 과거를 비롯해 칠레에서의 성직자들 간의 성학대, 그리고 이번에는 온두라스에서 한 주교가 사임한 뒤로, 내 마음에는 키스 패트릭 오브라이언 추기경의 슬픈 이야기가 자꾸만 떠올랐다. 이 모든 일은 어떻게든 간에 신학생이나 젊은 사제를 성학대한 것과 관련돼 있다.

나는 교회 안에서 고위 성직자들 사이에 이러한 성적 비행이 아마도 “만연”해 있어 보인다는 주장을 들으면 놀란 체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입이 딱 벌어지곤 했다. 얼마나 많은 사례가 있어야 “만연”이라는 용어를 적용하기에 맞거나 또는 맞지 않다고 하기에 너무 많거나, 또는 너무 적거나 한 것일까?

또한 이러한 성직자 성학대 사례들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바탕이 되는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기를 여전히 거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비록 큰 신비는 아니지만,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런 일들 거의 대부분이 남성 –유소년기든 청년기든 간에-과 관련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건전한 성심리적 건강상태에 있는 성인으로서 이처럼 취약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습관적으로 먹이로 삼는 사람도 전혀 없지만, 동성애가 성직자 성학대 위기의 핵심 구성요소라는 점은 전혀 부인할 수 없다.

아주 명확히 말해 보자. 심리적으로 건강한 게이 남성은 소년들을 강간하지 않으며 자기가 권력이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다른 남성에게 자기 욕구를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성심리적으로 성숙한 남성들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바티칸에 근무하는 주교들과 관리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이들은 문제를 영속시키고 심지어 더 악화시킨다.

나는 3년 반도 더 전에 “오브라이언 추기경.... 등을 옹호하며”라는 글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 글에서 나는 그가 2013년의 콘클라베에 참석해야 했던 여러 이유들을 논했다.

그 글은 2015년 3월 24일에, 당시 나오던 <Global Pulse Magazine>(지금 이 매체의 선행 매체)에 나왔다. 교황청이 오브라이언 추기경이 추기경이 됨으로써 가지는 “권리와 특권들” -하지만, 요상하게도, 직위가 아니라-을 자유로이 내놓았다고 발표한 지 며칠 뒤였다.

더 기묘한 것은,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추기경 복장을 입을 수 있지만 오직 사적으로만 그럴 수 있다고 교회 관리들이 설명한 것이다.

성 베드로 광장 (사진 출처 = LA CROIX)

그 글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77살인 이 추기경(혹시 그를 “명의 추기경”이나 “전직(emeritus) 추기경”으로 불러야 하나?)이 이제 추기경 모자에 따라오는 가장 중요한 특권과 의무 –콘클라베에서의 투표권(그는 2005년에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하던 콘클라베에는 참석했다)-를 몰수당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오브라이언 추기경이 사임한 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의 문제가 나온다. 대부분의 지각 있는 사람은 이미 파악했다. 하지만 이 이상한 “사임”을 둘러싼 당혹스런 여러 문제들이 있다.

아무도 감동해 보이지 않는 이 사건 전체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성직자들 사이의 동성애다.

너무 오랜 기간, 이 문제는 사제관 안에서 빤히 보이는 문제였다.

나는 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도 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이 자신이 사제로서 지내는 동안 성생활을 하던 유일한 추기경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남성들과 성적 관계에 있었던 유일한 추기경이 아니다....

이는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선이 이제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말하려 함이다. 그가 2013년의 콘클라베에 참석했다면, 그는 마찬가지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붉은 추기경 복장의 여러 동료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서품된 이들- 심지어 정결하게 독신을 지켜온 이들도 포함- 가운데 동성애 성향인 사람들이 있음을 부인하거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체할 주교와 사제들이 여전히 있다. 의도적으로 무지한 것인가 아니면 뻔뻔스럽게 부정직한 것인가?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어온 오브라이언 추기경과 여러 많은 사제들과 주교들은 아마도 자신이 게이라고 인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동성애 성향을 정직하게 대면하기를 억제하고, 어떤 곳에서는, 금지하는 성직자 카스트제도와 사제양성 제도의 산물이다.

