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지난 3월 28일, 29일자 「좌담 ‘사제 성폭력’ 어떻게 볼까」 제하의 좌담 기사의 내용이 수원교구 성폭력 사건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오해를 빚을 수 있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등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아래와 같이 기사의 일부를 수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KBS 보도가 사실관계 확인에 소홀하여 엉뚱한 가해자를 만들어낸 것처럼 오해를 빚을 수 있는 점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합니다.

지난 2월 하순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천주교 수원, 대전교구 사제의 “성폭력” 사건은 큰 파장을 낳았다.

이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사제 성폭력의 원인과 대응 방향에 대해 점검하고자 3월 22일 좌담회를 열었다. 이 좌담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여성학 연구자 1명, 이번 사건을 주시하고 논평해 온 천주교 신자 3명이 참여했다. 그 내용을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참가자
- 김엘리 (여, 명지대 객원교수, 여성학 전공)
- 김재욱 (남, 천주교 평신도 사회사목 활동가)
- 이미영 (여, 우리신학연구소 발간 격월간지 <가톨릭평론> 편집장)
- 현우석 (남, 천주교 의정부교구 신부)


성폭력은 인간 존엄성 침해
천주교의 권위주의 문화, 수직적 관계도 반성해야

김재욱 : 천주교 수원교구 사제에 대한 <KBS> 보도가 나오면서 저는 억울하다기보다 참담했다.

2018년은 '수원교구 공동선실현 사제연대'가 만들어진 지 만 10년째인 해다. 예전에 수원교구는 “유신교구”라고 할 만큼 매우 보수적이고, 사회 문제에 입장 표명도 안 했다. 사회사목에 관심 있는 신부 모임인 공동선실현 사제연대가 결성되고, 헌신적 노력으로 교구 내에도 사회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고 여러 성과가 있었다. 10년 됐으니 자랑할 것은 자랑하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준비하는 과정에 이 사건이 터지고, 저는 충격이 매우 컸다.

처음에 이 좌담회 제목을 보고 불편했다. 교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말해서 불편한 게 아니라 “교회 내 권력구조”라는 말 때문이었다. 아니, 하느님 백성인 교회에 무슨 권력이 있나? 봉사와 섬김만 있을 뿐이지. 성직자가 위, 신자는 아래에 있는 것이 자주 현실로 드러나는 모습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사제와 신자가 고용, 피고용 관계가 아니고, 경제,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가 서로를 위아래로 나누고, 수직적 관계를 더 공고히 하는 게 아닐까.

성 관련 문제로 성매수도 있고, 성추문도 있다. 저의 천주교 활동이 10여 년 넘으면서 들은, 교회 안에서 쉬쉬하며 애써 외면했던 이야기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이번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사목적 권위의 남용이 우리 교회를 서서히 병들게 했다. 그동안 우리는 병든 교회의 고통에 직면하지 않았다. 큰 분란의 소지가 있을까, 애써 외면하고 회피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지체다. 그래서 교회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존재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우리 몸은 2조 개 이상의 세포로 이뤄져 있고, 이 모든 세포를 한 몸으로 아우르는 유기체적 조절 장치가 있어서 신체 어느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온몸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놀라운 공조 기능이 나타난다.

손가락 끝에 염증이 생기더라도 문제가 생긴 부위를 우선 돕기 위해 전신의 백혈구들이 상처 부위로 몰려 세균들과 한판 사투를 벌이느라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그런 공조 기능을 발휘하는 대신 마약성 진통제로 연명했다. 이제는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마약성 진통제도 들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이번 사건이다.

성직자의 돈 문제든 여자 문제든 쉬쉬하며 덮어 왔는데,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내부에서 문제를 공론화하고 사목 현장에서 생기는 여러 윤리적 문제에 교회가 잘 대처해 왔다면, 이렇게 문제가 크게 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못해서 이런 문제까지 왔고, 교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낙후돼 있고,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반성해야 된다. 이 문제에 대해 교회가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을 할 때가 됐다.

이 사건이 터지고 저는 매우 괴로웠는데, 잘 됐다는 생각도 든다.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예 더 드러내는 것이 낫다. 환부가 잘 드러나야 좋은 처방도 내릴 수 있다.

