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열의 떼제일기 - 9]

 ⓒ신한열

나날이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고 있다. 맑은 날이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방 안에 가득 담긴다. 박새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고 앞뜨락에 심어놓은 야생 수선화가 화사하게 미소짓기 시작했다. 봄이 다가오는 신호다.

봄바람은 교회에도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취임 후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교회에 불어넣은 새 기운은 대단하다. 너무나 소탈하고 인간적이면서 그리스도교적인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대중 매체와 SNS로 세계인의 마음에 와 닿고 있다. 잠든 양심과 무딘 마음을 일깨우는 그의 말에는 다른 교파, 다른 종교의 신자들, 더 나아가 교회나 종교로부터 아주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 귀를 기울인다.

교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은 “무신론자들조차 교종 프란치스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변화를 위한 교종의 노력을 진보적인 시각에서 소개하여 엄청난 반향을 얻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 교종은 군대는 갖지 못하지만 강론대를 가지고 있다. 그는 현 상황(status quo)을 거슬러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데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 신자가 아니라도 그것은 믿을 수 있다.”

권위적인 붉은 색 망토 걸치기를 거부하고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발코니에서 ‘로마의 주교’로서 소탈하게 첫인사를 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군중들에게 강복을 주기에 앞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며 먼저 허리를 굽혔다. 고위 성직자들에게 “교회의 직무나 직위는 섬기기 위한 것이지 명예도 훈장도 출세도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훨씬 뒤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강론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적이다.

“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원합니다... 안온한 성전 안에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어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합니다.”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로 가라고 격려하는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거듭 강조되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 복음의 기쁨...

교회분열을 치유하는 교종 프란치스코

▲ 성 다미아노 성당 ⓒ김용길
적지 않은 개신교 신자들과 지도자들이 기대하는 마음으로 ‘로마 주교’를 바라보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다. 그래서 지난 10여 년 동안 주춤했던 교회 일치의 희망이 다시 피어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사무총장 올라프 트베이트 목사는 “교종이 가톨릭 신자들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이루어줄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2017년 종교개혁 5백주년을 앞두고 루터와 칼뱅의 많은 후예들은 가톨릭교회의 동참을 기대하고 있다.

50년 전부터 가톨릭과 대화를 시작한 ‘세계 루터교 연합’의 마틴 융게 사무총장은 다가오는 몇 해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성찰하면서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계기로 만들려 한다. 이 5백주년을 교회일치운동의 맥락에서 기념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가톨릭교회의 동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칼뱅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작년에 개혁교회가 루터교와 통합했다. 그렇게 탄생한 프랑스 연합 개신교회의 총회장 쉴룸베르제 목사는 지난 주 이렇게 말했다.

“2017년에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려 하는가? 마르틴 루터라는 한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교회의 분열을 기념하는 것은 더욱 의미가 없다. 우리는 개신교의 탄생을 경축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름 아니라 우리 삶에 의미를 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말씀’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고 경축하려고 한다. … 불행하게도 프랑스에서 개신교는 너무 오랫동안 비(非)가톨릭 혹은 반(反)가톨릭을 의미했다.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연로한 형제들은 요즈음 교회의 모습이 요한 23세 시절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요한 교종은 아죠르나멘토(Aggiornamento)를 제창하고 교회의 변화와 개방을 이룬 분이다. 현시대에 맞게 창문을 활짝 열어 교회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게 했다. 그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적대시했던 이들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갔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인자한 교종”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최를 결정하면서 정교회와 개신교 등 갈라진 형제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과거에)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를 따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화해합시다!’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래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역사상 아마 처음으로 그 누구도 신학적 교리적 이유로 단죄하지 않은 공의회가 되었다. 그 반대로 교회일치의 초석을 놓았다.

요한 23세가 선종했을 때, 장로교가 다수인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 신학부도 추모 예배를 열었다. 거기에 참석했던 형님 한 분이 말했다. “스코틀랜드 개신교 신학부에서 교종의 추도식이 열린 것은 종교 개혁 이후 처음이었지. 그런데 우린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요한 23세가 그런 분이었고 당시의 분위기가 그랬어.”
오는 4월 27일, 요한 23세의 시성식이 거행될 때 로마에는 봄 향기가 가득할 것이다.

 ⓒ신한열

교회의 진정한 봄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리고 정직하게

8백 년 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내 교회를 다시 세워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부르심은 무너진 성 다미아노 성당으로 상징되는 당대의 교회를 다시 일으키라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위기에 처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교회를 다시 세우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종의 개혁은 조용하게 시작되어 전방위적이고 깊이있게 전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신선한 스타일과 아름답고 상징적인 행동이 많은 감동을 주었다면, 앞으로는 인사와 재정, 제도와 조직에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새로운 탄생에는 으레 아픔이 수반되는 법이다.

교회가 세상에 빛이 되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미 보여주었다. 하지만 교회의 진정한 봄철은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그가 교종이라 해도.

사람들을 움직이고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다. 교회법이나 문서가 아니라 작은이들, 외로운 이들, 온갖 이유로 차별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내미는 따스한 손길과 그들에게 건네는 부드러운 목소리다. 그리고 불의 앞에서 두려움 없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정직과 용기다. 그것은 지킬 것과 잃어버릴 것이 적어야 가능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여, 예수님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하신 말씀이 다시 큰 울림으로 들려온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가 10, 37). 그것은 초대이면서 도전이다. 나는 누구의 상처를 싸매주고, 누구의 손을 잡아주며 누구의 발을 씻어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 삶을 더 단순하게 하여 더 많이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시대의 아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를 통해 다가가신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포근했다. 그 참에 데이지와 민들레가 1월과 2월에도 끊임없이 고개를 내밀고 꽃을 피워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민들레가 핀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님을. 갖가지 봄꽃이 이 언덕과 저 들판을 가득 수놓기 위해서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찬란한 봄으로 가는 길목이 얼어붙을 수도 있고, 부활절에 눈이 내릴 수도 있다. 유럽의 기후가 그렇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봄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이다.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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