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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윤리신학의 동향과 사제의 성윤리미국 가톨릭교회의 성추문 사태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
오늘부터 매달 네 번째 화요일에 우리신학연구소에서 격월 발간하는 <가톨릭평론>에 실린 신학적 성격을 담은 글을 한 편씩 싣습니다. 깊은 성찰과 열린 대화를 넓히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우리 인간은 ‘무엇을 보느냐’를 기초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시각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윤리신학자 리처드 굴라(Richard M. Gula)가 보는 인간의 행위 선택과 성품의 형성은 ‘바라봄’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세상을 본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면서 본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상상력’ 덕분에 우리는 사물을 창조적으로 해석하며 본다. 스쳐 지나듯 본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가치 판단과 지금까지 누적된 삶의 체험과 시각이 작용한다. 우리가 어떤 가치에 반응했다면, 그것은 그 안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했고, 먼저 무엇인가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 해석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가치를 반영하는가? 나의 해석은 그리스도인이란 정체성에서 시작되었는가?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 깊은 소통과 치열한 자기 성찰의 장을 마련”하려는 취지로 창간된 <가톨릭평론>에서 나에게 청탁한 주제는 “미국 가톨릭교회의 성추문과 사제의 성윤리”다. 최근 곳곳에서 논란이 쏟아지는 사제들의 일탈과 신자들의 충격,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이해, 변화 가능성을 통찰해 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그렇다면 미국 가톨릭교회가 바라보는 현안은 무엇이고, 그래서 논의해야 할 가톨릭 신부에게 필요한 성윤리의 주제는 무엇인가?

 

주제의 배경과 범위

유학을 막 시작하던 2000년대 초 무렵이다. 미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 때문에, 당시 로스앤젤레스 대교구의 교구장이던 마호니 추기경이 텔레비전에 나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교구와 수도회들은 소송비와 피해자 보상을 위해 주요 건물을 매각했다. 심지어 로스앤젤레스 대교구는 교구청 건물도 매각한 후, 그 건물에 세 들어 지내는 형편이다. 정부 기관에 파산 신고서를 제출한 교구도 있었다. 2006년도 오마하의 클레이튼대학교에 수업 참석을 위해 갔다가 보스턴교구 신학교 신부님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보스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 이후 성소가 급감한 정도를 넘어, 지금은 아예 신학교 지원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른 주제이지만 2000년대 초 미국교회는 ‘성윤리’와 관련된 많은 현안도 함께 맞이했다. 가톨릭 신자 비율이 가장 높은 캘리포니아주에서 동성애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정반대의 투표 결과를 얻었다. 동성애자 혼인 법안이 통과되던 날, 북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는 결혼식을 서두르던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북미 가톨릭교회의 성추문 사태를 다루기 이전에 북미 윤리신학의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가톨릭교회의 성추문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신학자들, 특히 미국 윤리신학자들의 시각을 살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고 성찰의 틀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북미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에 소개된 일은 많지 않다. 미국 교회가 스스로 신학의 전통이 유럽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현재 미국교회는 어려운 위기를 기회로 더 깊은 영성의 열매를 준비하고 숙고하는 하느님 백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내용을 굳이 여기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01년과 2003년을 계기로 보스턴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많은 매체가 상세히 다루었기 때문이다. 북미 윤리신학의 동향 중심에는 ‘덕의 윤리학’과 ‘전문직 윤리’가 있다. 덕의 윤리학 시각에서 사건을 해석해 보고, 전문직 윤리의 관점에서 예방책을 간단하게 전망하는 것이 좋겠다. 이 두 분야가 미국의 윤리신학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성윤리와 관련해서 더 큰 대안은 없어 보인다. 이들은 일련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논의에 집중하여 성찰을 시작하는가?