논의 주제는 '성폭력'에서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권위주의 문화, 수직적 관계 등의 문제를 교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대안을 마련할지 폭넓게 고민하면 좋겠다.

저는 성폭력 문제의 본질은 인간 존엄성, 인권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이다. 다시 우리 교회도 돌아갈 때가 됐다. 너무 깊이 병들었다.

사회사목 활동가 김재욱 씨. ⓒ강한 기자

“교회 내 성폭력은 전에도 있었다.
피해자의 실명 폭로 놀라워”


이미영 : 교회 안 '성추문' 같은 것이 그동안 없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 루머처럼 들리는 것은 많았는데, 이게 폭로된 게 더 놀랍다. 피해 당사자가 나와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저는 정말 완전히 놀라웠다.

교회 안에 성폭력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남녀 간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식으로 덮고 넘어간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강간 문화'라고 할 만큼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폭력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도 사랑의 왜곡된 모습처럼 이해되고, 덮어 와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도 많았을 것 같다.

한편, 천주교 사제는 독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교회 내 분위기는 이들이 성적인 문제를 일으켰다면 이들을 유혹한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라며, 여자 탓으로 돌리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더욱 폭로하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았나?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뀐 것이다. 성폭력 사건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제는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한 것이고, 이를 드러내고 문제제기하는 시대가 왔다.

 

김엘리 : 전에는 천주교에서 성폭력이 드러났던 적이 거의 없었나?

 

이미영 : 예를 들면, 여성과 문제가 있으면 그 사제가 환속한다고 한다. 또는 사제 인사 발령에 '정직', '면직'이 나오면, 이 사람은 무슨 사고를 쳤을까 하고 신자들은 궁금해 하고, 대개 여자 문제나 돈 문제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추측한다.

 

김엘리 : 내부에서 신부님을 징계하는 방식으로 끝났던 것이다.

 

“'정직' 처벌은 교회 나름의 징역형”


현우석 : 저도 이번 기회에 '정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정직은 신자들 앞에서 미사를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혼자 미사를 드릴 수 있지만, 신자들 앞에서, 또는 공동집전도 못한다.

어느 교구는 외출도 제한시킨다. 차도 뺏고. 이렇게 해서 몇 년간, 예컨대 3년 전후로 근신하게 한다. 그렇게 보면 신부들에게는 이것이 나름의 '징역형'이 아닐까? 감옥에 가지 않을 뿐이지, 사제의 중심 직무를 못하게 하고, 혼자 근신하며 지내는 것이다. 일반인이나 신자들이 보기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같은 사제로서 볼 때는 또 다른 징역형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사제들의 성범죄, 성폭력 문제는 연극계 성범죄나 교육계, 교수들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교구청의 경우,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데, 노래방 가서 뽀뽀하고 그런 신부가 있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었다. 결국 다른 직원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도, (문제제기하면 직장에서) 잘릴까 봐 외부로 알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성폭력은 은밀한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신자들 대부분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실을 모를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심한 경우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네가 꼬리 쳐서 이렇게 된 것 아니냐”는 식으로, 우호적인 시선이 아닌 것이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 입장에서는 내 편을 들어 줄 사람이 별로 없고, 어디 가서 호소할 데가 없는 것이다.

천주교의 경우, 특징이 있다. 구체적으로 사건을 기록해 교구청에 고발해서 이슈화시키면, (문제 당사자가 본당사목 사제라면) 신부가 본당을 떠나 다른 본당으로 옮기게 된다. 큰 문제가 아니라면 말이다. 강간이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임기 중간에도 본당을 떠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서, 문제가 생기면 신부가 본당을 떠나게 해 문제를 해결하는 관례들이 많았다.

다른 '갑'에게는 없는 종교지도자라는 위치 때문에, 사제 성폭력에 대해 더더욱 피해자가 문제를 이슈화시키기 어렵다. 더 큰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이다. 욕먹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서, 시끄럽게 떠들어야만, 교구청에 공식 고발해야만 조치가 취해지고 아니면 묻힌다.

이미영 <가톨릭평론> 편집장. ⓒ강한 기자

“신학적 관점과 성폭력은 관계가 없을까”
“성에 대한 금기시, 여성과 담 쌓기는 잘못된 방향”


김엘리 :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여러 사회적 의미가 있겠지만, 매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성폭력이 일어나면 여성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회, 문화적 요소가 있었다.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침묵을 깨고 나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아까 (그동안 천주교에서 성폭력 문제 제기가 없었는지) 물은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조용히 내부에서 했는데, 공개적으로 나오니 조용히 내부에서 하는 게 안 되는 새로운 양상으로, 교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씨앗이 되고 있다.

