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지난 3월 28일, 29일자 「좌담 ‘사제 성폭력’ 어떻게 볼까」 제하의 좌담 기사의 내용이 수원교구 성폭력 사건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오해를 빚을 수 있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등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아래와 같이 기사의 일부를 수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KBS 보도가 사실관계 확인에 소홀하여 엉뚱한 가해자를 만들어낸 것처럼 오해를 빚을 수 있는 점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합니다.

지난 2월 하순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천주교 수원, 대전교구 사제의 “성폭력” 사건은 큰 파장을 낳았다.

이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사제 성폭력의 원인과 대응 방향에 대해 점검하고자 3월 22일 좌담회를 열었다. 이 좌담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여성학 연구자 1명, 이번 사건을 주시하고 논평해 온 천주교 신자 3명이 참여했다. 그 내용을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참가자
- 김엘리 (여, 명지대 객원교수, 여성학 전공)
- 김재욱 (남, 천주교 평신도 사회사목 활동가)
- 이미영 (여, 우리신학연구소 발간 격월간지 <가톨릭평론> 편집장)
- 현우석 (남, 천주교 의정부교구 신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성찰하며

김재욱 :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의 경우)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두 사람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도 있고, 두 당사자 모두 아주 심각한 트라우마, 피해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발생하게 만든 본질적 원인을 알았으면,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또한 두 사람에 대한 치유의 노력은 별개 문제로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엘리 : 폭력의 개념도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은 바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말한다. 지금 미투(Me Too) 운동에서 계속 말하는 것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피해자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반드시 물리적인 폭력이 있어서 사람을 저항할 수 없게 하고 강간하거나 성추행하는 등의 경우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은 (성폭력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해 왔는데, 그것만이 폭력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위력'이라는 것이 이미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말한다. 사제와 평신도, 또 평신도 중에서도 여성이라는 위치.... 꼭 여성이 (성관계에) 동의했냐, 안 했냐는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동의하지 못함'이 있다는 것이다. 위치 때문에, 권력 관계에 있기 때문에 “싫어요”, “안 돼요” 하고 말하지 않아도 성폭력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봐야 하고, 인정해야 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같은 경우도, 안 전 지사 측은 (성폭력이 아닌) “부적절한 관계”를 주장하는데, 사실 권력 관계에서 여성은 순종적 마음, 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김재욱 : 어떤 분들은 본당 신자와 사제가 무슨 권력 관계냐고 물으며,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사목적 권위에서 나오는 위력도 있다. 저도 그것은 받아들인다.

그런데 두 당사자와 하느님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 2차 가해가 되지 않으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소명할 것은 소명하라. 소명권을 주자는 것이다. 그래야 미투 운동이 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 아무 말도 못하게 재갈을 물리면 이게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존의 교회 관행은 대외적 침묵”
주교들의 빠른 사과, 후속 조치의 두 측면

현우석 : 그 동안 교회가 조치를 취하는 관습 같은 것이 있다. 만약 가톨릭교회를 욕하는 영화가 나오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영화가 뭐가 잘못됐다고 따지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같은 효과를 줄까봐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효과가 있는데, 사제들의 성추문이나 횡령 등에 있어서 최대한 덮고 가는 기조다. 될 수 있으면, 반응을 아예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교회 안에서 조치를 취할 것은 취하되, 침묵하는 것이다. 그렇게 넘어가려고 하는 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김재욱 : 기본적으로 주교님들은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한다.


김엘리 : 그런데 최근 사제 성폭력 사건 뒤 천주교는 너무 발 빠르게 대응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공개 사죄하고, 우리는 이렇게 대처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면, 매우 신속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며 '아, 천주교가 갖고 있는 도덕성이 저렇게 발휘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이 문제가 봉합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폐쇄성으로 갈 수 있다. 그냥 '우리'가 다 발표하고, '우리' 안에서 대처해서, 외부의 어떤 것이 개입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느낌이었다.


김재욱 : 정확하게 보셨다. <KBS> 보도가 나오자 수원교구에 이어 정의구현사제단, 주교회의 사과 성명이 나왔다. 이상하지 않나?