 

덕의 윤리학과 성윤리의 만남

북미 윤리신학의 중심에는 1981년 출간된 영국의 윤리학자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의 "덕의 상실"(After Virtue, 문예출판사, 1997) 이후에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는 ‘덕의 윤리학’이 있다. 보스턴대학교의 윤리신학자 제임스 키넌(James F. Keenan)은 2005년도에 '덕의 윤리학과 성윤리'(Virtue Ethics and Sexual Ethics)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당시 성추문 논란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성추문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이미 작성된 시간과 장소가 암시하듯 가톨릭 신앙에 입각한 성윤리를 다시 제시하라는 요청을 배경으로 삼았다. 하지만 키넌은 특정 행위의 적법성을 논의하기보다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현시대의 그리스도교 성윤리를 재정립하는 것이 글의 목적이라고 밝히면서, 키넌은 행동의 적법성을 강조하던 전통적인 성윤리보다는 ‘덕의 윤리’라는 고전적 윤리에서 현안을 풀어가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매뉴얼 중심의 가톨릭 도덕은 첨예한 논란거리를 충분히 해결해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덕 교육에도 효과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덕의 윤리학은 특정 행동이 ‘선한지’ 또는 ‘악한지’를 판단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묻는다. 그러한 최종 목표(telos)를 위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목을 검토하는 윤리학의 분야다. 덕의 윤리학은 윤리적 딜레마에 접근할 때, 그 사건 자체를 직접 논의하는 대신 정체성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근원적 물음의 결여가 현시대의 문제를 양산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에 따라 다른 가치를 보게 될 것이고, 다른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키넌이 윤리신학의 분야에 접목한 ‘덕의 윤리학’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다. 정체성의 질문과 닮고 싶은 모델, 그리고 구체적인 훈련의 방향까지 모색하는 구조적 질문을 핵심 근간으로 한다.1)

덕의 윤리학이 성윤리를 만났을 때, 미국 가톨릭교회의 성추행과 사제의 성윤리에 대해 어떤 질문이 가능할까? 일련의 사건들이 충격을 더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정한 행동들이 문제의 뿌리가 아니라는 데 집중하면서, 덕의 윤리학은 그러한 행동이 나오기까지 반복된 습관, 기질, 성품 형성의 과정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제안할 것이다. 성(sexuality)을 논의할 때, 아직 행위의 적법성과 죄 중심으로 접근하는 전통이 있다. 성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어떤 행동이 죄가 되는가?”를 먼저 묻게 된다. 하지만 인간 성숙과 통합적 성을 고려해서 접근하면, 성윤리는 덕의 윤리학이라는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미국 가톨릭교회의 성추행 사건과 연루된 현안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가톨릭교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방법의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덕의 윤리학은 다소 답답해 보이는 다른 질문에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은 나는 누구인가?’,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이 되라고 부름받았는가?’, ‘어떻게 하면 제자로 살아가는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되고 싶은 갈망이 모두 '성'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전문직 윤리의 관점에서 전망

전문직 윤리는 윤리신학의 중심과목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첨예한 성윤리의 주요 현안을 논하기 좋은 접근방법 중 하나다. 라틴어 단어 ‘professio’는 “좋은 성품을 갖추고 인간의 필요를 섬기기 위해 요청되는 지식과 기술의 숙련을 통해, 자기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사랑의 동기”가 함축된 용어다.2)

간단하게 말해서 전문직 윤리는 성직자도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처럼 도덕적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일련의 ‘지식’과 ‘기술’의 숙련이 필요한 다른 분야의 사람들처럼, 최소한 사람들을 대하는 범위와 경계에 대한 전문적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성직자의 소명이 하느님께서 불러 주신 소명이라는 신학적 측면 때문에 놓치는 현안들을 전문직 윤리는 보완한다. 교회의 직무를 공동체 안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필요한 성윤리 분야의 전문성 요구가 성소의 가치를 파괴하지 않는다.

