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3]

지난 주에는 골든벨을 맞춰봤으니, 오늘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볼 차례. 이 놀이에 필요한 것은 두 손만 있으면 가능할 터. 박자는 4박자 쿵짝. 무릎을 번갈아 한번씩 치고 손뼉을 한번씩 치고 엄지를 순서대로 꼽는다. 그리고 간단하게 노래를 부른다.

“시장에 가면~ OO도 있고~”

끊기지 않고 계속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이 놀이를 기억하시는지. 아마 이 놀이를 요즘 어린이들이 하게 된다면 이렇게 바꿔줘야 할 것 같다.

“마트에 가면~OO도 있고~”

먹어봐야 맛을 알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재래시장(전통시장)에 가본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어린이에게 전통시장은 미지의 세계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억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의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시장에 가본 일이 드물다고 말한다. 오히려 예능프로 ‘1박 2일’을 보고 한번 가보고 싶다고 느꼈을 뿐, 직접 전통 시장에 가서 물건을 소비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안적인 먹거리 생산/소비 체계에 대한 많은 사례들 중에서 빠르게 안착한 것은 생활협동조합(생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협의 성장규모나 사회적 의의는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형태의 대안형태로 지난번에 소개한 ‘제철 꾸러미’ 사업도 확장되는 추세에 있다. 몇몇 지자체 자체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하기도 하고(전북 완주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을 비롯해 여러 농민조직들이 의욕적으로 추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먹거리 직거래모델의 중심 '농민 장터'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만나는 로컬푸드 운동

하지만 CSA모델(생산자-소비자간 직거래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장터(farmers' market)’다. 가장 기본 모델이면서 아직까지도 가장 취약한 형태이기도 하다. 농협 하나로마트가 최근에 ‘파머스마켓’이란 이름을 내걸었지만, 하나로마트가 과연 지역의 농수산물 유통에 얼마나 기여하고 농민장터 이름에 걸 맞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는 농협이 스스로 대답하기를 바란다.

먹거리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시어머니께 꾸러미나 생협이용을 권유하면 직접 고르고 구경가는 재미가 없어서 싫다고 하신다. 시장에 직접 가셔서 사람 구경, 물건 구경도 하면서 고르는 재미가 큰데, 에미(필자)처럼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택배로 받아서 먹는 이 소비행태가 참으로 ‘희한하다’ 하시곤 한다. 일례이긴 하지만 아마 장년층 소비자들은 공감 할 만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역 농민장터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로컬푸드 운동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사회적 거리가 가장 가깝다. 원천적으로 생산자가 가져온 농산물을 자신이 직접 장터에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산자가 곧 판매자이기 때문에 장터에서 농민과 소비자가 면대면으로 만날 수 있다. 원주 새벽시장의 사례는 지역의 소농과 소비자 사이의 면대면 직거래의 가장 기초적이고 성공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생협이나 제철꾸러미가 갖는 가장 큰 한계는 이런 대면관계 형성, 즉 사회적 거리를 좁혀 나가는 것이다. 물론 적극적인 소비자 회원들은 직접 참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이 뼈아프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시장을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이런 문화적 욕구도 무시할 수 없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제철꾸러미 사업만으로 모든 생계를 꾸려나갈 수는 없다. 또한 생협의 생산자 조합원이 되는 일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농민들은 관행대로 농협 출하나 일반 매집 등으로 생산물을 유통시킨다. 그러다보니 정당한 생산자의 몫은 물론이고 소비자들도 훨씬 비싼 가격에 신선도가 떨어지는 농산물을 먹게 되는 것이다.

물론 농어촌 지역에는 여전히 장터가 있다. 하지만 오일장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형태(CSA)라기보다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로컬푸드 차원에서 본다면 매우 미진하다. 오일장에도 국적불명의 농산물이 넘쳐나고 있고 농수산물 시장에서 도매를 해오면 그걸 다시 사먹는 이중, 삼중의 유통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 원주새벽시장

