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을 묵든, 평생을 눌러 살든그렇구나! 밤이면 걸어두는 횃대의 옷가지,날마다 묶고 푸는 윗목의 보따리― 하삼두 (스테파노)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 밀양의 산골에 살며 문인화와 전례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성당과 수도원, 기타 교회관련시설에서 미술작업을 했다.
탱고는 부두 사창가에서 파트너를 기다리던 남성들이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합을 이뤄 추던 춤이었다고 한다. 유래를 알고 나니 왜 이 춤이 희비극이 교차된 감성을 그토록 강렬하게 전달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격정적 음악과 파격의 에너지가 어우러진 탱고는 영화의 사랑 역시 듬뿍 받아서 (1972), (1992)처럼, 탱고 영
노경희 (프리랜서)
후쿠시마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고 원자로가 ‘녹아내렸다’. 모든 방사능 물질이 땅과 하늘을 뒤덮고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 2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우리나라는 2013년 9월 6일에서야 각종 포털에 ‘정부, 후쿠시마 주변 8개현 수산물 전면 수입 금지’라는 기사가 떴다. 그
김준희 (효주 아녜스)만화가. 홍익대학교에서 교육학, 영어교육을 전공했으나 20여 권의 만화책과 여기저기 연재만화를 그리며 살다가, 지금은 나름 전공을 살려 무료대안학교인 도담학교 무료교장 노릇을 하며 지내고 있다. 저서로 생각과 그림을 담은 가 있다.
오페라를 보다 보면, 배역들의 역할과 비중이 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주역들은 거의 매 장면마다 출연하여 레치타티보를 부르거나 아리아를 열창하는데 비해, 조연들은 한 곡만 잠깐 부르고 들어가거나, 한 마디 외치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대사나 곡도 없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역에 따라 비중의 차이가
소송이나 영리활동보다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공익전담변호사들. 지난 8월 24일자 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비영리 로펌, 시민단체 상근 변호사, 개인 공익법률사무소 등을 통해 활동하는 공익전담변호사는 약 20여 명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변호사 중 0.1%다.이 0.1% 중의 한 사람인 서선영(데레사) 변호사. 그는 지난 2012년
굽이돌던 바람도 마른 잎새 데리고 쉴 곳을 찾네.대숲은 변성기의 허스키 보이스철없는 개울물은 아직도 젖은 고음인데,땀 흘렸던 이마에 패인몰랐던 주름고맙단 말, 사랑한단 말간신히 건네고는 눈치를 보았네. 하삼두 (스테파노)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 밀양의 산골에 살며 문인화와 전례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
마을에 살다 보면 말이 통하는 이웃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농사며 음식 만드는 거며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의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로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심전심의 기쁨을 맛보는 가운데 큰 위로를 받고 새 힘이 솟는 것을 느
까사미아가 아이들에게 두루 알려지게 된 입소문의 일등공신인 현.큘로 아저씨의 조카 손주인 현은 개그 기질을 타고났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계면쩍어 계속 까불다가 더 혼나곤 합니다. 중2인 현은 어디가나 인기 짱입니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즐겨 부르고 운동 신경도 많이 발달된 데다가 오버 액션을 즐겨 해서 남자 친구들뿐 아니라 여자
해뜨면 노래하고비오면 듣지요. 하삼두 (스테파노)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 밀양의 산골에 살며 문인화와 전례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성당과 수도원, 기타 교회관련시설에서 미술작업을 했다. 등 명상그림집을 펴냈다.
이 땅의 모든 자연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입니다.인간의 탐욕에 의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바로 인간의 삶의 터를 파괴하는 일이며, 창조 질서를 혼돈의 세계로 몰고가는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결코 '두물머리의 눈물'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저 유명한 구절은 논어 자로편 제23장에 나온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다른 많은 논어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이 단편에도 공자가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전후좌우 상황이 없다. 그 어떤 부연설명도 없다. 한 마디로 뭉퉁하고 불친절한 단편이다. 그래도 다행히 해석에 있어서 별 이견은 없다. 이견의 소
툭, 툭, 투두둑. 갑작스레 떨어진 빗방울이 대한문 앞 보도블록에 얼룩을 내어도 기도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가방에서 조용히 우산을 꺼낸 이들은 앉은 채로 우산만 펼치고는 자리를 지켰다. 성찬 전례가 끝날 즈음엔 빗방울이 꽤나 억세져 보도블록 전체를 검게 적셨다. 그제야 사람들은 대한문 처마 밑으로 비를 피했다. 고집 센 사람들, 150일째 한 자리를 지키
나의 어릴 적 꿈은 신부님이었다. 6살의 나이에 혼자 찾아간 성당에서 신부님을 처음 뵈었고 그날 이후 내 머릿속엔 오로지 신부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외아들에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사제가 되면 돈이 많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며,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아도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하느님께 내가 당신의 제자가 되어 살 수 있게
“우-웅.” 바지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떨리는 살에 파고드는 진동음이 쌉쌀하다. 휴대폰을 꺼내보니 문자메시지가 떴다. “OO문예 공모처입니다. 좋은 소식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부디 건필하시길 빕니다.”“으-음.” 문예 대상 공모전 낙선 소식! 결국 발표했구나. 떨어진 모든 이에게 일률적으로 보내는 메시지를 받고 말았다. 개인적인 소식이 아니다.
긴긴날, 그 무덥던 여름날얼마나 간절히쳐다보았던 하늘이던?だ蠻測?않았나 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하삼두 (스테파노)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 밀양의 산골에 살며 문인화와 전례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성당과 수도원, 기타 교회관련시설에서 미술작업을 했다.
사람 구경하러 가끔 시청 앞 광장에 갔다.비오는 여름날, 내가 받쳐 든 우산이 타인의 시야를 가리고 불편을 줄까봐, 함부로 우산을 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고, 적어도 만 명 이상이 모인 곳이라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그러고 있었다.미리 우비를 준비해 입고 오지 못한 게 미안하다는 듯, ‘가랑비’는 웬만하면 맞고 있었다. 장대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