매우 고민스럽고,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교회 안에서도 고민을 갖고 들여다봐야 하지 않는가? 단순히 '처리'하고, 사건을 무마하고, 이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보자는 말씀도 저는 공감이 많이 됐다.

성폭력은 다른 폭력과 다르다. 그래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다고 본다.

보통은 폭력이 일어나면 가해자 잘못이지 않나? 그런데 성폭력은, 이상하게도 '피해자 유발론', 즉 피해자가 성폭력을 일으킨 것처럼 이야기된다. 여성의 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여성의 몸은 정숙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성적인 유혹자라는 생각이 통념으로 있다 보니, 마치 여성들이 성폭력을 일으킨 것처럼 된다. 그러니 여성들 스스로 “제 탓이요”, “내가 왜 거기를 갔을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하고 자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가톨릭 교회의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종교가 갖고 있는 신학적인 면이 교회에서 성폭력을 생각하는 것과 결합된 것은 아닐까? 이런 측면을 신부님들도 들여다보시고, 성폭력이 일반 사회와 달리 교회 안에서 이야기되는 방식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내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의 상식으로는 신학은 이원론적이다. 육체보다는 정신이 조금 더 우월하다고 보고, 육체는 정신이 통제해야 하는 것으로 조금은 폄하하는 사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성은 쉬쉬해야 하거나, 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리고 아까 여러분들이 말한 여성 규범이 있다 보니 더 말하지 못하게 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런 특성들로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 보신다면 교회 내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조금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김재욱 : 종교,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성을 금기시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신학생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고민되는 게 많다. 성에 대한 건강한 토론과 건강한 대안을 만들어 주지 못하면, 잘못하면 왜곡 표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학교에서도 성 감수성 문제, 건강한 성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가고, 교육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현우석 : 사실 본성적 욕구를 억압하면, 오히려 그것이 건강하게 발휘되지 못할 수 있다. 섹스 중독이나 왜곡된 표현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성을 금기시할 게 아니다. 남자가 예쁜 여자를 보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게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성이 그것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김엘리 : 서로 끌리는 감정들은 있을 수 있다.


현우석 : 사실 신부들도 “우리 본당에 아주 예쁜 자매가 있어”, “우리 주일학교 교사가 진짜 예쁜 애가 있어” 그런 말을 흘러가듯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실 거기서 더 들어가지 않는다. 뭔가 벽이 있는 것이다. 이 이상은 말하지 말자는 식으로. 신부들도 아는 것이다. 그것을 말해서 어쩔 것인가? 우리가 (그 여성과) 만날 것인가? 그러면서 결국 그런 성적인 문제(에 대한 대화)는 표피적인 것으로 끝나 버린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회에서 성 문제를) 덮고, 터부시하고, 최소한으로 하고, 윤리적인 면만 강조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이성이 서로 사랑하고, 그래서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셨다. 인간성, 성적인 면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교회가 열린 시선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필요 이상의 죄의식, 여성과 필요 이상의 거리를 두는 것은 잘못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영 : 성은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말씀하셨다. 서로 이성에게 끌림이 있을 수 있는데, 사제들은 그것을 포기했고, 금욕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자들이 더 권위적으로 보는 게 있다. 그런 극기의 노력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더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사제들은 자기가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일부러 여성에게 벽을 만들기도 하고, 극단적인 분들은 여성이 개인적으로 면담을 요청하거나 조금만 친밀하게 다가가도 '이 여자가 나를 유혹하려고 마귀짓 한다'는 식으로 여성혐오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한편에 있다.


현우석 : 주로 또 다른 여성 신자들, 특히 나이 많은 여성 신자들이 그렇게 바라본다.


김재욱 : 저는 이번 사건 뒤 너무 속상해서 한 본당 여성 신자들에게 물어봤다. “강간 미수가 더 나쁘냐? 사제가 이성을 사귀는 게 더 나쁘냐?” 그러니 그들은 “강간 미수가 나쁘다. 그런데, 사제가 이성을 사귀는 것은 더 나쁘다”고 답했다. 매우 충격적이었다. 전체의, 일반적인 생각은 아니겠지만.

