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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새 세상의 시작을 보았다[신한열의 떼제 일기 - 6]

넬슨 만델라의 서거 뒤에 추도 기간을 보내면서 한동안 잊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베네딕트는 25년 전 내가 처음 떼제에 왔을 때 같은 그룹에서 만났다. 여덟 명 가량 되었을까, 우리는 한 주간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첫 날, 서로 소개를 할 때부터 유일한 흑인이었던 베네딕트는 좀 특별했다. 모두 자기 이름과 함께 영국, 독일, 벨기에, 필리핀, 한국 등에서 왔다고 말했지만 그는 나라 이름 대신 “하느님의 자녀”라고 했다.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인종차별 정책이 엄격히 시행되던 그 시절, 백인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다가 붙잡혀서 한 달 동안 구류를 살았고, 나서 자란 자기 나라를 결국 등졌던 것이다. 성공회 사제를 지망하는 그는 영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여자친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의 흑인 타운쉽 소웨토(Soweto)에서 일하던 조안 수녀님은 매년 젊은이들을 한두 명씩 떼제로 보냈다. 그 가운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와서 1년 동안 자원봉사를 했던 즈벨리는 나중에 한 수도회의 사제가 되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떼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백인 청년 저스틴은 -이제는 중년이 되었다 !- 요양센터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종차별 시절의 갖가지 사건 사고로 외상장애(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프리칸스를 모국어로 하는 유색인 리처드는 몇 해 전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영어 교사를 하고 돌아갔다. 모두들 그리운 얼굴이다.

   
 ⓒ신한열


내가 떼제에 도착한 것은 1988년. 남아공에서는 인종차별 정책이 계속되고 있었다. 백인의 오랜 지배와 독점, 무시와 차별로 흑인과 유색인의 불만과 저항이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때였다. 매스컴에서는 타운쉽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나 서방국가의 대 남아공 봉쇄 정책에 관한 보도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 나라의 흑인, 백인, 유색인, 인도 사람 등이 모두 떼제에 오고 있었고 여기서는 그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만났다. 남아공 청년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 네 인종이 동시에 떼제에 머물 때도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우리는 인종차별이 사라진 남아공의 모습을 함께 그려 보곤 했다. 그 꿈을 미리 꾸고 나눈 사람은 투투 대주교였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남아공의 모든 인종을 대표하는 144명의 청년을 떼제로
“주님,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1970년대 말에 떼제를 방문했다. 그는 당시의 암울한 상황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남아공의 모든 인종을 대표하는 144명의 청년을 떼제로 보내겠다고 약속했고 이 계획은 이듬해에 바로 실행되었다. (이 숫자는 물론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뽑혀 구원받은 14만 4천 명을 상징했다.) 그 뒤로 매년 남아공의 젊은이들이 현지 교회의 추천과 파견을 받아 떼제에 오고 있었다.

그 시절 떼제에서는 가끔 저녁 기도가 끝날 무렵, 모두가 남아 있는 교회 안에서 남아프리카 친구들이 특별한 멜로디의 노래를 하나 불렀다. 코사, 줄루, 세소토 등 부족언어로 연이어 부르는 “엔코시 시켈렐 이아프리카” (Nkosi Sikelel' iAfrika)" (주님,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 였다.

“주님,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 그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사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축복하소서. 우리나라를 축복하시고 모든 전쟁과 고통을 멈추게 하소서...”

힘찬 가락에 부분적으로 돌림 노래가 되고 화성이 첨가되어 아름다움을 더한 이 노래에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아프리카 젊은이들이 기도 시간에 합창할 때는 더욱 그랬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억압받는 민중이 수십 년 동안 불렀던 이 저항의 노래가 이제는 인종차별이 사라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의 1-2절로 남아, 국제 스포츠 경기 때 듣게 되었다. 역사는 전진한다 !) 그 노래는 차별과 억압, 폭력과 고통 한가운데서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간절한 기도였다. 하늘을 향한 절실한 탄원의 외침이면서 그 노래를 부르고 듣는 사람에게 그들의 염원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염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 1990년 2월의 어느 날.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넬슨 만델라의 석방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우리는 식당에 텔레비전을 설치해 놓고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렸다. 27년의 수형 생활 끝에 마침내 그가 로븐 아일랜드의 감옥을 나왔을 때, 떼제의 언덕에는 한참동안 축제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은 한 사람의 출옥만이 아니라 새 세상의 시작을 기뻐하는 종소리였다. 백인의 흑인지배, 인종차별을 끝내고 모두가 사람대접을 받는 자유와 우애의 세상이 시작되는 장면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었다. 식민의 역사와 이권 추구, 무지와 증오와 두려움의 장벽이 갈라놓았던 사람들과 그 후예들이 결국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마침내 손을 잡게 되는 세상...

정의와 자유를 위한 투쟁만으로도 그는 위대했지만, 화해를 이루고 평화롭게 새 나라를 건설하는데 보여준 만델라의 역량과 정신은 더욱 위대했다. 압제와 폭력이 있던 곳에서 평화를 이룩하는 것은 사실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가 ? 오랫동안 차별과 수모와 좌절을 겪었던 사람들이 복수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전의 압제자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얼마나 위대한 정신, 자유로운 영혼의 승리인가? 남아공의 모든 인종들은 미움과 분열이 아니라 인내와 신뢰로써 일치와 공존의 길을 열었다. 여기서 성령의 숨결, 하느님의 손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

물론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자유는 얻었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계속되고 ANC 정권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남아공이 마주한 도전과 과제는 적지 않다.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만델라와 함께 위대한 역사의 한 순간을, 새 세상의 시작을 이미 보았다. 정의와 자유가 결국은 승리하는 것을. 진실과 화해로 과거를 청산하고 새 역사를 써가는 한 나라를 보았다. 개인 사이에서만 아니라 집단과 인종 사이에서도 용서가 가능함을 보았다. 도시 빈민으로부터 열강의 지도자까지 일체감을 느끼게 한 만델라의 장례식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같은 운명을 지닌 하나의 인류 가족임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신한열

평화, 샬롬은 이미 주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기다림의 대림절을 보내고 성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새롭게 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 그것도 이미 2천 년 전에 !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사 9,5)이신 그분이 오셨지만 세상은 아직도 불의하고 문제투성이다. 하느님이 역사에 들어오시고 개입하신다는 데, 자유롭고 평등하며 화해를 이룬 세상은 여전히 멀리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

그렇다. 평화(샬롬, 안녕)는 이미 주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자애로우신 하느님은 무엇보다 참을성 있는 분이시다. “하느님께는 천년도 하루 같다”(시편 90,4)고 하지 않았는가. 분명한 것은, 이 땅 위에 불의와 배고픔이 있는 곳, 억압과 소외가 있는 곳,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한 곳에서 그분은 오늘도 지극히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베들레헴 말구유를 찾아간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처럼 그분을 찾아 나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하느님께서 친히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도록 우리의 손을 빌려드리는 것도.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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