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이동화]

지난 6월 11일 밀양에서는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2000여명의 경찰과 500여명의 공무원과 한전직원은 200여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민들을 내쫓고 움막을 철거했다.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 부상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전쟁’과도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방선거에서 패하지 않았다는 오만함이 묻어나는 처사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원전 반대 여론을 재빨리 무마하고 제압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던 집권당의 읍소는 언제였던가 싶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대 여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핵발전소와 송전탑은 전기라는 공공재를 위해 필요한 것이고, 그러기에 공익을 위한 국가정책을 반대하는 밀양의 주민들은 지역이기주의에 바탕 해 있다는 의견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는 인터넷 등의 사회소통망에는 ‘원전 반대하면 전기도 사용하지 말라’는 식의 극단적인 논리의 비약도 드물지 않다.

▲ 지난 11일 한전의 공사 강행에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 ⓒ장영식

사실 우리나라의 원전정책, 더 나가서 에너지 정책이 공공성을 위한 것인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잘 알려진 대로 작년 감사원의 지적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OECD 회원국의 평균치에 비해 절반 밖에 되지 않지만 산업용 전기는 1.75배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산업용 전기는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가격으로 기업에 공급된다는 것이다.

감사원의 지적은 누가 전기를 줄여야하고 누가 전기세를 더 내야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의 가격을 올려 공장에서 전기 대신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던지 또는 대형 공장의 경우 필요한 발전시설을 갖추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끊임없이 원전정책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대기업에 더 싼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논리와 정책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밀양 송전탑 문제의 핵심은 수도권의 기업에 더 많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수도권에서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역에 핵발전소를 건설하여 그 위험부담을 지역에 떠넘기고, 생산된 전기를 옮기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송전탑이 지나가는 지역주민의 건강과 재산을 희생시키며, 그 경제적 이익은 소수의 기술 관료들과 재벌 기업이 챙기는 것이다.

핵발전소는 일부 재벌 기업을 위한 것일 뿐...
밀양 송전탑건설 반대 싸움은 공동선과 정의를 위한 싸움

기업에게는 싼 가격으로 전기가 공급될지는 몰라도 그 외의 송전과 안전을 위해 드는 비용을 생각하자면 마냥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다. 철도와 병원 등 공공영역을 민간영리법인, 즉 주식회사로 전환하기를 계속 추진해온 이번 정부가 핵발전소 건설을 공익을 위해 하기는 만무하지 않나.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 싼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결국은 전체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니 핵발전소의 안전을 강화하고 핵마피아의 개입을 차단하면 결국 공공성을 위한 것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의견은 개별적 이익의 총합이 국민 전체의 혜택이 될 것이라는 경제적인 원리에서 나온다. 이러한 경제 논리는 완전히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의 존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가격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다.

완전자유경쟁과 가격에 의한 조정이라는 경제 논리는 이념형(ideal type)으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인류 역사상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몇 년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사상 최대 규모의 매출이익과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하지만, 그것이 국민 전체에게 혜택이 되지는 못하고 오히려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 실정이다. 경험적으로 개별이익의 총합이 사회적 수익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시장의 실패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가톨릭교회 역시 1891년 레오13세의 <새로운 사태>에서부터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해 비판하고 거부하고 있다. 시장의 힘으로 생긴 이익이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신념을 명백히 거부하는 것이다. 오히려 가톨릭 사회교리는 시장의 힘의 최종결과를 철저하게 검토해야 하며 공동선, 사회정의, 인권의 이름으로 이를 수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힘이 공동선의 이름으로 규제될 때, 자원과 수요를 조화시키는 효과적인 메카니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밀양의 송전탑 문제로 드러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국민의 안전과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로 얻어지는 이익의 효과 역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 재벌 기업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는 싸움은 좁게는 가난한 이들의 생존과 안전을 위한 것이고, 더 넓게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공동선과 정의를 위한 싸움이다.

행정대집행 이후에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즉각적으로 더 큰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공동선과 정의를 위한 싸움, '밀양-시즌2'에 지지를 보내고 연대를 표한다.


이동화 신부
(타라쿠스)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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