왜 그게 충격적이었을까? 사제는 독신이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성욕)를 자제, 절제하면서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더욱 신뢰하고 권위가 높아졌는데, 이성을 사귀면....


이미영 : 그 권위가 사라지는 것?


현우석 : 사제가 일종의 '조당'에 걸리는 것이다.

(* 편집자 주 : 천주교에서 조당(阻壋)은 혼인성사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자연법 또는 교회법상의 장애, 즉 '혼인 장애'를 일컫는 옛말이다. 예컨대 천주교 신자가 민법상 이혼 뒤 재혼한 경우를 “조당(혼인 장애)에 걸렸다”고 표현하며, 이는 “공공연한 간음 상태”(가톨릭교회 교리서 2384항)로 여겨지기 때문에 성체성사 등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김재욱 : 교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는 사제와 신자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제, 수도자, 주교, 평신도 모두의 문제다. 교회 안에 이 문화가 깊게 뿌리 박혀 있고, 이것을 방조한 교회 공동체는 책임이 있다. 무조건 주교와 사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가 터지면서 두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신자들은 여성이 주류이고, 천주교뿐 아니라 어느 종교든 여성이 없으면 문 닫을 데가 많다. 그럼에도 사제들의 여성 이해가 너무 낙후돼 있다. 매우 많은 여성이 교회에서 봉사하는데, 여성을 단순히 사목의 대상으로만 대상화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성 평신도는 사목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사목 협력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제직이 소중한 것처럼 평신도 사도직, 수도직도 매우 소중하다. 교회는 타원형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운데에 하느님이 있고,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각자가 맡은 직무, 직분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성직 중심주의다. 모든 권한이 주교에게 있는데, 주교도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특히 이런 문제 터지면 매우 힘들어 한다. 왜 모든 것을 주교가 떠안고 가려고 하나? 권한을 분산하고, 위임하자.

본당 신부들도 마찬가지다. 본당 행사부터 관리, 경영 등 모든 것을 다 한다. 성당 지을 때 매우 힘들어 한다. 신자들이 책임 안 지고, 모든 책임은 사제가 갖고 있다.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다. 신자들이 마음에 안 들고 부족할 수 있지만, 양성하고, 스스로 잘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게 사회교리에서 말하는 보조성 아니겠나?

여성학 연구자 김엘리 씨. ⓒ강한 기자

 

사제 대상 성교육 '내용'이 문제,
교회에 대한 전문적 내용 담아야


김엘리 : 성교육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천주교 주교회의 자료도 보니 성교육을 한다고 되어 있고,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성교육의 '내용'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하고 싶다. 사실, 평신도와 사제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는 아니잖나? 게다가 평신도 여성은 남성과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식으로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이나 위치, 그들의 봉사의 의미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가, 이런 것을 충분히 이해한 내용이 들어간 '성교육'이면 좋겠다.

성교육에 성에 관한 내용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관계, 여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내용이 교회 문화에 관한 것과 어울려 들어가야 한다. 더 전문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성교육 내용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요즘 계속 나오는 무지한 말 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 뉴스 진행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치인들, 절대로 비서를 자기 방에 들어오게 하면 안 됩니다. 로비에서 만나셔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갑갑하다. 방에서 만날 수도 있다. 꼭 문을 열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 예방 방법으로 '남녀가 함께 있으면 문을 열어 놓아라' 이런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문을 닫았나, 열었나 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남성이 함께 일하는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함께 일을 도모하는 파트너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폭력은 '성적 끌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될 거야' 하는 마음에서 온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은 권력관계, 권력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교황', '종교지도자' 위치가 피해자 어렵게 해
더 이상 언론이 천주교를 봐 주지 않아


이미영 : 2016년 12월 국회에서 ‘늘어나는 종교인의 성폭력 범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가 열린 적 있다. 그 자료집을 보면 전문직 중 가장 성범죄가 많은 직군이 종교인이라고 한다.


현우석 : 종교별로 보면 개신교가 대다수, 그 다음이 불교, 그 다음이 천주교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통계에 잡히려면 경찰에 신고가 되어야 하는데, 천주교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데 목사들이 신고되는 것이다.


