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태의 추적! 공자(追跡! 孔子) - 14]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저 유명한 구절은 논어 자로편 제23장에 나온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다른 많은 논어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이 단편에도 공자가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전후좌우 상황이 없다. 그 어떤 부연설명도 없다. 한 마디로 뭉퉁하고 불친절한 단편이다. 그래도 다행히 해석에 있어서 별 이견은 없다. 이견의 소지가 있다면 동(同)에 관해서일 텐데 同은 뇌동(雷同)한다는 뜻으로 해석함에 의견이 거의 일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의 말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왔다.

“군자는 서로 융화하되 뇌동(雷同)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뇌동할 뿐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

뇌동으로 번역되는 同은 주자의 해석에 의하면 아비(阿比)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아비란 아첨하고 빌붙는다는 말이다. 아첨하고 빌붙는 것이나 힘 있는 자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것이나 결국 그것이 그것이다.

이 해석은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한 기록에 의해 막강하게 뒷받침되고 있다. 좌씨전 자체가 신뢰성이 높은 역사기록인 만큼 거기서 대(對)를 이루며 사용되고 있는 화(和)와 동(同)을 무시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원문의 기록은 매우 긴 까닭에 주요 부분만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나라 임금이 사냥에서 돌아옴에 양구거(梁丘據)가 수레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 이에 임금이 “양구거만이 나와 융화하는군(唯據與我和夫)!” 하였다. 재상 안자(晏子)가 옆에 있다가 “양구거도 역시 뇌동하는 것입니다. 어찌 융화함을 얻었겠습니까(據亦同也.焉得爲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화(和)와 동(同)은 다른 것인가(和與同異乎)?” 하였다. 안자가 말씀드리기를 “다릅니다. 화(和)는 마치 국을 끓이는 일과 같습니다. … 임금이 좋다하더라도 혹 좋지 못한 점이 있으면 신하는 그 좋지 못한 점을 말씀드려서 시정토록 하고 임금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좋은 점이 있으면 그 좋은 점을 말씀드려 그릇된 점을 제거토록 해야 합니다. … 그런데 양구거는 그렇지 못합니다. 임금께서 좋다고 하시면 양구거도 좋다고 하고 임금께서 좋지 않다고 하시면 양구거도 좋지 않다고 합니다. 국에 간을 맞추지 않고 물에 물을 타고서야 누가 그 국을 먹겠습니까(以水濟水,誰能食之)? 뇌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同之不可,如是).” 하였다.

정약용은 좌전의 이 구절에 대해 ‘화동(和同)에 대한 논의로서 이보다 더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和同之辨,莫詳於此)고 극찬을 했다. 실제 화와 동에 대한 좌씨전의 설명은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다. 아마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로편 제23장에 대한 해석은 과거나 지금이나 해석자들 간에 별로 이견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서예 ‘和而不同’ (자료 제공 / 더불어 숲 www.shinyoungbok.pe.kr)

그러나 화이부동에 대한 이 일관된 해석은 2000년대에 들어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다름 아닌 성공회대학교의 신영복 교수가 전통적인 해석과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그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 각종 저술과 강의를 통해 높은 대중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또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화이부동에 대한 그의 새 해석은 비록 주류 해석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지만 제법 비중 있는 새 해석으로 자리를 잡게 된 듯하다.

그는 전통적 해석에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우선 화와 동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이 대(對)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또 한 가지는 앞 구절인 화이부동에서의 동은 뇌동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뒤의 구절인 동이부화에서의 동은 동일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등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혐의점으로 들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주된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의미가 이 말의 진짜 의미이고 전통적인 해석은 공자의 진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는 왜 전통적 해석이 잘못인가를 구구히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해석자의 직관적 판단보다 우선하는 이유가 있기 어렵다는 것은 논어를 해석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적인 문제를 구구히 따지기보다 신영복 선생이 제시하고 있는 새 해석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일 것 같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그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지배하려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자본주의를 든다. 그리고 극좌도 극우도 모두 그런 논리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또 중국의 중화주의가 새로운 동(同)의 논리가 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통일론도 동의 논리에 의거할 수도 화의 논리에 의거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며 바람직한 통일은 화의 논리에 기반한 것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화와 동의 논리가 어떤 것인지는 대략 이해가 되리라 생각한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지배적이던 시절, 이 논리는 자주 들어왔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주목할 가치가 있는 논리다. 그래서 그가 주장하는 논리 자체에 대해서는 거듭 되풀이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과연 공자가 이 말을 하였을 때 그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동(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주자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인정되어 온 뇌동의 의미로 볼 것이냐 아니면 신영복 선생이 주장하는 지배와 동일화의 의미로 볼 것이냐다.

