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열의 떼제 일기 - 12]

얼마 전에 프랑스 중부의 한 수녀원에서 열린 첫 서원식에 다녀왔다. 떼제에서 300㎞ 가량 떨어진 도시로 중세의 성당과 건물이 도심에 잘 간직된 곳이다. 서원자는 단 한 명으로 한국인.

주교관 바로 옆에 자리한 수녀원의 큰 건물과 넓은 안마당,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아름다운 경당이 옛날을 짐작케 했다. 그런데 수녀님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중년의 몇 사람은 모두 한국인이고 양성 중인 젊은 프랑스인은 단 한 사람이었다.

오래 전에 이 수녀회의 총장이 젊은 한국인 청원자를 데리고 떼제에 온 적이 있었다. 한국인 수도자와 한국말로 얘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장상의 배려였다. 짧은 방문 뒤에 그 한국 자매는 몇 해 동안 가끔 한글로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

19세기에 창설된 이 수녀원은 성소자의 급격한 감퇴로 여러 해 전에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런데 이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의 많은 활동 수도회가 겪은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거나, 들어와도 남지 않게 되자 이 수녀회는 로마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사제들을 통해 한국 지원자를 소개받기 시작했다. 이번에 가서 들으니 떼제에 왔던 그 전임 총장 수녀님은 재임 동안 35명의 한국인 입회자를 받았다고 한다. 그 사이 이 수도회는 한국에 진출했고 이번 서원자는 한국에서 입회하여 수련을 받았다.

서원식 미사는 교구의 주교님이 주례했고 몇 분의 교구 및 수도회 사제가 공동 집전했다. 누군가는 “수녀 한 사람의 첫 서원 미사에 주교님이 참석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노인들이 다수인 탓일까. 전례 음악이 조금 덜 세련되고 투박했지만 진심 어린 수녀원의 분위기가 감동적이었다. 서원식 직후에는 한복을 입은 선배 수녀님이 한인 교우의 장구 소리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추면서 기쁨을 표시했다. 언어의 어려움과 문화적 장벽을 넘어서 프랑스 수녀원에 정착한 한국인 수녀님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 떼제 화해의 교회 창유리 ‘엘리사벳 방문’ (사진 제공 / 신한열)

1999년 이후로 프랑스의 수도자 수는 40퍼센트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프랑스의 사제와 신학생도 3분의 1이 줄었다. 짧은 기간에 엄청난 수가 감소한 것이다. 현재 45세 미만의 수도자 가운데 절반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왔다. 그래도 급격히 줄어드는 수도자 수를 메우지 못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양성 중인 여성 수도자 490명 가운데 310명이, 남자 수도자 392명 가운데 140명이 외국인이다. 이 추세가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서구의 많은 교구와 수도회에는 성소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일부 수도회는 다른 대륙,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눈길을 돌려 콩고, 필리핀, 한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성소자를 대거 “계발”했다.

국제 수도회의 경우 그 과정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웠다. 위기의식을 가진 다른 수도회도 그들을 따랐다. 그 결과, 아프리카 · 아시아 출신 수도자들의 유럽 진출(?)이 많아졌다. 많은 수도회의 총원과 가톨릭 교육기관이 있는 로마에 가면 그 현상이 눈에 두드러진다. 또 선교지에서 창설되었지만 유럽에 분원을 설치하고 회원을 파견하는 수도회도 많아졌다. 로마의 한 남자 수도회 총원에서는 한국의 방인수녀회가 주방 일을 책임지고 있다.

중국 선교를 위해 네덜란드에서 창설된 한 선교 수도회에는 이제 젊은 네덜란드 사람은 전혀 없고 주로 아프리카와 필리핀 등지에서 회원들이 입회한다. 예수회를 비롯하여 더 큰 수도회에도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젊은 회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 수도회에서 비유럽인이 총장으로 선출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한 세대가 지나면 전체 수도자 가운데 비유럽인의 비율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활동 수도회보다 관상 수도회의 성소자가 덜 줄었다고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몇 해 전에 우리 수사들이 벨기에의 한 베네딕도 봉쇄 수녀원에서 기도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비교적 젊은 필리핀 수녀 몇 분이 와서 살고 있었다. 벨기에 회원들은 모두 노인이라 그들이 주방 일과 청소, 환자 보살핌 등 살림살이를 도맡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올 봄에 들으니 결국 그 수녀원은 문을 닫고 필리핀 수녀들은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수도회뿐 아니라 심각한 사제 부족을 겪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의 여러 교구가 사제들을 “수입”하고 있다. 보편 교회 안에서 서로 돕고 나누는 것을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일부 개발도상국 교구에서는 유럽으로 사제를 파견하는 것이 본국 교회를 위한 재정 후원과 맞물려 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외화 획득을 위한 인력 수출과 비슷한 측면도 있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 떼제 화해의 교회 창유리 ‘성령강림’ (사진 제공 / 신한열)

수도회들이 아시아 몇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지원자를 모으는 것과 성직자 혹은 수도자를 유럽으로 수입(?)하는 것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는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다른 대륙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견했던 유럽이 이제 선교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이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지언정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의 수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개신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떼제를 포함한 아주 넓은 지역의 개신교 본당 목사님도 한국인이다. 이번 주말에 견진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함께 떼제에서 1박2일 지냈다. 같이 온 샬롱의 목사님은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마콩의 개신교회에는 목사님이 공석인지 오래 되었다.

얼마 전 프랑스의 방학 때 젊은이들을 데리고 온 인솔자 가운데는 한국인 도미니코회 수녀님이 한 분 있었다. 그분의 수녀회도 프랑스인은 점점 줄고 베트남과 한국 수녀님들이 명맥을 잇고 있다고 했다. 지난 주일 성 도미니코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 중인 독일 여러 도미니코 수녀회의 양성 책임자 여덟 명을 만났다. 그 가운데 두 분이 한국인이었다. 또 스페인에서 아주 오랜 역사를 지난 한 가르멜 수녀원에도 한국인들의 수가 적지 않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분가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프랑스 혹은 유럽 교회 안에서 한국인 수도자와 성직자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증거를 보여줄 것인가? 현지 사제와 수도자의 감소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해도, 이들이 그저 ‘대체 인력’에 그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노쇠하고 피곤한 유럽 교회에 한 줄기 복음의 신선한 바람이 불어올 수 있을까?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요한 3,8). 성령도 마찬가지다.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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