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남양주시 수동면 지척에 살았다. 엄마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서였다. 하나 식구들 모두 호구지책은 서울에 매달려 있어 생계와 너무 멀지 않아야 해서 축령산자락에 안겼다.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맑은 물에 세수도 하고 엄마와 함께 산에 올라 나물도 캤다. 엄마가 원추리와 홑나물을 알려 주어 된장에 무쳐 먹고 끓여 먹어 본 기억이 귀한 추억으로 남았다. 엄마의 장례는 성당 교우들의 도움으로 집에서 치렀다. 그때도 병원에서 치르는 장례가 많았지만 농촌의 인정이 남아 있어 교우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도와주었다. 내게 수동은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위로로 남아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수동면에 깊은 골이 팼다. 남양주시청이 자랑하는 자연휴양림 축령산을 끼고 있는 수동면 외방리 일대에 무려 65만 평에 이르는 36홀짜리 거대 골프장이 들어서려 하기 때문이다. ‘한성CC’로 알려진 골프장 회사 ‘신한성관광개발’은 일단 나무부터 베어버렸다. 어떤 나무를 몇 그루나 벴는지 대답조차 못하면서 일단 벌목부터 저질렀다. 골프장 회사들이 벌목부터 강행하는 이유는 기왕지사 망가진 산림이니 골프장을 만들자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남양주시는 ‘지역개발’과 ‘건전한 국민체육 진흥’을 이유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림 지역과 생산관리 지역, 보존해서 잘 지키라는 의미의 보존관리 지역을 ‘관광진흥지역’, 즉 골프장으로 만들 수 있도록 용도를 변경해주었다.

마을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고령의 농민은 배가 투명한 도롱뇽을 본 적이 있느냐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골프장 회사와 공무원들에게는 하찮은 생명일 뿐이다. 반딧불이를 보고 황홀경에 빠지기도 했던 곳이 수동면인데 이제 반딧불이는 골프장 불빛에 모두 타버릴 것이다. 수달과 하늘다람쥐, 원앙, 황초롱이와 삵, 담비, 가재와 한국강도래 등 멸절 위기 동물은 수동면 숲을 장례식장으로 삼게 될 터다. 멸종 위기 동물이 죽어나가는 판국에 개와 고양이를 위한 ‘펫카페’를 만든다는 계획을 보고 눈과 귀가 썩는 느낌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어린이와 노인, 여성을 우선 구하라는 이유는 위기에 가장 취약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연약한 생명을 우선 선택하는 인류의 기본 원칙조차 골프장 앞에서는 무너진다.

물이 도는 동네, ‘물골안’이라고도 부르는 수동면 내방3리는 아직도 우물을 식수로 쓸 정도로 물이 맑다. 그러나 골프장이 들어서면 농약과 비료로 오염되어 더 이상 우물은 먹지 못할 것이다. 골프장 회사와 행정은 상수도를 넣어 주겠다 하겠지만 맑은 물을 마시고자 불편을 감내한 주민들에게 우물물은 생존권이자 권리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농약 오염과 물 부족이다. 골프장은 하루 평균 물 700톤을 쓰고 잔디와 조경수가 잘 자라도록 농약을 뿌려댄다. 여러 연구자료에서 골프장 종사자들의 농약중독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골프장과 농약은 뗄 수 없다. 친환경 골프장이라 우겨대도 비료는 주어야 한다. ‘유기농 골프장’이 없는 이유다. 그 비료는 그대로 녹아 지하수와 하천으로 흘러가 생물들의 숨골을 막는다. 한국은 비료 사용량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이는 농민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화강암 지대가 많아 비료가 자꾸 빠져나가는 이유도 한몫한다. 먹고사는 일이 엄중해 비료를 쓴다지만 공놀이에까지 비료를 써서 물과 땅에 부담을 주어야 할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2022년 해남에 독한 가뭄이 들었다. 농작물이 말라비틀어져 농민들 마음도 타들어갔건만 인근 ‘파인비치골프장’의 잔디는 푸르고, 골프장 인공호수에는 물이 그득했다. 농업용 저수지물을 24만 톤 1억 원어치 사서 골프장 호수에 채운 것이다. 식량을 생산하라고 세금을 들여 만든 농업용수가 골프장에 흘러들어갔다. 골프장이 쓰는 지하수가 얼마나 많은지 주변 농민들은 물부족에 시달리곤 한다. 오죽하면 지방세를 내지 않고 버티는 골프장의 지하수를 막아버린다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세금을 내기도 한다. 그만큼 골프장은 물먹는 거대 괴물이다.

