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4]

요즘 딸아이 걱정 중에 하나가 또래보다 좀 작고 어눌한 남동생이다. 내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해야 하는 남동생이 급식시간에 식판을 제대로 들 수 있을까 걱정이라면서 집에서라도 연습을 시켜야겠다고 설레발을 치곤 한다. 그러고는 금방 걱정하지 말란다. 식판이 너무 무거워서 들지 못하면 선생님들이 도와준다나 뭐라나. 밥을 안줘서 문제지 주는 밥은 어떻게 해서든 먹게 되어 있는 법.

딸아이는 학교급식을 이곳(충남 천안)으로 전학을 와서 처음 먹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입학했던 초등학교는 무상급식은커녕 급식공간과 인력부족을 핑계로 그나마 1,2학년 급식도 하지 않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상급식’이라도 실시되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실제로 입이 짧아 종종 애를 먹이던 딸아이도 학교급식은 잘도 받아먹어서 엄마 입장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매달 학교에서 문자가 한통씩 날아오곤 했는데, 가끔 불쾌했다.

“모월 모일이 급식비 인출일이니 통장잔액을 확인하십시오.”

학부모들이 바쁜 일정 때문에 통장잔액을 채워놓지 않을 수도 있어서겠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뜻은 본질적으로 이거였지 않았을까?

“돈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굶길 것이니.”

하지만 이런 불쾌함도 짧게 끝났다. 전학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충남도 차원에서 초등 전학년 무상급식이 실시되면서 더 이상 저런 문자는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매일은 아니어도 주기적으로 친환경 급식을 먹고 있고, 냉장고에 붙여 놓은 급식식단표를 보고 등교를 하곤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는 날은 뛰어가고 나물반찬 많은 날은 좀 뾰로통하긴 하지만.

급식의 역습

2010년 지방 선거에서 무상급식(친환경무상급식 포함)이 중요한 선거쟁점으로 떠오르더니 결국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식판전쟁에서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다. 현재 전체 급식대상 학생들(초중고 포함)중 41.8퍼센트가 무상급식을 먹고 있고, 초등학생의 경우 그 수치가 훨씬 높아진다. 이제 무상급식 차원을 넘어서 많은 지자체들이 ‘친환경 우수식재료’ 지원을 놓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쟁을 하고 있다. 우선 급한 대로 친환경 쌀부터 시작해서 우수한 지역산 농산물을 우선 공급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훌륭한 흐름들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든 위대한 역사가 그렇듯이 대한민국의 급식제도는 민주헌법 만큼이나 어렵게 쟁취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 사진출처:ssicssici36블로그.

한국의 학교급식은 1953년 캐나다 정부가 원조한 분유를 결식아동들에게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1953년부터 1972년까지 20년간 주로 전쟁아동이나 극빈아동에 대한 구호책으로 구호단체나 외국의 원조양곡을 받아 급식이 실시되었다. 이런 ‘생존’차원의 급식이 부정기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한국의 급식 역사는 시작되었다. 전면적인 학교급식의 출발은 1980년대 우유급식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처음으로 수도권 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되었고 이후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까지 확대 실시되었다. 이상한 것은 우유급식은 학교급식법이 아니라 처음부터 ‘낙농진흥법’과 ‘축산법’에 근거했었다는 것이다. 농업근대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낙농산업의 진흥을 위한 정부시책이기도 했다. 여전히 학교의 ‘우유당번’은 건재하니, 도시락세대인 나와 딸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추억일지도 모르겠다.

학교급식법의 시행, 직영급식 그리고 지역농업의 활로...
의무급식, 예산 아닌 ‘정치’의 문제

본격적인 학교 의무급식은 90년대 후반에 실시되었지만 학교급식법은 이미 1981년에 제정되어 있었다. 법은 있는데 실행이 되지 않은 건 ‘근로기준법’ 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법은 있지만 시행되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부자 아이들이나 학교에서 식판 들고 밥을 먹었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었다. 도시락 반찬으로 교실은 위계화 되었고 몇몇은 수도꼭지를 틀었던 시절이었다. 여성들에게는 도시락을 싸는 일 자체가 엄청난 가사노동이기도 했다. 이에 여성농민운동진영과 여성운동조직들을 중심으로 학교 급식 실시를 위해 줄기차게 싸워왔다. 그런 점에서 학교급식은 쟁취한 사회적 제도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그야말로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차려낸 밥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1998년부터는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실시하게 되었고 이후 중고등학교까지 확대되었다. 제도적으로 안착은 되었지만 툭하면 터졌던 식중독 사고와 엽기 수준에 가까운 부실급식은 언론의 단골 메뉴였다. 이에 또 한 번 시민사회는 나서서 학교 급식으로 밥장사를 하는 위탁급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직영급식 전환을 위해 싸웠고 결국 또 이겼다. 이제 대부분의 학교 급식은 직영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 사진출처:lilylove07블로그

급식운동은 이에 멈추지 않고 의무교육이라면 당연히 급식도 무상(의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를 쏘아 올렸다. 이제 학교 급식은 무상차원이 아니라 환경과 건강을 살릴 수 있는 친환경무상급식으로, 그리고 올바른 식문화교육까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의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급식은 지역 농업과 환경을 살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학교는 적게는 수천 명, 수만 명이 매일같이 한 끼 이상을 ‘예측가능’하게 소비를 하는 곳이다. 일례로 충북의 작은 지자체인 청원군의 경우 2009년부터 친환경 급식이 자리를 잡은 뒤, 농가에 안정적인 판로가 열리면서 청원군 내 친환경 유기농업 비율(특히 쌀)이 높아지고 있는 상생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사실 공공급식의 영역은 학교뿐만이 아니다. 의무적으로 가는 곳은 학교만이 아니라 ‘군대’도 있다. 학교와 군대, 그리고 지역의 대형병원과 기업체들 정도만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다면, 농업에도 좀 숨통이 트이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배울 권리만큼이나 먹을 권리도 인정해 줘야 하고, 20대 청춘을 고스란히 조국에 갖다 바치는 청년들에게 밥 한 끼는 제대로 먹일 수 있어야 한다.

무상급식 문제로 비비적대는 지자체는 예산문제를 탓하지 말길 바란다. 어차피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강원도에서도 해내는 일을 대구광역시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지. 이것은 ‘정치’의 문제다. 몇몇 위정자들은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유무역협정 위배로 제소당할 걱정도 접길 바란다. 유럽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지어 최근 미국까지도 학교 급식은 물론 군대 급식에도 로컬푸드를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야 운영의 묘책 정도는 나오기 마련이다. 초등 1학년생이 식판 무거워서 밥을 못 먹는 것이 아닌 것처럼.

먹여라! 그것이 교육이다. 잘 먹여라!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정은정 (아녜스, 농촌사회학 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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