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열의 떼제 일기 - 10]

3월초 르몽드 신문의 주말 잡지에는 한국 입양아의 어머니들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가난 때문에, 혹은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자기가 낳은 자식을 해외로 입양 보낸 여성들이 지닌 죄책감과 상처는 깊고 컸다. 아이를 잊지 못하고 평생 괴로워하는 사람의 사연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록에 의하면 1953년에서 2004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한국 어린이는 15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가슴에 어떤 아픔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을까?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들의 상처는 누가 보듬어 줄 것인가?

누구에게나 과거의 상처가 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과거는 어제일 수도 있고 오래 전의 어린 시절일 수도 있다. 어떤 기억은 참으로 끈질겨, 잊으려 애써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무시당하고 상처 입은 기억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우리 민족은 한(恨)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무의식의 영역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말 못할 상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리는 경우도 보았다.

우리가 겪는 문제 밑바닥에는
어루만져지지 못한 과거의 상처가

그런데 개인의 체험은 그가 속한 사회의 상황과 떼어놓을 수 없고, 흔히는 집단적 기억과 맞물리게 된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가진 문제와 갈등의 밑바닥에는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상처 가운데는 공통적이고 집단적인 것도 적지 않다. 가까운 역사만 보더라도 일제의 폭압과 수탈, 해방 공간의 좌우익 충돌, 그리고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은 또 얼마인가? 그들과 가족들의 부르짖음과 피눈물이 완전히 사라진 적이 있었던가?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에서 삶의 터전이 뿌리째 뽑힌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다시 생기는 대형사고들. 생활 패턴과 관습의 변화로 이웃이 사라지고 가정 공동체가 파괴되면서 개인들이 고스란히 짊어진 삶의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이 생존하기 위해서 무한경쟁의 사회로 내몰렸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집단적 두려움과 증오, 공격성, 극단적 구호들이 이제는 교회 안까지 파고드는 듯하다. 연세 많은 신자들이 주축이 된 한 단체의 행동은, 우리의 아픈 현대사와 치유되지 않고 보듬어지지 못한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오래 전에 있었던 전쟁과 살상의 트라우마는 극복되지 않았다. 악몽 같은 기억을 외면하거나 억누를지언정 함께 치유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어쩌면 형제와 친구, 이웃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의식이 오히려 남에 대한 적대감으로 발전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공격성은 흔히 자신을 짓누르는 죄의식을 남에게 투사한 결과일 수 있으니까.

▲ 지난해 10월 대전에서 열린 떼제 동아시아 모임 중 참가자들이 십자가 주위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 ⓒ이창훈

어떻게 하면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역사적 · 집단적 기억의 경우, 가해자 쪽의 사과와 사죄는 큰 도움이 된다.

지난 2월 스페인 정부는 16세기에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의 후손에게 원하는 경우 스페인 국적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가톨릭 국왕 이사벨과 페르난도 시절에 추방된 유대인들의 후손은 지금 전세계에 약 3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국적을 신청하거나 스페인으로 돌아올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상처 입은 옛 기억의 치유에 첫째 의미가 있다고 한다. 522년 전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놀랍다. 뒤집어보면 역사의 상처는 그만큼 오래간다는 말도 되겠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비잔틴의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때의 엄청난 상처는 동방 정교회의 집단적 기억 속에 남았다. 2004년 교종 요한 바오로 2세는 두 차례에 걸쳐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8백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어찌 그 아픔과 혐오감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우스 1세는 교종의 말을 라틴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로 받아들였다.

어떤 사람들은 기억의 치유를 위해서는 정의를 세우는 일이 선행되거나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몇 주 전에는 독일 사법당국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한 세 사람을 체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각각 88세, 92세, 94세의 노인들이었고 모두 감옥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며칠 후에 그 가운데 한 명은 치매가 심해 재판받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법원의 결정이 있었다. 70년이 넘게 지났고 피의자들이 아무리 고령이라도, 반인류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없어 이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징벌적 정의가 기억의 치유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그것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또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늘 가능하지도 않다. 불행히도, 트라우마가 있는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오래 기억하면서도 내가 남에게 행한 잘못은 생각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집단에게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강요하는 수모와 고통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가해자가 사죄하고 용서를 청해야만 비로소 실마리가 풀리는 것일까? 가해자가 법의 응징을 받아야만 과거의 상처가 나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경우에 피해자는 과거에서 헤어날 수 없고, 거듭 분노와 우울로 상처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현실에서 보면 가해자의 사과를 받을 수도 그를 처벌할 수도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 어떻게 하면 폭력과 상처, 보복과 원한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피해자들의 연대와 용서에서 발견하는 치유

여러 형태로 상처 입은 피해자들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리고 연대하는 데서 치유의 한 실마리를 본다. 예를 들어 일본의 ‘히바꾸샤(被爆者, 원폭피해자)’들이 한국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와 손잡은 모습, 그 위안부 할머니들이 ‘나비 기금’을 만들어 베트남과 콩고 등 다른 나라의 성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활동은 커다란 감동이다.

최근에는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부산의 한 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엄청난 슬픔 속에서도 “용서”를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책임자들을 처벌함으로써 또 다른 가족이 고통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고한 사람의 희생 앞에서 분노하고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 하고 여전히 물을 수도 있다. 나는 그분의 ‘용서하는 사랑’에서 하느님을 보았다고 감히 말하련다.

우리가 따르려는 예수님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모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셨다”(1베드 2,23).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마태 5,45) 분이라 가르쳐 주셨다.

떼제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나무판에 그려진 십자가 성화를 바닥에 모시고 그 주위에서 드리는 기도가 있다. 무거운 짐을 그리스도께 맡긴다는 뜻으로, 누구나 십자가 위에 이마를 대고 기도드릴 수 있다. 어느 금요일 저녁, 독일 청년 하나가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젠 정말 홀가분하고 기쁩니다. 방금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면서 마침내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가끔 폭력을 휘둘렀다. 이것이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집을 떠났는데, 여러 해 동안 마음을 먹었지만 아버지와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고. 이 젊은이에게 내가 말했다. “이제는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겠네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5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과거를 십자가에 내려놓고 용서의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에게 파스카의 신비가 드러난다. 아픔과 고통에서 치유와 해방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가는 길이 그들에게 열린다. 상처가 깊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용서는 마음의 사막에 샘물이 솟게 한다. 개인과 가족, 단체와 교회, 지역과 국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용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역사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느님의 기적이다. 때로는 길고 힘든 과정이지만 용서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용서의 시작이다.

이마에 재를 받고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용서의 축제도.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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