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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하느님’은 20년째 우리를 찾고 계신다[농민주일 기획 - 쌀 개방 시대의 농민과 밥상 2]

1994년 여름은 뜨거웠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여름도 대단하였지만,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은 해였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도 죽고 대형참사가 끊이지 않던 때였다. 얼마 전 공전의 히트를 친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에서 소재로 쓰인지라 요즘 청소년들도 그 시절이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해 여름 가장 뜨거웠던 곳이 한군데 더 있다. 바로 농촌이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던 해였기 때문이다. 영어 입말이 입에 붙지는 않아도 농촌의 노인들마저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유아르(UR) 반대”를 외쳤다.

1945년에 형성된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체제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복지와 생명마저도 무역의 대상으로 삼는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로 진격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한국에서 가장 만만하게 거래의 대상으로 다뤄지는 분야가 농업 분야였다. 당시 대통령 김영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쌀은 지키겠다고 선언하였지만, 그 말은 허언이었음이 금세 밝혀졌다.

당시 농업 · 농촌 · 농민의 고통과 위기에 한국 가톨릭교회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를 만들어 응답하였다. 물론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농민운동과 생명농업을 선구적으로 이끌어왔던 가톨릭농민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1995년부터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선포했다. 농업은 곧 하느님의 창조사업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신앙인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도농공동체의 상생을 위해 교회가 마음을 모으도록 독려하였다.

도시 없는 농촌, 농촌 없는 도시는 있을 수 없다는 엄중한 선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노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땅과 물을 살리는 ‘생명농업’이라는 목표로 친환경농업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고, 이에 농촌의 형제자매들은 농약 한 방이면 끝날 일을 미련스럽게 손으로 해왔다. 그렇게 품만 많이 들고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묵묵하게 수행해 오고 있다.

   
▲ 정부청사앞에 뿌려진 '쌀'. 18일 오전 정부가 관세화를 통한 쌀 수입 전면개방을 발표한 가운데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 전국농민회총연맹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쌀을 뿌리며 정부의 기습적인 발표에 항의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4년 7월. 이런 노력에 대한 보상은커녕 얄궂게도 농민주일을 앞두고 ‘쌀 전면 개방’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기습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가톨릭농민회를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삭발을 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민들은 목숨 같은 쌀을 뿌리면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그 힘은 미약했다. 하긴 그동안 뿌려댄 것이 쌀뿐이었는가. 고추, 마늘도 태워 보고 소도 끌고 나오면서 버텨온 세월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농촌의 마지막 보루였던 쌀까지 뿌린 것이다.

1994년, 농촌 · 농민의 부름에 적극적으로 응답한 결과가 고작 이런 초라한 결과라니. 해마다 밥상의 우리 농산물 비율은 낮아져 23% 선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어차피 우리 밥상의 77%가 글로벌 식품들로 채워져 있으니 쌀 개방은 ‘시간문제’라고 여겨왔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농민주일이 다가오면 2차 헌금을 내거나 성당 마당에서 잠깐씩 벌어지는 ‘직거래 장터’에서 푸성귀를 집어 드는 것으로 의무를 확인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사실 농업이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일인지라 얼마나 엄중한지 알아채기가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세끼를 먹고, 그 세끼를 벌기 위해 노동을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런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확인하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식사 기도’를 통해 은혜로운 음식에 대한 감사를 드러내고 서로를 축복한다. 예수님도 돌아가시기 전날 행한 일은 다름 아닌 함께 밥 먹는 일이었지 않은가. 최후의 만찬이라고 특별한 밥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빵과 포도주로 조촐하게, 그러나 모든 생의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그래서 밥상에서 벌어지는 일상은 신앙인이 ‘지켜내야’ 하는 일상이다. 그런데 그 일상을 지탱하는 농업, 농촌, 농민이 무너지고 있다. 모든 것을 정치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자는 뜻을 혹시 던져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고 착각해 왔던 것은 아닐까?

   
▲ 20일 제19회 농민주일을 맞아 기념미사와 농민축제가 열린 인천교구 서운동성당에 생명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열렸다. ⓒ배선영 기자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체불명의 음식들을 먹어왔다. 생명이 아닌 이윤으로 점철된 음식을 먹으면서 도대체 누구에게 감사를 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반사적으로 성호를 긋고 밥을 먹어 왔다. 그런 성의 없는 응답이 지금을 만들었다. 간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교회 행사 때마다 글로벌 식품기업들이 양산해 낸 과자와 사탕을 놓고 감사 기도를 올려 왔다. 가정에서는 가격이 좀 더 싸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쾌적하다는 이유만으로 재벌들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서 잔뜩 장을 봐와서 밥상을 차렸다. 그렇게 지난 20년 동안 ‘농부이신 하느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한 응답에 우리는 ‘부재 중’으로 응답해 왔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느냐 한다면, 신앙의 중심축은 흔들리고 만다. 누구나 죽는데 왜 굳이 교회에 나가 신앙을 고백하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가톨릭교회 구성원들만이라도 농민들의 절규에 응답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지금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그 생명의 근간은 당연히 제 나라 제 땅에서 나는 밥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은정 (아녜스)
<대한민국 치킨展> 저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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