이미영 : 그렇다. 다른 경우 이런 일이 거의 없었다.

사회사목 활동가 김재욱 씨. ⓒ강한 기자


왜 가해자는 말이 없냐는 지적도 있어
“사실관계 확인 소홀하지 않았나 걱정”

현우석 : 그런 칼럼도 있었다. 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본인이 사과하지 않고, 대신 사과하냐는 내용이다.(최현숙 칼럼, 한겨레 2018년 3월 11일자) 주교회의 의장, 교구,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왜 본인은 가만히 있냐는 질문이다. 그동안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연극인, 시인 모두가 직접 사과했는데 말이다.

사실 그게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성직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정직, 면직시킨다. 면직시키면 옷 벗기는 것이니 끝나는 것이다. 정직은 일정 기간 동안 벌을 주는 것이니 당사자는 침묵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그 관행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는 아니었다. 도덕성으로 따지면 가장 상위에 속하는 종교인인 천주교 신부는 왜 가만히 있고, 침묵을 지키는가? 이것을 보면서 또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교회는 관행을 지키고, 가만히 있다 보니까 뒤처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욱 : 정직 당한 상태에서 발언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저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판단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

성추문 사건으로 추락한 교회의 사목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겸손과 진실의 자세로 이런 문제들을 대해야 한다. 잘못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인정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실만이 피해자와 교회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수원교구 사건이 사과에만 급급한 나머지 사실관계 확인은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걱정을 갖고 있다. 처음 보도를 한 <KBS>도 가해 당사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취재로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 않았고, 많은 언론이 후속 취재 없이 <KBS> 보도를 받아 적기 바빴다. (몇몇 언론사들이 가해자가 "지난 7년간 사죄했다"는 기사를 내보내서) 엉뚱한 2차 가해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 것 아닌가?

김엘리 : 저는 가해자나 남성들이 끊임없이 자기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도 성찰해야 하지만, 개인 또는 신부님들이 들여다봐야 한다.


남녀 관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사제가 성적으로 다가오면 신자는 충격

이미영 : (좌담회 기사 1부에서 거론된) ‘늘어나는 종교인의 성폭력 범죄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자료집에 종교인들의 성폭력이 왜 더 많이 일어나는지 유형이나 특징을 분석해 놓은 것이 있다.

대개 신도와 성직자의 관계는 일반적 남녀 관계가 아니다. 여자들이 성직자를 볼 때 자신이 영적 지도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위계(位階) 관계다. 이처럼 위계 관계로 맺어져 있고, 상대방이 남녀 관계로 다가올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던 관계에서 그러한 성적 관계가 발생했을 때, 여성들의 대처는 무척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기가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에게 성적 추파를 던지는 것이 충격적인 가정폭력인 것처럼, 신자들에게는 (성직자의 성폭력이) 그렇게 느껴진다.

김재욱 : 성직자의 성폭력은 친족 성폭력과 매우 유사하다.

이미영 : 가톨릭 성직자를 양성하는 과정을 보면, 신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남성만 따로 모아서 분리된 교육을 한다. 요즘은 남녀공학이 많지만, 옛날 같으면 남중, 남고를 나와서 남자 신학생끼리 모여 10년 동안 신학교 교육을 받는다. 그러니 실제로 여성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상태로 사제가 되어서, 대부분은 사목 현장에서 여성 신자들을 만나게 된다.

아까 신부님들도 예쁜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이야기 나눈다고 했는데, 요즘은 학교에서도 그런 말을 하면, 상대를 같은 학생이 아닌 성적인 대상으로 평가한다고 문제가 된다.

김엘리 : 성희롱이 될 수 있다. 맥락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미영 : 조금씩 문제가 제기되면서 남자들도 표현에 조심하도록 점차 변하고 있는데, 신학교는 (일반 사회와) 분리돼 있으니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고 그런 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도 생겨날 여지가 없다.

