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의 주말영화] <탱고 위드 미>, 프레데릭 폰테인 감독, 201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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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고 위드 미>, 프레데릭 폰테인 감독, 2012년작
탱고는 부두 사창가에서 파트너를 기다리던 남성들이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합을 이뤄 추던 춤이었다고 한다. 유래를 알고 나니 왜 이 춤이 희비극이 교차된 감성을 그토록 강렬하게 전달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격정적 음악과 파격의 에너지가 어우러진 탱고는 영화의 사랑 역시 듬뿍 받아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여인의 향기>(1992)처럼, 탱고 영화라 부를 만한 흐름을 형성한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탱고 위드 미>는 남남(男男) 커플이 추는 탱고라는 원형을 도입한 작품으로 위 흐름에 독자적인 획을 긋고 있다.

영화의 원제는 Tango Libre. 한국어 제목이 ‘소심한 순정남의 인생을 건 연애 소동’이라는 멜로 감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원제목은 배타성과 폐쇄성의 암묵적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사랑 법에 대한 유쾌한 반란에 영화의 핵심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남녀 간 사랑의 일대일 대칭성이 위배되는 일은 현실, 그리고 예술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했고 또 발생하고 있지만 이 영화처럼 거의 모든 남성 캐릭터가 여성의 자유와 선택에 관용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어서, 골라잡는 것이 가능하다면 원제목에 한 표 행사를 할까 한다.

교도소 간수로 근무하는 J.C(프랑수아 다미앙 분)는 꽉 막힌 일상의 탈출구로 탱고 레슨을 받고 있다. 그러다 ‘남편’과 ‘연인’이 모두 그의 교도소 죄수로 지내는 여인 앨리스(앤느 폴리세비치 분)를 만나게 된다. 규정상 재소자 가족과 접촉을 금해야 하므로, J.C는 그녀를 멀리하려고 하지만,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법. 앨리스에게 가는 시선을 감출 수가 없다. 문제는 앨리스의 남편 페르낭과 연인 도미닉까지 이를 눈치 챘다는 사실이다.

페르낭(세르지 로페즈 분)의 캐릭터는 <탱고 위드 미>의 서사를 끌어가는 중심축이 된다. 그는 아내를 책망하는 대신 탱고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출옥 후 그녀와 함께할 시간을 준비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듯 관대하고 낙천적인 삶의 방식은 그가 도미닉과의 오랜 우정과 앨리스와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그 결과 영화는 교도소 재소자의 탱고 군무라는 보기 드문 장관을 관객에게 선사해준다.

도미닉(잔 하멘넥커 분)은 다르다. 그는 현실의 무게감을 더 강하게 느끼는 인물이다. 게다가 살인까지 저지른 탓에 10년을 더 교도소에 머물러야 한다. 따라서 페르낭의 탱고 배우기에 태평하게 동참할 처지가 아니다. 앨리스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 춤출 수 있는 미래는 멀기만 하다. 여기에 앨리스를 오매불망 사랑하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있으니, 그는 15살 난 앨리스의 아들이다. 아들까지 J.C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이야기가 <탱고 위드 미>이다.

 

<탱고 위드 미>는 마치 교도소 버전의 <줄 앤 짐>(Jules and Jim, 1962) 같기도 하다. 그러나 21세기 줄과 짐에게는 20세기 세계사적 비극의 예감과 실존적 고뇌 같은 무거움이 전혀 없다. 엇갈리고 민망해지는 상황 하나하나는 모두 코미디의 소재가 된다. 따라서 여자 하나에 남자 넷이라는 풀기 어려운 함수를 처리하는 해법은 명쾌하고 단순하기만 하다. 다다익선, 열외 없음의 세계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법은 남성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치명적 매력으로, 가는 데마다 남자가 꼬이는 앨리스를 부러워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녀의 복(?)이 복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 저 손 많이 가는 남자를 넷이나 데리고 어찌 살꼬, 라는 영양가 한 점 없는 걱정이 머리를 내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같이 영화를 본 선생님은―아, 물론 여성이시다―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남기셨다. “왜 앨리스는 여자친구가 한 명도 없지?”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말이다. 여자들이랑 남자 흉도 좀 보고 깔깔대고 웃기라도 해야 숨통이 좀 트일 텐데. 남자가 남자끼리 소주잔 기울이는 시간 없이 가족애만 가지고 일생을 살 수 없는 것처럼, 여자도 그들만의 세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다. 그 와중에 남자만 자꾸 합승하려 하는 공동체라니, 맙소사. 그건 축복이 아니라 거의 재앙인 거지.
 

 
 

진수미 (카타리나)
시인. 한국문학과 영화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달의 코르크마개가 열릴 때까지>, <시와 회화의 현대적 만남>을 썼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출신. 작은형제회 <평화의 사도>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가톨리시즘이 담긴 시를 같은 지면에 소개했다. 덧붙여, 시는 영혼이고 영화는 삶이다. 펄프 향 풍기는 ‘거기’서 먼지와 정전기 날리는 ‘여기’로 경로 이동 중. 덕분에 머리는 산발이지만 약간 더 명랑해지고 조금 덜 외로워졌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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