김엘리 : 그럼 현우석 신부님은 이 차이가 신고율의 차이라고 생각하시나? 아니면, 천주교가 갖고 있는 도덕성이 높기 때문인가?


현우석 : 통계에 잡히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미영 : 맞다. 경찰에 물어봐서 통계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왜 많은 직군 중 종교인, 성직자들이 특히 많이 성폭력 범죄자로 고발되는가 하는 문제다.


현우석 : 저는 개인적으로 수원교구 사제의 성폭력 소식을 접하고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됐다. 아니, 남자 신부가 여자 신자를 좋아할 수도 있지. 그게 문제가 되고, 성직이 자기 일이 아니다 싶으면 사제복을 벗으면 된다. 여기에 폭력이 개입된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아까 사제의 '성추문', 쉽게 말해 '두 집 살림 차린' 신부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범위를 좁혀 성폭력을 저지르는 신부들에 대해 더 자세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신교의 경우, 현재 한국 개신교가 갖는 특성 때문에 그렇다. '개교회주의'에서 나오는 목사들에 대한 존경심.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정말 작은 교황이다. 목사들이 자기들의 권력을 악용해서 여성 신자들에게 성범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천주교 신자들이 신부를 대하는 것보다 개신교 성도들은 목사를 더 어려워 한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며 침대로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목사가 그런 범죄를 저질러도 갈 곳, 다시 받아 주는 교회가 있는 것이다. 몇십억 원을 횡령해도 감옥 갔다가 같은 교회에 돌아가기도 한다. 극단적 예지만 실화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저는 그동안 천주교 사제의 성폭력이 이슈화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전통적 남녀차별에서 오는 권력관계, 부정적 사회 분위기, 성폭력 피해 주장을 종교지도자에 대한 공격으로 보는 교회 분위기, 그래서 내 편을 만들기 힘들고, 수치심과 충격 등 이 십자가를 함께 질 수 있는 사람이 다른 문제에 비해 적다는 것이라고 본다. 본인이 용기를 내 구체적인 상황을 쓴 투서를 교구에 보내 고발해야만 조치가 된다.

이런 이유에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신부들이 '나는 안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또한 한 번만 성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니 성폭력 재발 조건을 없애는 방법 중 하나가 주교회의 2018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만들기로 결정한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가칭)다.

현우석 신부. ⓒ강한 기자


김재욱 : 또한, 성폭력 피해를 접수할 단일 창구를 각 교구청에 만들기로 했다.


현우석 : 그런 식으로 피해자들이 조금 더 쉽게 목소리를 낼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성폭력을 저지른 사제가 같은 폭력의 반복을 그만두게 하려면, 동료 사제들의 결단도 필요하다. 단지 직접 충고하는 것뿐 아니라, 교회 상부, 어른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서 이 신부가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을 교회의 어른이 알고 있어야 한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려야 되겠다. 그래야 분명히 본인이 더 조심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내 범죄를 알고 있고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재욱 : 언론의 보도가 매우 중요하다. '미투 운동'이 건강히 지속될지, 흐지부지될지, 선정적 가십거리로 전락할 것인가에 언론의 책임이 크다. 가톨릭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피해자는 증거가 없고, 기억이 불분명해도 자기 피해를 증언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은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검증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런 원칙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현우석 : 저는 이번 <KBS> 보도를 보며 드디어 천주교도 개신교처럼 언론이 더 이상 봐 주지 않는구나 하고 알아들었다. 개신교 목사들은 사건 터지면 즉시 기사가 딱 뜬다. 그러나 그동안 천주교 신부들은 사건이 터져도 조금 더 지켜 보거나 위에서 무마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됐다. 언론 탓을 할 수도 있지만, 자업자득이다.


김재욱 : 또한,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의 인권이 최대한 존중 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자기 변론권도 보장 받을 수 있다. 어쨌든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가야 한다. 충분히 가해자 입장을 들어 봐야 하고, 그의 인권도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가해자의 진술, 자기 변론이 2차 가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 더 우리 사회가 보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미투 운동이 건강성을 유지하며 지속 전개되기 위해서는 중산층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권을 박탈당한 농촌의 외국인 이주민 여성,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여성 등, 미투 운동의 용기가 부러운 사치로 여겨질 수 있는 여성의 일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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