현우석 : 신학생도 방학 때 (원래 소속 성당에서 여성 신자들과) 만난다.

이미영 : 그래도 신학생을 “학사님”이라고 부르고, 거기에 또 위계가 있다.

현우석 : 그렇다. 위계가 있다.

이미영 : 그렇기도 하고, 사실은 (신학생, 사제들이) 여성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평신도들과 관계 맺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기자 : 성직자를 너무 떠받들거나 특권을 주는 한국 천주교 문화의 문제가 크다는 것인가?

이미영 : 떠받드는 게 아니라, 신자들은 신학생이나 신부는 '무성'(無性)이라고 생각한다. 성적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보고 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당연히 남녀 간에 사랑할 수도 있는데, 신자와 성직자의 관계에서는 그런 관계를 전혀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사제, 수도자 전문 치유 센터 있어야”

현우석 : 저는 신학생 때, 초등부 교사회의 여성 신자들이 쓰는 방에 어쩌다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속옷을 늘어놓은 방에 저를 들어오라고 한 것이었다. 널린 속옷을 보고 나는 “야, 이거 뭐야?” 신자들은 “야, 학사님은 왜 들어오라고 그래?” “학사님이 남자야?” 이런 식의 말을 했다. 저는 속으로, '야, 그래도 그렇지 참....' 하고 생각했다. 신자들이 신학생, 신부를 '무성'의 존재로 본다는 데 공감한다.

어쨌거나, 남성으로서 본성적 욕구를 포기하고 정결과 독신의 길을 가지 않으면 사제로서 살아갈 수 없다. 본성적인 욕구를 '누른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사제는 그것을 누르고 사목 활동에 힘써야 한다.

사제 성폭력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당사자의 개인적인 성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차별 받거나 학대, 무관심 속에 자라면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상처, 심리적 어려움을 겪다가, 그 어려움이 각종 중독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도박, 게임 중독, 또한 성 중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사건이 터졌을 때 쉬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한국 천주교 사제, 수도자를 모두 1만 명이 넘는다. 각 교구가 개별적 후속 대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효과적인 치유, 치료나 교구가 원하는 문제 해결은 매우 어렵다. 미국 교회처럼 우리도 사제, 수도자를 위한 전문적 치유, 치료 센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제, 수도자들의 사목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성향이나 어려움, 한계를 바꾸고 훈련할 수 있는 센터가 저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기자 : 원인 진단과 대응책 마련이 분리될 수 없어서 그동안 이야기가 섞여 나왔다. 남은 시간 동안 사제 성폭력 문제를 생각하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이 있을지 등 말씀 부탁드린다.

여성학 연구자 김엘리 씨. ⓒ강한 기자

주교회의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위'가 제대로 활동하려면

현우석 : 미투 운동 뒤 페이스북에서 여러 의견들과.... 정말 흥분과 분노, 슬픔, 불안, 두려움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것을 보면서 성범죄, 성폭력의 특수성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연락을 하도록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제들과 신자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사제들에게는 이러한 성폭력의 특수성에 대해서 교육해야 한다.

교회가 주로 피해자인 여성들이 자신의 인격적 권리, 고통의 치료, 치유를 위해서, 최대한 그들을 보호하면서도 발언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주교회의가 만들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가칭)가 정말 피해자들을 존중하면서 잘 운영됐으면 좋겠다. 단순히 보고 받고, 형식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정말로 교회가 그들을 감싸 안고 받아 주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모자랄 판에, 형식적이거나 이름만 걸고 있는 위원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는 개인적으로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조직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먼저 꼬리쳤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꾸준한 교육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더 성숙해지는 것이다. 정말, 인간성의 문제, 인간 본질의 문제다. 교회가 지속적으로 신경 쓰고 함께하지 않으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신자들은 매우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정직'이냐? '면직'을 시켜야지. 옷을 벗기라고.” 개인적으로도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 “(가해자가) 몇 년 쉬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는 것이냐? 돌아와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외칠 것 아니냐?” 그런 것에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는다.