슬프게도, 이런 이들 상당수는 자기-혐오 또는 동성애혐오자이거나 그렇게 살아왔다. 일부는 저명한 도덕설교자이면서 동성애 비판자, 특히 이른바 “게이 영향력 집단”(gay lobby)에 의해 사회에 저질러지는 악의 비판자가 되었다. 불행히도,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때때로, 그런 이들 가운데 더 유난스러운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바티칸도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제와 신학생이 많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교회는 하지만 게이들이 어떻게 하면 건전한 방식으로 독신 정결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관해 건강한 토론을 하도록 돕기보다는 이런 이들을 골방 안 더 깊은 곳으로 몰아넣는 공식 지침과 가르침을 갖고 있다.

그리고 햇빛과 공기가 부족한 다른 어두운 곳과 마찬가지로, 이는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고 곰팡이, 어두움, 왜곡 그리고 질병을 곪게 한다. 어둠 속에만 있던 그 무엇도 건강하게 되거나 번성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으로는 2005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선출되고 겨우 몇 달 뒤에, 교황청은 게이로 판별된 남성은 신학교에 입학이 허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함으로써 “골방 안에 머무르라” 지침을 강화하는 한 문서를 발표했다.(필자 주- 이 문서의 초안자 가운데 하나인 토니 아나트레야 몬시뇰은 파리 출신의 심리치료사이기도 한데, 최근에 자기가 돌보는 신학생들과 여러 청년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믿을 만한 고발을 당한 뒤 사제직에서 면직됐다.)

(편집자 주-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신학교 입학과 성품 허가와 관련하여 이들의 성소를 식별하는 기준에 관한 훈령”, 가톨릭교육성, 2005)

그리고, 아직도, 이러한 시도들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성적 관심을 전적으로 자기-수용하는 길을 찾아낸 게이 사제들이 있다. 이들 일부는 활발하게 성생활을 하지만, 많은 이가 독신을 지킨다. 아마 틀림없이 이들은 (이성애자 사목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 안에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열정적인 사목자들에 속할 것이다.

이들보다 좀 더 갈등을 겪는 게이 동료들, 그리고 모든 게이, 그리고 진짜로 전체 교회는 이런 건강한 게이 사제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큰 혜택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교나 수도회 장상들은 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이러한 부분에 관해 공개적으로 쓰거나 말하지 못하도록 금지해 왔다.

이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불건강한 사제들을 생산할 아주 큰 결함을 지닌 제도를 영속시키고 더 많은 부정직을 권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제들은 그러한 제도의 산물이지만, 언제나 그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오브라이언 추기경 사건의 두 번째 측면이 드러난다. 즉 그의 행위들은 성직자 성학대의 행위들과 융합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가 1985년에 주교가 되기 전부터 이미 여러 성인과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미성년자를 성적 먹이로 삼은 적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시사된 바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를 성적 비행으로 공개 고발한 남자들 가운데 셋은 분명히 게이 사제들이다. 한 사람은 보도된 바로는 어느 시기인가는 오브라이언과 장기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른 고발자는 예전에 신학생으로 지금은 혼인했는데, 오브라이언이 어느 날 밤 그를 더듬었다. 그는 그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안게 됐지만 그 유혹을 퇴짜 놓았고, 훗날의 추기경은 그에게 다시는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그가 자신들에게 했다고 고발한 일들 일부는 분명히 성학대의 범주에 든다. 그리고 이런 일은 그가 신학교 간부이거나 주교일 때 책임을 맡고 있던 이들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권력 남용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학대와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데, 어떤 이들은 고의로 미성년자에게 그런 짓을 해 왔다.”

그런 혼동은, 여담이지만, 동성애의 문제를 다루기를 거부하려는 또 다른 노력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이 글을 앞의 2015년 글에서 인용하면서 끝내도록 하자.

“오브라이언 추기경이 그렇게 오래 그리고 아무 처벌을 받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그가 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게 허용해 준 많은 요인이 있다. 하지만 그런 요인들 가운데 가장 해로운 것들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그 모두는 부인과 비밀주의 그리고 권력이라는 성직주의적 문화(와 폐쇄된 골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사 원문: https://international.la-croix.com/news/sexual-misconduct-and-the-high-clergy/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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