나의 결론부터 먼저 제시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하겠다. 나는 이 두 가지 설이 모두 공자의 진의는 아니었다고 본다. 두 가지 설이 제가끔의 의미와 교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정작 공자가 이 말을 하였을 때의 의도는 그 둘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는 공자의 말뜻은 무엇인가? 나는 앞 문장 화이부동에서든 뒤의 문장 동이부화에서든 동(同)은 모두 같다, 동일하다는 뜻, 同자의 가장 일반적, 보편적인 의미에서 사용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해석은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군자는 서로 융화하나 같지는 않고 소인은 똑같으면서도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

이 해석은 사실 나만의 새로운 해석은 아니다. 이 해석적 입장은 이른바 고주(古注)의 입장이다. 고주는 주자의 <논어집주>보다 대략 1000년 전에 나온, 정현(鄭玄), 마융(馬融) 등 한대와 삼국시대 학자들의 해석을 모아놓은 <논어집해(論語集解)>의 주석을 말한다. 기왕 고주에 동의하는 입장임을 밝혔으니 나의 구구한 설명 대신 고주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군자는 마음이 화목하나 그들이 보는 견해는 각각 다른 고로 같지 않다고 하였다. 소인은 즐기고 좋아하는 바가 같으나 제가끔의 이익을 다투는 고로 화목하지 못하다 하였다.
(君子心和, 然其所見各異, 故曰不同. 小人所嗜好者同, 然各爭其利, 故曰不和也.) <論語集解>

하안(何晏)의 이 해석은 덜고 보탤 것 없이 바로 공자의 발언 취지였다고 본다. 주자가 同을 뇌동의 의미로 본 것은 좌씨전의 권위와 그 문장의 설득력에 이끌린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同이 뇌동이나 맞장구의 의미로 쓰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수록된 일화에서도 제나라 임금은 안자(晏子)가 和와 同이 어떻게 다른지 긴 설명을 하고서야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좌씨전의 기록은 공자 사후에 나온 만큼 공자가 이 기록을 보았을 리 만무하고 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和와 同이 나올 뿐이다. 따라서 좌씨전의 특수성에 근거하여 공자의 보편성 있는 발언을 해석한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고 본다.

同은 일반적으로 ‘같다’는 의미이고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일반적인 경우에서는 누구든 당연히 ‘같다’는 의미로 말하고 듣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자의 신주를 공자의 진의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그렇다면 신영복 선생의 새 해석은 어떤가? 나는 그가 同의 의미를 관념적으로 확장한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同은 같다는 뜻이고 不同은 같지 않다는 뜻인데 신영복 선생의 해석에 오면 同은 획일화하는 것, 지배하려 하는 것이 되고 不同은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아무리 한자가 일정하게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뜻글자로서의 속성이 있다고 하지만, 同과 不同이라는 말에서 듣는 사람이 과연 그런 의미까지 간취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同이 과연 그런 정도로까지 확장되어 사용된 전례가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과문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전례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의문스러운 것은 과연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후반이 다양성과 획일성이 문제가 되던 시대였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성과 획일성이 자주 거론되던 시기는 소위 군사문화가 다른 체질의 문화를 극도로 통제하던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2000년대만 들어서도 그런 이야기는 현저히 누그러진 것이 사실이다.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권, 제가끔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런 논의가 등장하는 문화와 시기가 있고 그렇지 않은 문화와 시기가 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대로 공부를 좀 했다고 하는 사람인데 최소한 그 시대에 걸쳐서는 다양성과 획일성은 시대의 문제를 보는 프레임이 아니었다.

공자는 그 시대의 문제를 바라보는 공자만의 몇 가지 독특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공자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서 그것을 보느냐 못 보느냐에 따라 다수의 논어 단편을 바르게 해석하느냐 못 하느냐가 좌우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그런데 다양성과 획일성 내지 공존과 지배, 관용과 흡수합병은 춘추 후반의 문제를 인식하는 프레임으로서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또 공자의 다른 어떤 발언에서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신영복 선생의 해석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있고 생각해 볼만한 주제임에 틀림없지만, 적어도 공자의 발언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는 단지 부귀에 얽매인 한통속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소인들의 모습과 그런 잇속을 떠나 생각은 서로 다르지만 예를 잃지 않고 화목하는 군자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언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두 인간상이 아닐 수 없다.

논어 단편이 잘못된 해석에 이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화이부동이 신주에 이르러 무리한 해석을 따르게 된 것은 공자의 말과는 아무런 연관 없이 생겨난 <좌씨전>의 일화가 우연히 和와 同을 취급했고 그것이 비교적 높은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논어를 직시하기에는 좌씨전이 바로 옆에서 해석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던 것이다.

유사하게 신영복 선생의 해석은 다양성과 획일성을 둘러싼 안타까운 현실이 역시 이 말을 직시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위치에서 해석자의 시선을 휘게 만든 결과가 아닐까 한다. 논어를 해석하는 일, 그 화자의 마음에 이르는 일은 2500년이라는 세월의 간격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수태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 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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