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조대웅]

나의 어릴 적 꿈은 신부님이었다. 6살의 나이에 혼자 찾아간 성당에서 신부님을 처음 뵈었고 그날 이후 내 머릿속엔 오로지 신부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외아들에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사제가 되면 돈이 많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며,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아도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하느님께 내가 당신의 제자가 되어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똑똑한 선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거래를 하듯이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쉽게 끝날 줄 알았던 나의 꿈은 사춘기를 지나 고3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물론 그 사이에 다른 꿈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때마다 난 신부님이 될 거야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에게 신학교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순간 난 원망이 들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꿈을 가지지 않게 하시지 이제 와서 소심하게 복수를 하시나 하는 생각 등 만감이 교차하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신부님이 꿈이 아니었더라면 그 지난날들을 어린 나이에 이겨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느님은 집안에 소홀했던 아버지 대신 신부님을, 일하시느라 바쁘셨던 어머니 대신 수녀님을, 형제가 없는 나에게 성당 친구들을 주셨다.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나보다 더 힘든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날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박홍기

그리고 그렇게 버틸 힘을 주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제자로 쓰기보다는 나에게 다른 소명을 주셨던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한 나는 나에게 왜 또 시련을 주실까 생각하고, 유복한 가정도 안 주시더니 제자로도 받아 주시지 않는구나 하며 방황을 하며, 냉담 아닌 냉담을 했다. 입으로는 신자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주일 미사를 지키지 않고, 어린 시절 하느님이 가르쳐주셨던 삶보다는 본능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이 마음 편했던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한 번 하느님을 온전히 찾기에는 용기가 따라주지 않았다. 혹시나 다시 찾아뵌다고 해도 이런 나를 미워하실 게 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는 동생이 나에게 피정을 추천하였고, 나는 이게 하느님께서 내밀어주시는 손이라 생각하고 덥석 잡았다. 그렇게 다시금 잡은 나의 손을 하느님께서는 잡아끄시어 본인의 품에 나를 한 번 더 안으시고는 토닥토닥 내 등을 어루만져 주셨다. 어릴 때 내 발로 찾아가서 선택했다고 생각하였는데, 사실 하느님께서 힘들어하는 나를 본인의 품으로 부르시어 온갖 바람과 비를 피하게 해주셨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간호사로서 아픈 사람을 돌보아 주고, 교회 안에서는 글로써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선택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끝으로 제가 두 가지 믿고 사는 말이 있는데 첫째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이고, 두 번째는 “하느님은 우리가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 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아픔을 드려도 사랑을 주시고, 사랑을 드리면 몇 배로 돌려주시는 하느님께 온 마음 다해 감사드리며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길 기도한다.
 

 
 

조대웅 (요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남자간호사로 일한다. 직업적 이미지와 달리 농구, 축구, 야구 등 거친 운동을 즐긴다. 술잔에 담긴 술보다는 마주 앉은 사람의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하며,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과 또 다른 만남의 장을 여는 소통으로 글을 쓰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려고 노력하는 보통 청년이다.

* 이번 회로 조대웅 님의 ‘레알청춘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간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청년 신자로서의 고민과 생활 이야기를 담은 글을 보내 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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