저 개인적으로는 정직이 '사제의 징역형'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자들이나 일반인들이 보기에 '뭐야, 한 3-4년 쉬게 하고 다시 돌아오면 끝이야? 아무런 반성의 표현도 없이.' 하고 느낄 수 있다.

결국,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의 사과와 반성의 표현이 있어야 되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피해자에게 직접 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그것이 피해자에게 조그마한 위로라도 되지 않겠나.

또한, (정직이 풀리더라도) 본당으로 즉시 돌려보내지 말고, 신자들을 만나지 않는 기구 같은 데 있게 해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신부에게 교회가 벌을 주고 있다, 합당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복음적 해결은 책임과 진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소명 들어야”

김재욱 : 저는 주교님들이 줄줄이 사과하는 것을 보고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었다. 교회가 감추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있는데, 이것이 더 폭로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교구의 특별사목서한이 그렇게 신속하게 나오는 것도, 일단 인정하고 덮자는 것으로 저는 생각한다. 주교회의가 발표한 내용들이 나쁘지 않다. 다만 진정성이 조금 의심됐다.

교구별로 피해 접수처를 만들면 과거에 교회가 인지하지 못했던 여러 사례들이 접수될 수 있다. 아니면 지금도 그런 투서들이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어느 교구나 주교님들이 속앓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건이 터질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주교님들이 예전처럼 쉬쉬하고 덮을 것 같지는 않다. 아주 원칙적으로 할 것이다.

가장 복음적인 해결 방식은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소명할 것은 소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대책을 만드는 것이다.

저는 교구가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수원교구 신부님들에게서 자성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놀랐다.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분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주교님들도 조금 변한 것 같다. 가톨릭 여성 상담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쇄신을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 같다.

저는 일반적 성희롱 예방교육이 아닌 인권, 젠더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을 제안했다. 왜, 어떻게, 무엇을 매개로 성폭력이 지속되는지 사회, 구조적 측면을 봐야 하고, 인권, 성평등 교육이 되어야 한다. 차별, 여성에 대한 이해,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에 대한 자각도 필요하다.

감수성 교육이란 결국 타인을 위한 배려심을 크게 키우는 교육이 아닌가. 저는 (수원교구 사제들에게) 그것을 제안했고 여러 사제들이 긍정적으로 논의하는 것 같다. 그런 논의가 되고 있다는 것이 매우 긍정적이다.

그리고 주님 부활 대축일(올해는 4월 1일) 이후 교구 성폭력 피해 접수처가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저는 주교회의 차원의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폭력' 문제에만 갇힐 수 있다.

오히려 교구별로 '사목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목윤리규정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매년 한 번씩 성폭력 예방교육을 포함한 사목윤리교육이 있어야 한다. 사목현장에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문제가 되는 투서가 들어오면 주교가 알아서 대처하다 보니 대처가 들쑥날쑥했다. 비슷한 일을 한 어떤 신부는 휴직이 되고, 어떤 신부는 휴양이 된다. 가이드라인이 없고, 매뉴얼도 없다. 그런 것을 만들자.

그리고, (교회 문제를) 대놓고 떠들자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 내에서 공론화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것이 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사제, 주교님들도 그런 정도로는 열려 있는 것 같아서 희망을 갖는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조금씩, 교회가 비록 부족하고 약점도 많지만, 그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으리라는 소박한 꿈을 잃지 않는다면 저는 희망이 있다고 본다.

현우석 신부 ⓒ강한 기자

“용서를 강요하지 마라”

이미영 : (최근 사제 성폭력 언론 보도 뒤) 아주 신속하게 주교단의 사과문이 나왔다.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한편에서 어떤 신자들은 '이제 주교들이 알아서 할 테니 더 이상 이 문제를 말하지 말라'고 입막음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들이 있었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더 많은 성폭력 사례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런 이야기들이 나와야 될 것 같다. 오늘 저희가 몇 가지 드러난 문제만 갖고 말했는데, 교회 안의 폭력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되어야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원인들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피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교회 안에서 만들어 가면 좋겠다.

