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1]

오페라를 보다 보면, 배역들의 역할과 비중이 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주역들은 거의 매 장면마다 출연하여 레치타티보를 부르거나 아리아를 열창하는데 비해, 조연들은 한 곡만 잠깐 부르고 들어가거나, 한 마디 외치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대사나 곡도 없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역에 따라 비중의 차이가 있을 것은 당연하지만,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것이 무대 위의 오페라입니다.

사람 사는 사회도 그렇지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사회가 그러할 진대, 오페라 또한 그러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역들만 출연하는 오페라는 썰렁하겠지요. 조연이나 단역이 있음으로 해서 주역들이 더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자주 나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불러야 하는 주역들은 극 중의 상황과 음악이 계속 바뀌는데, 자신이 불러야 할 곡을 어떻게 다 기억을 해서 적절히 타이밍에 맞추어부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긴장을 해서 대사나 곡을 잊을 때도 있을 텐데, 그 때는 어떻게 할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무대 위에서 당황해서 멈칫거리기만 한다면 공연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무대 밑 ‘프롬프터 박스’에 몸을 숨긴 채 대사나 곡의 시작 부분을 한 두 마디 전에 눈치껏 불러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수제리토레’라고 하는데, 오페라 전체의 흐름을 잘 알고서 무대 위의 위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순발력과 실력도 갖추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그 날 공연의 질이 그에 의해 좌우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유럽에서도 사라져가는 추세에다가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하는군요.

무대 위의 사람 못지않게 무대 아래 사람의 역할과 비중도 크다는 게 공연의 특성이라니, 사람 사는 사회도 그럴까요.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라는 책을 최근에 본 적이 있는데, 역으로 세상이 사람을 들여다보는 창이 있다면 목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페라를 보면서 했습니다. 고음이면서 맑은 목소리, 저음이면서 울림이 있는 목소리, 드라마틱한 목소리,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 고음대와 저음대를 넘나드는 폭 넓은 목소리 등 목소리에 따라 주어지는 배역이 다르듯, 음역대와 목소리가 가진 특성에 따라 사람의 성격도 구분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남자와 여자는 대화법이 다르다’는 심리학자의 연구 결과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자는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에 집중해서 듣는 반면에, 여자는 상대방이 말할 때의 목소리의 억양, 고저, 울림, 감정의 기복에 집중해서 듣는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음역대와 목소리가 가진 특성에 따라 오페라의 배역을 정하는 것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물론 배역들 간의 목소리의 조화, 무대에서의 연기력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목소리와 연기력을, 스토리를 가진 볼거리와 함께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오페라가 가진 매력입니다. ‘어떻게 저런 소리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까. 전혀 힘을 들이는 것 같지 않은데 저렇게 맑은 고음을 낼 수 있다니. 어떻게 저런 저음이 깊은 울림을 가지고 무대를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비록 이탈리아어나 독일어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배역의 목소리와 연기만으로 오페라가 주는 감동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페라에 열광하는 것일 테지요.

주연급이 등장해 작품의 주요 장면을 부분적으로 공연하는 무대인 ‘갈라 콘서트’나, 연주회 형식으로 하는 공연인 ‘오페라 콘체르탄테’와는 또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이 오페라입니다. 예를 들면 푸치니의 오페라 <쟌니 스키키>에서 레나타 스코토가 감칠 맛 나는 연기를 하면서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o caro)를 열창하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그러할 것입니다.

지금도 자주 공연되고 있는 백 년 전, 이백 년 전 걸작 오페라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습니다. 바로 밀턴 브레너가 쓴 <무대 뒤의 오페라>라는 책입니다.

음악가들이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겪었을 여러 가지 상황과 난관을 당시의 일기, 자서전, 회고록, 신문 기사, 전기 작가나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근거한 일화를 통해 정리한 책입니다. 이러한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과, 오페라에 소재를 제공한 작가, 그리고 당시 시대적 상황 등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희곡 작가인 보마르세가 사업 실패로 투옥되었을 때 겪었던 사건들을 통해 그가 느꼈던 분노와 상류계층, 정부, 사법제도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 그의 희곡인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 속에 그대로 투사되고 풍자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국왕이나 검열관이 공연을 허가해주지 않았을 때, 낭독회를 통해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공연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대본작가였던 다 폰테는 젊어서 사제가 되기도 했으나, 오페라 속의 알마비바 백작이나 실제 친구였던 카사노바처럼 방종한 생활을 하다가 유죄가 인정되어 국외 추방명령을 받았을 정도로 문란한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모차르트를 만나 <피가로의 결혼> 대본을 쓰면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여러 번 수정한 끝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오페라를 만드는데 일조하였음도 우리는 브레너의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무대 뒤의 오페라>에 얽힌 일화들을 통해, 무대 위의 오페라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또한 사실일 것입니다. 빙산의 드러나지 않은 부분과 드러난 부분처럼은 아닐지라도.

물론 바그너의 말처럼 “음악은 언어와 달리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힘이 있다 ...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예술가는 드라마의 연기나 시를 음악으로 묶어줌으로써 관객의 지성을 통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직접 감정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무대 위의 오페라가 최종 목적지가 되어야 할 테지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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