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반대 4개 농성장 철거 행정대집행 앞두고 호소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온 주민들의 마지막 4개 농성장에 대한 철거 행정대집행이 11일 오전으로 알려진 가운데,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이하 정평위)가 한국전력과 정부에 “무리한 행정대집행을 멈추고 대화에 임하라”고 호소했다.

10일 오후 이용훈 주교의 이름으로 발표한 호소문에서 정평위는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예레 31,15)는 성서 말씀을 인용해 “시시각각 전해오는 주민들의 호소와 통곡에 밤잠을 설친다. 저 옛날 라마의 통곡을 들으며 피 끓는 애달픔으로 밤을 지새우던 예언자의 마음이 따로 없다”고 깊은 안타까움을 전했다.

정평위는 “예견된 불행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만큼 큰 괴로움은 없다”며 현재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의 안위 또한 걱정했다. 정평위는 이어 밀양 주민들의 기나긴 투쟁으로 도시인이 이용하는 편리한 전기가 누구의 노동과 눈물로부터 오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며, “촌로(村老)들의 투쟁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일을 위한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경상남도 밀양에는 2,500여 명의 경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수도회, 성가소비녀회, 한국외방선교수녀회 등에서 21명의 수도자가 8일부터 주민들과 움막을 지키고 있으며, 129번 현장에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 127번 현장에는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가 함께하고 있다. 소식을 접한 수도자,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밀양을 향하고 있지만,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은 경찰에 차단된 상태다.

정평위는 정부와 한전 측에 “공권력에 의한 일상적인 폭력과 인권침해에 시달려온 마을 주민들의 마지막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며 “불상사가 예견되는 현재의 집행을 당장 멈추어 달라”고 호소했다. 정평위는 범종교인 중재 하의 대화 테이블을 제안하면서,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고 가난한 이들의 호소를 힘으로 눌러 얻는 평화는 거짓 평화”라며 정부와 한전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해 5월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와 사제, 수도자들이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정현진 기자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을 위한 행정대집행에 즈음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호소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예레미아 31:15)

1.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촌로들의 용감한 투쟁이 줄기차게 이어져왔습니다. 햇수로 10년, 구부정한 허리로 지팡이에 몸을 기대 산자락을 오르내리고 움막에서 기거한 지 벌써 4년입니다. 촌로들의 싸움치고는 참으로 모질고 초인적인 인내입니다. 몸과 마음으로 애틋하게 보듬던 전답들, 마을 정경은 그들에게 그만큼 소중했던 것입니다. 기실 그것은 단지 밭이나 풍경이 아니라 평생을 의지해 살아온 그들의 삶 전체였던 것입니다.

2. 마지막 남은 4개의 농성장 철거가 임박했습니다. 시시각각 전해오는 주민들의 호소와 통곡에 밤잠을 설칩니다. 저 옛날 라마의 통곡을 들으며 피 끓는 애달픔으로 밤을 지새우던 예언자의 마음이 따로 없습니다. 예견된 불행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만큼 큰 괴로움은 없습니다. 현재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의 안위 역시 몹시 걱정됩니다. 그들의 자리가 마땅히 그곳이기에 더 큰 불행이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3. 밀양 주민들의 투쟁은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또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것들을 들추어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던 도시민의 편리한 전기가 어떻게 생산되고 또 어디를 거쳐 도시를 밝히는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동과 눈물이 젖어있는지 말입니다. 그 '중간'에 깃든 것들을 귀히 여기고 마음 쓰는 시간은 우리에게 이 시대가 탐욕으로 잃어버린 참 인간을 복원하게 하는 시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때문에 촌로들의 투쟁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일을 위한 투쟁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4. 2,500명의 경찰병력이 마을을 에워쌌습니다. 종일 밭을 매느라 구부정해진 노인들의 움막을 철거하기 위한 것 치고는 실로 위협적입니다. 정부와 한전은 지난 4년간 골절과 뇌출혈, 이웃의 잇따른 희생 등, 공권력에 의한 일상적인 폭력과 인권침해에 시달려온 마을 주민들의 마지막 소리에 지금이라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고립되어 극도로 흥분한 주민들의 현재 상태에서의 강제 집행은 예견된 불행과 같습니다. 예견된 불행을 자초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두 달이 가까워지는 오늘, 예견된 불행과 죽음을 막지 못한다면 희생자들 앞에 또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더욱이 오늘은 6.10 민주화 항쟁 기념일입니다. 민의를 거스른 권력은 통치할 수 있으나 사랑받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권력은 언제든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5.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정부와 한전에 호소합니다. 불상사가 예견되는 현재의 집행을 당장 멈추어주십시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고 가난한 이들의 호소를 힘으로 눌러 얻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대화와 화해에는 때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대화로 사태를 해결해주시길 촉구합니다. 본 위원회는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종단을 초월한 범종교인 중재 하의 대화 테이블을 적극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예견된 불행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4년 6월 1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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