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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영 변호사, "희망을 만드는 방법, ‘연대’의 힘 믿어요"[인터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서선영 변호사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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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9  17: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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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이나 영리활동보다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공익전담변호사들. 지난 8월 24일자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비영리 로펌, 시민단체 상근 변호사, 개인 공익법률사무소 등을 통해 활동하는 공익전담변호사는 약 20여 명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변호사 중 0.1%다.

이 0.1% 중의 한 사람인 서선영(데레사) 변호사. 그는 지난 2012년 2월, 5명의 동료들과 함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을 만들어 2년차 공익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미력하나마 그 길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희망법을 소개하는 리플릿에 서선영 변호사가 적은 말이다. 대한민국 공인 고소득 전문직인 변호사의 2011년 평균 수입은 4억 4천만 원. 하지만 공익인권변호사들의 월 수입은 200만 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법을 통한 희망과 연대라니. 그는 어쩌다가 이 힘들고 어려운 일에 들어서게 됐을까.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사진 제공 / 서선영 변호사)

대학을 오래 다녔고, 고시 준비도 오래 했다. 하지만 변호사의 꿈을 오랫동안 꾼 것은 아니다. 2005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2008년 연수원을 졸업하며 변호사가 됐지만, 사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고민에 고시나 자격증에 매달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단지 변호사가 되면 보다 자유롭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공익인권변호사의 길에 대한 선택은, 어쩌면 힘든 일을 피하려던 결과라며 웃었다.

“노동변호사, 인권변호사가 되겠다는 굳건한 의지로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무엇을 꼭 해야지’보다는 되도록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피하자는 것이 제 바람이었죠.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성격은 못되거든요. 이런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제가 뭐 굉장히 정의롭기 때문은 아니에요, 하하.”

다른 사람들은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 3~4개월 동안, 여행도 다니며 즐겁게 지냈지만 그는 오히려 그 기간이 무척 우울했다고 고백했다. “막상 합격하고 보니, 그때서야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는 그는 학회들을 찾아다니던 중 인권법학회를 만났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이 길로 흐르게 됐다고 말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말 그랬다. 어떤 방향을 향해서 주먹 꽉 쥐고 결연히 걸어가는 사람이라기보다, 산책하듯 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리 저리 둘러보면서, 좋아하는 풍경을 만나면 한참 머물러 바라보다가 그 방향으로 다시 길을 떠나는. 그는 “솔직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면서, “만약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했다거나, 가족의 지지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힘든 길을 간다고 해서 꼭 비장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가진 다양한 동력이 있기 마련이니까.

연수원을 졸업하고 지인이 “너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소개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상근 변호사가 됐다.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하면서 이슈별로 활동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이었는데, 업무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2008년 촛불 정국이 시작됐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3년을 보내면서, 다른 일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지만 당시의 경험은 지금도 큰 힘이 된다.

민변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탐색하던 중, 인연을 만났다.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한가람 · 조혜인 변호사다. 어느 모임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 우리 생각이 비슷하네? 한번 만들어볼까?”로 시작된 것이 바로 ‘희망법’이다.

“한가람 변호사가 실행력이 워낙 강해요. 어느새 그 말을 실천하고 있었어요. 사무실에 제 책상도 생기고. ‘그냥 해본 말’이라고 하기엔 이미 늦었더라고요.”

그렇게 2012년 2월 시작된 ‘희망법’은 이주와 난민, 장애, 성소수자, 기업과 인권 등의 이슈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서선영 변호사가 맡고 있는 분야는 ‘기업과 인권’이다. 이미 다른 공익변호사모임에서도 하고 있지만 보통 다국적기업의 해외인권침해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희망법은 국내 기업문화, 기업 내 노동자 감시 문제 등에 관여하고 있다.

   
▲ 서선영 변호사는 “당장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법에 항의하는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희망법 동료들과 민변 노동위원회가 주최한 ‘집회 통제를 위한 화단 설치의 위법성 규탄 및 집회의 자유 회복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서선영 변호사(맨 오른쪽) (사진 제공 / 희망을 만드는 법)

사건의 소송적용보다 중요한 것, ‘현장’의 불법을 항의하고 막는 일

서선영 변호사는 “요즘은 국가의 인권침해 못지않게 자본이 자행하는 인권문제가 많아져, ‘기업과 인권’이라는 이슈를 통해 나머지 반쪽 인권을 다룬다”고 설명하면서, “그러려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니, 기업 후원도 받을 수 없다”며 웃었다.