평신도들, 특히 여성 신자로서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입장에서 먼저 감정이입이 된다.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 얼마나 나쁜 사제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신학생이나 사제 등 남자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사제도 참 불쌍한 사람이다. 이 사람도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다.” 이렇게 가해자를 옹호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두루 품는 모습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이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자에 대해 계속 안 좋은 말을 하면서 남자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죄는 미워하되 가해자를 용서하자”는 담론이 잘못 이해되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의 죄를 성급하게, 너무나도 쉽게, 빨리 용서하도록 강요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회유하고 협박하는 데 “용서”라는 성경 말씀을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어쨌든 피해자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치유에 교회가 더 많이 신경 써야 된다는 것에 저는 매우 공감한다.

저는 신자들이 피해자의 신상(신상정보)을 캐기보다는, 교회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꾸 2차 가해하지 말자. “여자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말들은 그냥 하는 말이라도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조심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신부님들에게는 '정직'이 큰 징벌로 여겨지지만, 신자들은 '어차피 가해자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 화가 나는 것 같다. 학교 같은 데서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 '원 스트라이크, 아웃'시켜서 성폭력 가해자가 다시는 그 자리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처럼) 교회도 신자들과 관계를 맺고 사람을 대면하는 일인데, 정직됐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 그 사제는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자들의 정서상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뿐만 아니라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도 평등한 문화라면, 이렇게 잘못된 사제들의 모습을 옆에서 누군가 바로 조언해 주고,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게 할 수 있을 텐데, 평등하지 않으니 조금 이상한 모습이 있어도 바로 제지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모른 척하는 문화가 될 수도 있다. 교회는 이를 바꿔 평등한 문화로 나아가는 데 더 신경 써야 한다.

여성과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문화가 있어야 그 안에서 이상한 것도 도드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 문화가 너무 위계적이고,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며, 보조적인 역할에만 머물러 있다.

 

“근원적 성찰과 피해자 중심주의가 중요”
“교회 내 조치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바라”

김엘리 : 선생님이 다 말씀하셔서, 제가 이야기할 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반복되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성폭력은 '성차별'과 같이 오는 것이다. 성차별주의가 만연한 곳에 성폭력이 있다. 단순히 성폭력을 막는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차별이라는 측면을 더 들어가서 봐야 한다.

'가부장성'은 단지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 어린 사람, 또는 평신도와의 관계에서도 있다.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교회 안의) 전반적인 가부장성을 더 성찰하고,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는 특별위원회니 일시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기자 :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현우석 :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김엘리 : 또 '가칭'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나중에 '사목윤리위원회'로 갈 수도 있는 것인가?

김재욱 : 아니다. 나는 수원교구에 그런 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내가 알기로는 천주교 예수회를 제외하고 각 교구별로 사목윤리위원회가 아직까지 없다. 개신교는 목회자 윤리기구나 윤리강령이 있다.

김엘리 : 예.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2가지다. 첫째, 먼저 말씀드린대로 성폭력 문제를 보다 근원적으로 대해야 한다. 단순히 (문제를) '접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으로, 더 질적인 일들을 해 갈 수 있게 만들어야 실효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에 인권센터 같은 것은 있나?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있는데, 그게 사회적 인권을 말하는 곳이다.

김재욱 : 그것은 없다.

김엘리 : 그러니까, 그런 부분이 더 보완되거나, 아니면 지속성을 갖도록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분명한 것은 '피해자 중심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렇다고 성폭력 문제를 너무 확대하는 방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하게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야 한다.

이미영 : 조금 덧붙이면, 벌어진 사건에 대한 문제 해결 중심으로만 가면 안 되고, 교회의 문화를 바꾸는 쪽이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일어난 사건이 투명하게 처리되면 좋겠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분명한 사과라든지, 그가 어떻게 정직, 징계 처리가 됐는지, 이런 것들이 교회 안에서만 조용하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가 어떻게 회개하고 있고, 어떤 징계를 받고 있는지 투명하게 알려지면 신자들도 좀 더 납득할 것 같다.

