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사회일반
두물머리 농민 4인의 오늘…“10년만 똑바로 살아남자”[농민주일 기획 - 쌀 개방 시대의 농민과 밥상 1]
양평에서 다시 농사짓는 김병인 · 서규섭 · 임인환 · 최요왕 씨

   
▲ (왼쪽부터) 새로운 출발 1년을 맞은 두물머리 농부 최요왕, 임인환, 김병인 씨. 이들은 향후 10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현진 기자

김병인, 서규섭, 임인환, 최요왕.

네 두물머리 농부의 귀농 시즌2, 그리고 1년. 두물머리 싸움을 끝내고 지난해 여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시 농사를 시작한 네 농부는 지난 사계절 여정을 어떻게 지내왔을까.

김병인, 임인환, 최요왕, 이 세 농부는 예전 두물머리와 멀지 않은 부용리를 중심으로 새 터를 잡았다. 서로의 밭은 차로 5~10분 거리. 마음 같아서는 네 사람 모두를 한 자리에서 만나고 싶었지만, 시간이 곧 농사일인 이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장 멀리 여주 인근에 자리 잡은 서규섭 씨를 차마 부를 수 없어 함께 있는 세 사람을 만나러 부용리로 향했다.

마중 나온 최요왕 씨와 함께 그의 하우스에 도착했다.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최요왕 씨는 겨우내 딸기 농사를 지었고 올봄엔 유치원생 대상 딸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봄을 보냈다. 최근엔 쌈 채소를 심고 있었다.

새 하우스를 마련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겠다고 이야기를 건네자, 무엇보다 땅을 구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장기 저리로 담보 없이 돈을 빌리느라 모든 정보를 다 내줘야만 그나마 대출이 가능했다. 새 농지 마련을 위해 평생 갚지 못할 만큼의 빚을 지고 돈을 마련한 다음에는, 하우스 시설과 기계 설비의 과정이 이어졌다. 게다가 최요왕 씨의 땅은 묘목 농사를 짓던 땅이라 땅을 고르는 시간과 에너지, 비용이 만만찮았다.

   
▲ 상추 모종을 준비하는 최요왕 씨 ⓒ정현진 기자

김병인 씨의 하우스를 들러 인사를 하고 모두 임인환 씨의 하우스에 모였을 때, 임 씨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마르티노 씨와 이른바 ‘두물머리 친구들’이 모여 왁자하다.

두물머리에서 싸움을 끝내고 새로 마련한 땅 위에 전에는 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작물을 심었다. 김병인 씨는 토마토, 피망, 오이를 심었는데, 뜻밖에 진딧물의 공격을 받았다. 두물머리에서 쓰던 방법으로는 잡히지 않아서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는 동안 시기를 놓쳐버렸다. 토마토는 처음 최소한의 거름을 줘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시작했다가 대와 잎만 무성히 키워버렸다. 이웃 농민이 지나가다가 “병인 씨, 잎을 팔 건가”라고 물으며 이것저것 챙겨줄 정도였다.

“두물머리 땅은 최소 3~4년간 농사를 지으며 나에게 맞게 길들인 곳이었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땅을 만드는 일부터 새로 시작해야 돼요. 올해는 이런저런 작물을 시도하는 단계예요. 토마토는 계속 해 볼 생각이고, 전에 하던 양상추, 브로콜리를 다시 시작해 볼까 해요. 땅이 달라지니 변수가 많고, 기존 농법이 잘 먹히지 않네요.” (김병인 씨)

김병인 씨가 어려움을 호소하니, 곁에서 듣던 최요왕 씨가 “아무래도 두물머리와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점에 대해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유기물과 지력이 부족하니 작물의 내성도 약하다”고 거든다.

   
▲ 김병인 씨가 하우스에서 재배 중인 토마토를 보여주고 있다. 토마토는 초기에 거름을 많이 주면 안 된다. 처음 시도한 토마토는 정성을 너무 들인 나머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잘 자라줬다. ⓒ정현진 기자

최 씨는 딸기와 쌈 채소, 호박, 매실, 오이 등을 심었고, 임인환 씨는 고추, 오이, 대추토마토 등을 심었다. 작물은 달라졌지만, 다 같이 결심한 것은 소량 다품종, 유기농법을 지켜가는 것은 물론, ‘순환 농법’을 더 철저히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임 씨가 토종닭 40여 마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단지 육계로 키워 출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계분을 이용해 자급 퇴비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다른 농민들도 닭이나 돼지를 키워볼 생각으로 계획 중이다. 자급 퇴비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농부 모두 생태 화장실을 마련했다.