전문직 윤리의 핵심 원리들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하면, ‘힘의 남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성(sexuality)과 권력(power)의 상관관계를 신랄하게 논의한 바 있다. 푸코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중세 교구사제의 권력과 성이 긴밀하게 연결되었음을 논의한 바 있다. 오늘날 전문직 윤리가 성에 대한 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성에 풍부한 ‘영향력’의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영성신학자인 로널드 롤하이저(Ronald Rolheiser)는 1999년 출간한 "성(聖)과 성(性)의 영성"(The Holy Longing, 성바오로출판사, 2006)에서 “성(聖)과 성(性)의 영성”을 논의한 바 있다. 그는 성을 하느님나라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에서 풀어나갔다. 하나되고 싶은 갈망이 모두 ‘성(sexuality)’이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친근한 모습, 엄마의 젖을 문 아기의 모습은 모두 하나 됨을 갈망한다는 측면에서 성을 표현한다. 이러한 친근감의 표현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abuse=ab+use), 성추행(sexual abuse)이 된다.

전문직 윤리의 관점은 ‘미국 가톨릭교회의 성추문 사태’와 관련해서 어떤 시각을 제공할까? 윤리신학자 리사 풀럼(Lisa Fullam)이 말했듯이, 성은 사람에게 타인에 대한 사랑의 자리가 될 수도 있지만 상처와 폭력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 도저히 한 곳에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 에너지를 동시에 품은 자리가 인간의 성이기 때문이다.3)

전문직 윤리는 한두 번의 성적 이탈행위에 대해서 적법성을 판단하는 대신, 어떻게 예방할지 먼저 준비하자고 대답한다. 도덕적 행동이 마음의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점도 논의의 중심에 있다. 어떤 일탈된 행동이 그냥 나온 것 같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영적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재적 자기 이해와 초월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성윤리 교육이 오히려 성폭력의 예비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게 막았을 수 있다. 전문직 윤리는 각자 자기가 자신에게 전하는 윤리강령을 통해서 스스로 ‘약속’하고 ‘헌신’하여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려는지 논의하자고 제안한다.4)

 

사제의 성윤리 질문의 변화

사제들을 위한 성윤리의 질문이 현시대의 사태추이를 분석하고 행동의 적법성을 물어 왔다면, 다시 말해서 ‘행동’의 기준에 대한 물음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덕의 윤리학이 제시하는 ‘인격적 성장’과 성품에 관한 질문으로 주안점이 바뀌는 체험이 필요하다. 굴라의 "선함과 거룩함의 길"(The Way of Goodness and Holiness)에 소개된 사목자들의 영성을 위한 질문으로 마침 글을 대신한다.

“사목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할 때, 오랜 동료들은 나를 어떻게 묘사할 것 같은가? 은퇴식에서 사람들은 나의 사목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 같은가? 초대받은 사람들은 동료 관계와 가족관계 그리고 교우관계에 대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할 것 같은가? 각자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세 가지 덕목으로 작성해 보자.”5)

실제로 도덕적 당위에 대한 실천력을 제공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다. 무엇을 보지 못한 우리의 시선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 시선이 형성되기까지 정체성을 자각하게 해 준 귀한 시선들을 놓치고 살아온 시간에 대한 반성이 더 시급하다. 함께 동고동락한 사람들의 ‘시선’은 나를 감시하기도 하지만 건강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게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어떻게 훈련할 것인가? 덕의 윤리학 질문들과 성윤리와 전문직 윤리에 대한 논의들이 사제의 성윤리에 관한 질문을 바라보는 오늘의 시각에 작은 변화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1) 제임스 F. 키넌, 최성욱 옮김, '덕의 윤리학과 성윤리', "신학전망" 178호(2012), 236-266쪽.

2) Darrell Reeck, Ethics for the Professions: A Christian Perspective(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2), p.20.

3) Lisa Fullam, “Sex in 3-D: A Telos for a Virtue Ethics of Sexuality”, Journal of the Society of Christian Ethics, vol.27/2(2007) 참조.

4) Canadian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Responsibility in Ministry: A Statement of Commitment”, Origins 25(1996), p.633, pp.635~636 참조.

5) 최성욱, '교구사제의 영성과 성윤리: 전문직 윤리에 따른 윤리강령의 제안과 전망', "신학전망" 195호(2016), 132-133쪽 참고.

 

최성욱
부산교구 사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타클라라대학교에서 2011년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1년부터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친다. 번역서로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좋은 삶으로의 초대", "결혼생활에서 그리스도 발견하기"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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