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마지막]

‘밥상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는 너나없이 절망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그래도 이런 ‘대안’도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했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짧은 시간동안 한미FTA협정발효부터 제주도 강정마을에 큰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천안함 사고 2주기를 비롯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여전히 수습도 되지 않은 채 1년을 넘어서고 있다. 그래도 세상은 망하지 않고 몇 번의 꽃샘추위가 오고 가더니 봄이 오려나보다. 그래도 올 봄은 제철꾸러미에서 온 한줌의 달래와 냉이가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었으니 제철 먹거리가 덤으로 얹어 준 행복이다.

정신 차릴 겨를도 없는 세상은 밥상을 제대로 차릴 수 없는 세상에서 밥상을 차리고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OECD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요리를 해서 잘 차려 먹자는 말은 짜증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식량자급률이 25퍼센트(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5퍼센트 내외)에 지나지 않는 이곳에서 ‘로컬푸드’ 운운하는 것 또한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소개시켜 주는 맛 집 가서 먹고 손쉽게 살을 빼고 싶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세상 속에서도 분명 좀 더 나은 밥상을 차려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 가치로 평가 받지 못한 텃밭농사를 오히려 새로운 사회경제적 공간으로 만들고, 제철꾸러미 사업을 펼치는 ‘언니네 텃밭’. CSA(지역공동체지원농업)의 가장 기본 유형이면서 지역의 경제활성화와 로컬푸드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접근성을 보여준 ‘원주농민시장’. 그리고 지금의 먹거리 현실에서 의무급식이 차지하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보려고 했다. 허나 능력의 한계로 겉을 ‘핥아’ 보는 수준에서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글은 멈춰도 삶은 지속되는 법.

지난 3월 15일 충남공주에서 전국의 언니네텃밭 생산자 연수가 열렸다. 그날은 한미FTA 발효일이기도 해서 모두 서울로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갈 것인지, 어쩔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한다. 하지만 언니들은 모였다. 7,8학년 왕언니들부터 아이를 업고 온 새댁언니, 결혼이주 언니들까지 모여 왁자하게 먹고 놀았다. 그래도 우리는 농사짓고 이렇게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재미지게 살아보겠노라고 ‘서울 것들’을 향해 외쳤다.

봄이 온다지만 여전히 추운 강원도의 새벽. 하지만 4월이 오면 원주의 농민새벽시장이 열린다. 새벽마다 원주 인근의 농민들의 트럭이 원주천 둔치를 가득 메우고 전국에서 가장 먼저 새벽을 열어젖힐 것이다. 또 입시교육에 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끼 먹는 재미라도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오늘도 식판을 들고 줄을 서고 있을 것이다.

밥상을 받는 자의 '예의'를 위하여 

도시에 살면서 문 밖만 나서도 끼니를 때우는 것은 쉽지만, 차려먹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굶지 않고 살아가고 있고 적어도 남들 보다는 제대로 먹고 사는 편이니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 먹거리가 이 밥상까지 오는 그 오랜 여정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살곤 한다. 이 사회는 먹거리 문제를 두고는 늘 생산자에게 많은 요구를 한다. 좀 더 예쁘고 싸게 만들어 보라 한다. 거기에 보태 안전한 친환경 농사를 지어서 ‘1억 농부’가 되어 보라고 한다. 생산과 유통, 소비의 전 과정 중에서 가장 만만한 생산자만을 닦달해서 그나마 이 정도로 먹고 살 뿐인 것이다. 하지만 유통과 소비 체계가 바로 서지 않는다면 지금의 먹거리 체계는 언제든지 무너지게 되어 있고 이 고민에서 로컬푸드 논의는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밥상을 차리는 사람에게만 예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받는 사람의 예의도 있어야 한다.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사는 농민들이 여의도로 몰려오면 교통체증을 운운하는 ‘서울 것들’의 감성, 농민들이 자구노력없이 보조금에만 혈안이 되어 늘 손을 벌리고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제대로 된 농업교육이 없고, 내가 무얼 먹고 살아가는지 설명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이렇게 ‘예의 없는 것들’이 만들어진다.

당장은 농민들이 농사짓기를 포기한다고 해도 마트에는 먹을 것들이 넘쳐나니 별 걱정이 없을 거라 여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한 해 수입 포도주나 오렌지 값은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과채류 농사의 작황이 좋지 않아 값이 치솟자, 수입식품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자’들은 이 기회를 틈타 좀 더 비싸게 수입과일을 내놓고 있다. FTA를 통해서 좀 더 싼 가격에 외국산 먹거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이것은 외국 농민과의 직거래가 아닌 글로벌 거대 매집상과의 거래 일 뿐, 저들이 언제 밥상을 뒤엎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이름의 사건속에서 똑같이 죽어가는 생명들
제주 해군기지, 어민들의 바다농사와 별개 아니야..

3월 15일 한미FTA협정 발효, 제주도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폭파, 후쿠시마 원전사태 일주년, 천안함 2주기. 지난 신문을 들추는 것처럼 덧없는 사건 나열이기도 하지만 ‘생명’이라는 문제로 놓고 본다면 이 사건들은 촘촘하게 연결 되어 있다.

한미FTA는 단순히 농업이라는 산업의 한 분야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생명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먹거리 생산기반을 파괴하는 것이며 한번 파괴된 농촌은 재생할 수 없다. 아파트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농사를 짓겠다 한 들, 세끼 꼬박 챙겨 먹어야 하는 인간이 그 오랜 재생의 시간을 버틸 수나 있을까.

구럼비 바위 하나 깨어져나간다고 무에 대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바위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다. 무엇보다 제주도 어민들에게 바다일과 농사일은 별개가 아니다. 오죽하면 바다농사라고 하겠는가. 하루아침에 밭도 바다도 빼앗기는 이중 강탈이다.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군사적 긴장상태가 높아지면 바다농사도 땅 농사도 제대로 짓기 어렵게 된다. 그럼 지금처럼 신선한 제주도 당근과 양배추, 브로콜리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애먼 젊은이들이 죽어나간 천안함 침몰 사고도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날로 긴장도만 높아지는 한반도의 군사주의 문제에 가닿아야 한다. 그 일로 한동안 바다에 나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어민들의 모습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또한 전기와 석유로 짓는 현대의 농업문제를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본다면 지금 이렇게 먼데서 오는 먹거리들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석유와 전기가 멈추는 순간 우리는 먹지 못하게 될 테니까.

농사의 계절이다. 농어민들은 땅과 바다에 씨앗을 뿌리고 종종 서울 여의도로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올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런 키보드 농사정도가 될 것 같다. 기실 농사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할 따름이지만 적어도 농업문제와 먹거리 문제를 따로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려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끝으로 들쭉날쭉한 원고마감 시기를 너그럽게 보아 넘겨주신 ‘지금 여기’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면서 글을 마친다.

정은정 (아녜스, 농촌사회학 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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