▲ 새벽 4시부터 9시까지 열리는 원주 새벽시장 ⓒ인빌뉴스

우리나라에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서 사고파는 농민장터가 있다. 그것도 근 20여년에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원주새벽시장’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농민장터 모델이기에 이번 글에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원주새벽시장은 94년부터 시작되었다. 원주천 둔치에서 새벽 짧은 시간동안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원주시 인근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이 모이기기 시작했다. 농민들의 자율적인 진입과 탈퇴가 쉬웠기 때문에 새벽시장은 금세 농민들에게 중요한 판매처로 자리를 잡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농어민들이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농산물을 납품하려면 대기업의 까다로운 조건을 감내해야 하고, 후려치는 가격도 군말 없이 따라야 하는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농산물시장에 출하를 할 경우에는 매집상에게 과한 수수료를 떼어 주거나(이 점에선 농협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밭떼기 형태로 넘기면서 자신의 생산물의 가격을 생산자가 정할 수 없는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경제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원주새벽시장의 경우 지역의 농민들은 가입비 5만원과 연회비 2만원만 납부하면 자유롭게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농산물유통체계의 한계(중간유통마진)를 벗어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농민들과 소비자들의 직거래를 통해 지역경제의 중앙 유출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가져와 자신의 얼굴을 걸고 판매하기 때문에 생산물의 안전과 신선도가 보장되면서 시장 활성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4,500여 명의 농민들이 13개 읍면 단위별로 소속되어 체계적 운영을 해나가고 있고, 생산실명제를 도입해 자체적인 품질관리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원주는 한국 협동조합 운동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1970년대부터 지학순 주교를 비롯해 무위당 장일순 선생 등을 중심으로 농촌 협동조합운동이 전개되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한 살림도 1980년대 원주에서 시작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들이 축적되어 먹거리와 도농교류에 관한한 가장 견실한 관점을 갖고 있는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농민시장을 대하는 원주시 당국의 태도도 남달랐다. 시당국의 허가없이 형성된 시장이라 하여 상인들(상인들이면서 곧 농민)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하천둔치(평상시에는 주차장 용도)를 제공, 오히려 활성화 시키는 데에 공헌했다. 또한 시 재정에서 3,000여만원을 집행해 원할한 운영을 돕고 있다. 이렇게 민관협력(거버넌스)의 모델을 보여준 원주새벽시장은 2009년 ‘농업인 새벽시장 개설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운영에 있어서 법적 근거를 얻게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사회적 거리 좁혀
제대로 된 상품을 제대로 사고 판다

원주 새벽시장은 하루 평균 170여 농가가 참여하고 연간 22만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연간 매출액은 75억원에서 80억원까지 추정하고 있다. 주요 소비자들은 원주시 시민들이기도 하지만 인근의 횡성, 여주, 제천, 충주에서까지 원정을 오기도 한다. 특히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는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좋은 소비처가 되고 있다. 최근 원주새벽시장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중고령층의 소비자들이 3년 이상 새벽시장을 이용했고, 절반 이상의 소비자들이 단골 농민이 있다고 답하고 있다. 그렇게 서로 얼굴을 알게 되고 단골농가에 직접 방문한 경험도 25퍼센트에 이른다. 대부분은 농가에 농산물을 직접 구하는 것이 목적이긴 하지만, 직접 일손 돕기에 나선 경험도 20퍼센트에 이른다하니 진정한 로컬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설문의 보면 소비자의 60퍼센트 이상이 생산자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말이 어려워 생산자-소비자간 신뢰관계이지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면 ‘단골손님’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에 단골가게라는 말은 있어도 단골마트라는 말이 없는 것처럼 단골이라는 것은 서로 얼굴을 자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인 거리는 물론, 사회적 거리가 가까워야만 가능한 일이다. 로컬푸드가 단순히 지역내 생산물을 소비하는 차원이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좁혀나가는 데에 더 큰 의의가 있듯이 원주새벽시장은 그런 점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대형마트와 SSM이 지역경제를 허물고 농어업 생산자들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정부차원에서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짜내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온누리상품권 발행과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작 활성화 시범사업의 줄임말)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수원의 못골시장이나 청주 육거리시장, 서울 중랑구의 우림시장과 같이 활성화된 시장들이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전국의 전통시장들이 ‘로컬푸드’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 한계가 명확하다.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쇼핑카트를 가져다 놓고(사실 소용이 거의 없다), 고객의 편의시설을 만들고 문화프로그램 운영으로 통해 소비자들이 찾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분명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전국의 전통시장들이 서로 엇비슷하게 운영되면서 큰 차이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소비자들의 기호도를 조사하면, 신선하고 안전한 지역산 농수산물이 유통되길 원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농촌의 오일장에서도 수입산 농수산물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원주농민시장에는 수입 농산물을 볼 수는 없다. 물론 오뎅과 커피도 팔고 수입산 동태를 팔기도 하지만, 적어도 농산물만큼은 지역에서 당일 생산된 것들이고 원주시민들은 행복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것이다.

하여 향후 농민장터를 고민하는 지자체가 있다면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쇼핑카트를 가져다 놓는 것도 좋지만, 지역의 농어민들과 소비자들을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생산-소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유통시장을 방어할 의지를 갖추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정책적으로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말하면서도 대형기업의 대형마트나 SSM영업을 허가해 주는 이중적인 행태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것을 만드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그저 농협의 하나로마트와 파머스마켓이 제자리만 찾아도 될 일이지 않겠는가.

정은정 (아녜스, 농촌사회학 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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