성탄대축일 다음 날인 12월 26일, 수동면 골프장 건설을 전제로 하는 공청회가 기습적으로 열렸다. 의정부교구 1지구장 원동일 신부님은 “저는 추출주의에 반대합니다. 돈보다 생명, 성장보다 공존이 필요하다”며 교회의 생명수호 원칙에 어긋나는 골프장 건설 반대를 외쳤다. 경기환경운동연합 장동빈 활동가는 법까지 어겨가며 졸속으로 진행된 환경영향평가와 이를 눈감고 용인하는 남양주시의 위법적 행위를 준엄하게 지적했다. 나는 교통혼잡 지역으로 악명이 높은 화도읍 일대에 골프장 공사까지 강행되면 주민들의 안전은 어쩔 것인지, 부실한 경영 상태로 언론을 타는 회사가 땅만 헤집고 부도라도 나면 어쩔 것이냐 따졌다.

무엇보다 어제는 형님아우, 형제자매라 부르던 이웃들이 서로 핏대를 올리는 상황에 참담했다. 이런 점을 우려해 교구장께서 수동면 주민들에게 위로와 응원 편지를 보내시기도 했건만 그 기도가 닿지 않은 듯했다. 공청회장에 앉아 있는 고령의 주민들 중에서 골프채를 한 번이라도 쥐어 본 이들이 있을까. 알량한 보상금을 기대하고 자식들에게 등 떠밀려 나온 노인들도 있을 것이다. 이참에 용도변경 구역에 내 땅도 들이밀어 돈도 안 되는 농사 걷어치우고 가게라도 하나 내 볼까 하는 심산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몸이 아파 '산 좋고 물 좋은' 물골안을 찾아왔다 날벼락을 맞았다며 울부짖기도 했다. 주민들 간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도 남양주 공무원들은 수수방관했다. 골프장 회사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토건 세력들은 땅보다 사람들의 마음에 먼저 대못을 박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웃끼리 싸움을 붙이고 분열시키고 나면 불도저로 산을 밀어버리는 일은 식은죽 먹기다. 분열이 있는 곳에는 일치가 아니라 이윤이 생길 뿐이다.

멋들어진 골프웨어를 입고 인증 숏 찍기가 좋아 MZ세대들도 골프 인구가 많이 늘어 500만 명이라 한다. 골프 수요가 넘치는데 공급이 달려 이용료가 비싸 더 많이 지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심지어 국내 골프장이 비싸 자꾸 해외로 골프를 치러 나가지 않느냐며 외화를 절약해야 한다는 자못 애국주의적인 핑계도 댄다. 그러나 잔디도 잘 자라지 않는 이 나라에 골프장이 이미 500곳이 넘는다. 산을 밀어 아파트와 공장을 짓고 이제 골프장으로 지구의 허파에 구멍을 뚫고 있다. 어떤 '건전한 스포츠'가 자연과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발긴단 말인가. 이는 스포츠가 아니라 폭력이다. '골프 접대'는 있어도 '탁구 접대', '배드민턴 접대'라는 말이 없는 이유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골프장 회원권을 재산으로 의무신고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골프가 대중화되었다 하더라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에겐 골프는 여전히 사치이며 그들만의 리그다.

올해는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 여정이 시작된 지 9년이 되는 해다. 기후위기에 경각심을 갖고 공동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에 교회 성원들이 나서기를 프란치스코 교종은 호소하고 또 호소했으나 지구는 더 아파졌다. 이제 기후위기가 아닌 '기후재앙'이란 말이 더 와닿는다. 이런 절체절명 앞에서 골프장을 재자연화시키지는 못할 망정 새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골프장 건설은 땅과 산을 헤집어 탄소를 추출하는 지름길이며 자연과 지역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교회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골프장 신설에 반대 목소리를 명확히 내고, 최소한 신설 골프장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골프공이 날아가 꽂히는 곳은 골프장 홀컵이 아니라 이미 구멍 난 창조주 하느님의 심장이다.

* 이 글은 '뿔나팔 47호'(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정은정(아그네스)

농촌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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