그는 비정규직 사망사고 실태조사, 새로운 노동자 통제전략 대응책 마련, 반도체 노동자 산재사망사고 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민변 시절부터 접했던 집회시위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집시법은 모든 인권 문제와 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 변호사는 마음이 바빠 보였다. ‘기업과 인권’ 팀이라고 하지만, 팀원은 2명. 연대해야 할 단체도 점점 많아진다. 그는 올해까지는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제는 연대의 폭도 넓히고, 본격적으로 국회 입법 활동에 참여하고 관련 자료를 발간하며 점차 체계를 잡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장’ 이야기를 하면서 서선영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모든 문제를 소송이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조를 바꾸려면 법이 현장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사건이 벌어진 후 사라진 현장을 두고 소송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무력한 방법이라고 했다.

“재판, 소송적용이 중요하죠. 하지만 입법과 현장에서 법이 어떻게 쓰이는가도 중요합니다. 일례로 어떻게 하면 집시법을 가장 잘 악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현장이 대한문이에요. 이럴 때, 재판 이전에 현장에서 함께 항의하고, 악의적으로 쓰이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법을 어겼다고 항의하는데, ‘나중에 재판해라’ 하는 말이 가장 무력하게 느껴져요. 재판은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그때 이미 그 현장은 사라지거든요.”

   
▲ 법을 통한 인권의 구현과 연대. 그것이 서선영 변호사가 ‘희망을 만드는 방법’이다. ⓒ정현진 기자

희망을 만드는 방법은 ‘연대’

‘희망을 만드는 법’. 이름에는 대체로 ‘원의(原意)’를 담기 마련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다면, 희망을 만드는 법이란 역설적으로 지금은 법이 희망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일까?

이름을 누가 지었느냐고 물었더니, 마침 서선영 변호사란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원래는 희망을 만드는 법(law)보다는 ‘희망을 만드는 방법’에 더 중심을 둔 중의적인 이름”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들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파산면책 전문이냐고도 하고요. 어떤 분은 희망법이 듣기에 좋지만, 법을 희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저 역시 동의합니다.”

어떤 ‘희망’이냐고 묻자, 서선영 변호사는 ‘희망버스’를 통해 봤던 희망이라고 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평범한 이들의 자발적이고 거대한 연대다. 비록 법을 통해 나쁜 일들이 일어나고, 법이 절망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안에 숨어있는 인권을 구현하고, 그 과정에서 끝없이 연대하는 것이 서선영 변호사와 그의 동료들이 일구고자 하는 ‘희망’이다.

“우리가 잘 하면, 후원 많이 받을 수 있을 거야”
우리 너무 낭만적인가요?

앞서 말했듯, 시쳇말로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함을 넘어 걱정이 됐다. ‘독립적’을 표방하는 바람에, 기업이나 정부 후원도 받을 수 없고, 구조상 세제 혜택도 없다. 지금도 매달 500만 원 씩 적자 살림이다. 첫 해에는 일시 후원금도 들어왔고, 로스쿨, 연수원 동기들이 기금을 모아주고 있지만, 곧 심각한 상황이 닥칠 것이라며 걱정이 많다.

“누군가는 너무 낭만적인 거 아니냐, 또 누군가는 너무 나이브하다고 말했어요. 처음엔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원금도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맞는 생각일까요? 동료 변호사는 후원을 청하면서 ‘내년엔 후원하고 싶어도 못할 지도 모른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해요. 힘들지만, 애초부터 소액 후원을 기반으로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해 봐야죠.”

현실적 기반이 마련되면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쉴 틈 없이 쏟아진다. 적극적인 공익소송 참여, 연구, 자료 번역과 출판, 법률 교육과 교재 개발……. 그러면서 말했다. “아직 우리의 현실은 절망스럽지만, 그래도 잘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진심으로 잘 될 거라고 대답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같이 하는 것”이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러니 적어도 홀로 절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연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지금, 이미 희망을 만들고 있으니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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