두물머리 농민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순환 농법’이었다. 기존에 유기농 퇴비를 쓰던 것보다 방법은 더 힘들지만 보다 유기농법과 그 목적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제대로 된 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안전한 농사보다는 순환,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안전한 농산물은 기본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축도 출하 목적으로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급, 거름, 순환의 중요한 고리로서 키우는 것이죠. 그것이 가축을 키우는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또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하죠. 두물머리 친구들과 이곳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소중해요. 지역을 옮기면서 유기적 순환 구조를 만들자고 결의했죠.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작은 땅이라도 소규모로 시도해 보자고 결심했어요.” (임인환 씨)

   
▲ 자급 퇴비를 위한 생태 화장실. 세 농민 모두 순환 농업의 일환으로 자급퇴비를 만들어 쓴다. ⓒ정현진 기자

임인환 씨는 농사 자체도 순환이 중요하지만, 두물머리 시절부터 만나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두물머리 친구들’과의 관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소중하다고 말했다. 임 씨는 논이나 밭을 마련해 귀농한 두물머리 지킴이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어떤 논은 둘이서, 어떤 밭은 셋이 함께 책임을 진다. 남는 밭은 텃밭을 원하는 이들에게 분양하기도 했다.

따로 또 같이, 지치지만 열심히 하고 있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지만, 개인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농업을 둘러싼 현실은 점점 고되다. 생협이 대형마트처럼 조금씩 농민을 개별 계약으로 묶으려는 것도 힘든 이유 중 하나다.

“나는 원래 귀농할 때, 동료들이랑 축구하고 놀면서 농사지으려고 했는데……. 지금 가장 많이 바뀐 건, 놀 시간 없이 엄청나게 일한다는 것이지. 예전처럼 귀농 생활 자체를 즐기면서 농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난 농사꾼이 농사만 지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전반적으로 심각해졌어요. 농사로 먹고 사는 것만도 힘든데, 빚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최요왕 씨)

“나 열심히 하는 것 맞나” 하고 자문하던 최요왕 씨가 “이젠 농사일을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답한다. 점점 악화되는 농업정책과 생협의 변화로 인해 상처가 크다면서, “누구를 믿고 농사를 지어야 할지…… 외롭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병인 씨는 4대강 싸움을 할 때만 해도 자기 일을 놓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기 일이 밀려도 같이 해야 할 일을 우선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내 일을 재껴두고 나서지는 못한다. 특히 인환 씨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이곳에 와서 생긴 바람이 있다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 끝에 서규섭 씨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애초 두물머리에서 짓던 기존 농사와 조금 다른 비전을 갖고 있다는 서 씨는 장기적으로 과수농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홀로 멀리 떨어진 탓에 “천하의 서규섭이 외로워하더라”며 세 사람은 안타까워한다.

   
▲ 두물머리 친구들이 임인환 씨가 키우는 토종닭 병아리들을 위한 물통을 고안했다. ⓒ정현진 기자

새로운 출발 후 1년. 향후 10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김병인 씨는 이들이 자리 잡은 양수리, 부용리, 양서면에서 꿈꾸던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희망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두물머리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갖게 된 꿈이다. 그는 “앞으로 농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1년의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인환 씨는 지난 10년은 부족한 것도 많고 뭘 잘 모르고 그저 열심히 했던 시간이었다면서, “농사꾼은 흩어지면 죽는다. 특히 유기농, 소농은 뭉쳐야 한다. 뭉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그것은 농민만의 몫은 아니다.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도 답을 찾아야 한다. 유기농, 일반농 구분하지 않고 식량 자급을 해낼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그 모든 것을 내가 할 수 없지만, 소수점 이하의 몫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그래서 견뎌낼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자. 10년만 버티자. 그 대신 똑바로 살아남자.”

최요왕 씨는 향후 10년의 바람은 ‘똑바로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바라면 뭐가 될까”라며 다시 되물었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이 생각나 답해줬지만, 반응은 시원스럽지 않게 돌아온다. 여전히 간절한 어떤 바람을 갖고 점점 어려운 길을 찾아가는 두물머리 농민들과 동료들.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그 간절함이 배반당하지 않을 세월이 곧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허황된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정현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