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장 강제 철거 비판 목소리 높아…“주교들의 현장 방문 필요” 의견도
“밀양 주민과의 연대, 약한 사람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 보여줬다”

지난 11일 경남 밀양시 송전탑 건설 현장은 행정대집행으로 마지막 남은 4곳의 농성장이 모두 철거됐다. 예수수도회, 성가소비녀회, 한국외방선교수녀회 등에서 온 수도자 60여 명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주민들과 함께 행정대집행에 맞서다 머릿수건이 벗겨지고 팔이 부러지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와 관련해 16일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와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하고, 폭력진압의 최고 책임자인 경찰청장과 현장을 진두지휘한 밀양경찰서장의 즉각적인 파면을 촉구했다.

이날 전대미문의 폭력적인 강제 철거와 관련해 교회 안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영미 수녀(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는 “당일 경찰은 여성의 인권을 짓밟았고 수도자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았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 수녀는 게다가 행정대집행은 원칙상 공무원이 하는 것이고, 경찰은 그 과정에서 시민과 주민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데, “보호는커녕 오히려 강제 철거를 주도했다”며 “명백한 직권남용이며 경찰이 한전의 용역으로 전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1500년 전 아우구스티노는 ‘정의를 상실한 공권력은 사법적 권한을 갖지 못한다’고 했다”면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합법적인 과정을 생략한 마구잡이 공권력이 지켜보는 이들의 깊은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1일 농성장에 대한 철거 행정대집행이 진행된 경남 밀양시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수도자들이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장영식

또한, 이날 주민들과 함께한 수도자들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진정 성직자다운 모습’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감리교 박성률 목사는 언론과 SNS를 통해 접한 수녀들의 헌신적인 모습에서 “사랑을 봤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폭력적이고 아픈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이 쇠사슬을 묶고 계신 움막 밖에 수녀님들이 누워계시는 모습에서 따뜻함과 아름다움마저 느꼈다”며 “할머니들에게 더없는 위로가 되었을 듯하다”고 말했다.

성염 전 대사는 “그분들(수도자들)은 ‘가장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라, 그들과 함께하라’는 교회 최고 장상의 가르침을 따라,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의 한 사제도 “교황님이 <복음의 기쁨> 등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가장 약한 사람과 연대하는 모습이 교회의 근본적인 모습”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날 밀양에서 주민과 함께한 사제와 수도자들이 “복음을 따르는 이들로 할 수 있는 당연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사태와 관련해 천주교의 더욱 분명한 공식적 입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성염 전 대사는 “사제와 수도자들은 어떤 이념적 사고를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대로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한 것이다. 따라서 그분들이 무자비한 공권력에 끌려나오는 일이 발생했을 때, 교회의 정신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영미 수녀 또한 “가장 낮은 그리스도께 찾아간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을 교회의 어르신들이 외면한 것은 아닌가”라며 “교회의 일원으로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또 다른 사제는 “대부분의 주교님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러다보니 발언에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앙의 출발점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라면서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신 것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이 현장에 가서 직접 보신다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텐데, 현장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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