김엘리 : 그런데 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주교부터 전문가 등.... 전문가가 들어가기는 한다.

특별위원회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인권의식, 젠더 감수성이 있는 분들이어야 이 문제가 제대로 풀린다. 주교 중심, 성직자 중심으로 가면 조금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자 : “주교 중심은 문제적”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김엘리 : 제가 말을 아껴서 했는데, 조금 더 말하자면, 비민주적인 교회에서 성직자가 함께하지 않으면 평신도들이 힘을 발휘하기 힘들지 않나?

이미영 : 맞다.

김엘리 : 그런 한계도 있는 것이다.

기자 : 관행상 이런 주교회의 위원회가 만들어지면 분명히 주교를 위원장으로 할 가능성이 크다.

김엘리 : 그렇다면 주교 중에서 인권의식, 페미니즘 관점, 젠더 감수성도 있는 분이 위원장이 되면 좋겠다.

김재욱 : 저는 개인적으로 주교회의 차원에서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를 세우는 것을 반대한다. 제가 보기에는 의미와 실행력이 없고, 상징적인 의미만 있다.

김엘리 : 그런 부분이 있다면 다시 검토하셔야 할 것 같다.

이미영 <가톨릭평론> 편집장. ⓒ강한 기자

'진정한 사과'와 '용서'는 어떤 것일까

김재욱 : 교구별로 해야 된다.

덧붙여, 제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했던 것은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죄에 대한 비난이어야 되는데, 자칫하면 또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나 증오가 될 수 있어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용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댓글 같은 것을 보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김엘리 : 그런데 '진정한 사과'라는 것이 무엇일까?

김재욱 : 그것을 저는 잘 모르겠다.

김엘리 : 그러니까, 우리는 그것을 고민해야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인정하는 것이다.

현우석 : 우리나라 정서상, 진정한 사과는 절대 조건을 붙이지 않는 것이다.

김엘리 :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다. 가해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변호하고, 말한다. “나는 성폭력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현우석 : 지금은 남자들은 침묵해야 될 때지 않나?

이미영 : 함께 일하는 남자 동료들도 다 이런 말을 한다. 이럴 때 남자들은 (여성들이 더 말할 수 있도록)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다들 죄인이라고.

현우석 :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 가족들이 정말 엄청난 분노를 표현했다. 그때는 무조건 들어 줘야 하는 것이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절대 이러면 안 된다. 무조건 듣고, 같이 울고, 같이 화내고, 그래야 그 다음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어떻게 용서하라고 충고할 수 있나? 용서는 오직 당사자의 몫이다. 용서를 강요하지 마라. 그것이 무척 맞는 말이다.

이미영 : 미투 운동에 대한 분석 중 하나로 사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최초의 미투라는 말이 있다. 그들도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들에 대해 일본이 사과를 거부하는 것에 우리는 분노하고, 할머니들이 진심으로 용서할 때까지 일본이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는 사제의 성폭력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용서를 빌어야 한다.

현우석 : 2차 가해가 생긴다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이게 성범죄의 특수성이구나. 그래서 제가 누군가에게 물어봤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냐? 만약 내가 잘못했다면 어떻게 용서를 청하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김엘리 :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예전에 개신교에서 어떤 목사가 성폭행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사건이 자꾸 나니 성폭력 가해자의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해자가 어떤 태도를 빨리 취해야 되느냐는 것이다.

그 목사는 너무나도 빠르게, 성명서 같은 것으로 사과했다. 그런데 그 문구를 잘 읽어 보면, 좀 묘했다. '하나님께 나는 이미 용서를 빌었다'는 식이어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고, 마치 하나님이 나를 용서했으니 피해자의 용서가 필요 없다는 듯했다.

현우석 : 그게 개신교의 문제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제 개운하다.'

이미영 :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 죄를 하느님이 용서하실까?

현우석 : 용서는 과정이다. 더욱더 잘 사랑하는 과정이고, 절대 용서가 끝이 아니다. 그래서 용서 받고, 나 때문에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이 고해성사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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