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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너머의 기다림[신한열의 떼제 일기 - 5]

겨울, 떼제는 고요하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끝없이 밀려오던 젊음의 물결도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건너편 언덕에는 지난주에 내린 눈이 여전히 쌓여있고 바람은 매섭게 차다. 그래도 어제오늘 햇살이 넉넉하고 따스하다. 겨울에는 흐리고 습한 날씨가 대부분이라 이런 날이면 잠시라도 밖으로 나와 걸으려 한다. “햇살 찬란한 날에 안에만 있는 것은 죄는 아니라도 거의 비행(非行)”이라고 형제들끼리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마을 아래로 걸어간다. 이곳의 겨울 들판은 늘 푸르다. 소와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수백 년 된 돌집들이 저녁 햇살을 받아 더욱 따스하게 느껴진다. 집집마다 벽난로를 때기 위해 처마 밑에 장작더미를 쌓아놓았다. 이집 저집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고즈넉한 부르고뉴 시골의 모습이다.

   
ⓒ신한열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가서 바삭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한참 걷는다. 여름 동안 그렇게 지저귀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너무 조용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들어오는 햇빛. 그러다 어느새 해가 지고 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의 집 하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모습에 걸음을 멈춘다. 두 노인이 벽난로를 피워놓고 안락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마치 동화 <백설 공주>에서처럼 시간이 멈춘 듯하다. 주변에는 어떤 소음도 없다. 겨울날 오후의 산책은 이렇게 “시간 너머의 시간”을 느끼게 해준다.

다시 언덕길을 올라온다. 내 방은 9백여 년 전에 지어진 마을 성당과 붙은 집 1층에 있다. 성당 입구는 마을 묘지다. 화강암이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주민들의 가족 묘지가 대부분이다. 마을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옆을 지나야 한다. 영원의 세계로 먼저 건너가신 분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돌담 아래 자리한 일련의 흙무덤은 로제 수사를 비롯해서 먼저 가신 우리 형제들의 묘지다. 무덤마다 세워진 나무 십자가에는 이름이 셋씩 새겨져 있다. 묘지가 좁은 관계로 자리를 깊이 파서 세 구씩 모신 것이다. 수사들은 죽어서도 공동생활이다.

내 방에 돌아와 성당 뒤쪽 정원으로 난 창의 덧문을 닫는다. 바깥에는 어둠이 깔리고 그럴수록 더 고요하게 느껴진다. 저녁 식사를 마치니 사방이 이미 깜깜해졌다. 저녁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널리 울려퍼지고 하늘에는 별이 보이기 시작한다.

흰 전례복을 입고 교회에 들어가 무릎을 꿇는다. 은은한 조명 아래 우리 형제들이 제대를 바라보며 네 줄로 길게 앉고 양편으로 자원봉사자들과 방문자들이 자리했다. 제대 뒤에 밝혀진 수많은 촛불이 유리잔 속에서 깜빡거린다. 돛 모양, 불꽃 모양으로 바닥에서 천장까지 길게 펼쳐진 오렌지색 무명천은 조명이 더해서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소서, 주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애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소서. 거기서는 죽음보다 강한 당신의 사랑이 한 몸 안에서 우리를 다시 나게 하나이다. 노래하라, 노래하라, 우리의 호소 들으시고 임마누엘, 그분이 오시는도다.”

대림절에 부르는 시편과 오래된 성가들은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를 대망하며 부르던 노래를 2천 년 동안 교회가 불러왔다. 세상에는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있기에 우리의 노래는 더 간절해진다.

“주님,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소서. 당신의 구원을 우리에게 내리소서.” (시편 85)

성경 말씀을 읽은 다음 긴 침묵의 시간이 이어진다. 지난 석 달 동안 떼제를 떠나 남북한과 중국을 오가면서 만났던 얼굴들과 들었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한 젊은이의 처진 어깨, 진실을 말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오해와 박해, 만연한 편 가르기, 대화와 소통의 단절, 지쳐 있는 교회와 사회운동 활동가들. 다른 반쪽 조국의 추수 마친 들판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던 아이들, 콩 재료가 떨어져 아이들에게 줄 두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공장, 찬바람을 막기에는 허술한 고아원의 창문들. 남북 사이에 사라지지 않은 대결과 긴장.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영혼이 허기진 사람과 사회, 점점 더 벌어지는 가진 이들과 못 가진 이들 사이의 간극…….

   
▲ 떼제 마을의 저녁 전경 ⓒ신한열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마음이 좀 흔들릴 무렵, 청원의 기도(보편 지향 기도)가 이어지고 대림절 노래를 부른다. 오래된 언어, 옛 기도 안에서 다시 힘을 얻는다.

“억울한 백성을 임금은 보살피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여 주며 압박하는 자들을 쳐부수리이다. ……
햇풀 위의 비인 듯 그는 내리고, 땅 적시는 소나기인 듯 그는 내리리니
정의가 꽃피는 그의 성대에 저 달이 다하도록 평화 넘치리이다.” (시편 72)

대림절은 희망의 시기이다.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다시 시작하시는 하느님의 주권을 생각한다.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는 사실 이미 오신 분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새로운 세상은 믿음과 희망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땅에서는 진실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굽어보리라.
주님께서 복을 내리시리니 우리 땅이 열매를 맺어주리라.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나가고,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리라.” (시편 85)

대림절은 희망 안에서 기쁨을 미리 맛보는 시기이다.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인간과 사회와 교회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래도 우리는 수천 년 된 기다림의 노래를 부르면서 “시간 너머의 시간”을 응시한다. 그런 눈길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또 비록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세상의 싹을 알아본다. 그래서 희망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다.

저녁 기도를 마치고 공동체로 내려오는데 남쪽 하늘에 별보다 크고 밝은 물체가 갑자기 나타나 빠르게 일 자(一字) 길게 쓰고 사라졌다. 우리는 혜성을 처음 보았다고 탄성을 울렸다.

오늘밤 유난히 맑은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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