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온화한 일상>, 우치다 노부테루 감독, 2012년작

▲ <온화한 일상(おだやかな日常)>, 우치다 노부테루 감독, 2012년작
후쿠시마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고 원자로가 ‘녹아내렸다’. 모든 방사능 물질이 땅과 하늘을 뒤덮고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 2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2013년 9월 6일에서야 각종 포털에 ‘정부, 후쿠시마 주변 8개현 수산물 전면 수입 금지’라는 기사가 떴다. 그동안은 후쿠시마를 포함해 ‘8개현’조차 그 어떤 수입 제한 조치가 없었다는 뜻이겠다. 사고 후 2년 반이 지났고, 지리적으로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대한민국에서는 2년 반 동안 일본 수입산을 비롯한 각종 수산물을 그대로 유통시켜 먹고 소진시켜왔다는 얘기다.

<온화한 일상(おだやかな日常, 2012년 작품)>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지난주 광명YMCA 생협에서 조합원인 ‘촛불’들을 위해 상영한 일종의 공동체 상영 방식이었다. 보는 동안에도 충격이었지만, 영화의 잔상이 남아있는 채로 우리의 ‘마트’와 ‘언론’을 지켜보는 것은 현기증이 나는 일이다. 그동안 ‘먹은 것들’의 목록을 헤아리다가 결국 구토가 일어날 것만 같은데, 그마저도 2년이 넘게 유지해온 ‘일상’인 것이다.

“우리는 절대 안전하다”는 늘 똑같은 정부 지침

영화는 지극히 평온한 일본 도심의 ‘일상’을 다룸으로써 보는 이를 경악시켰다. ‘마스크’ 하나를 쓰는 것에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다. 모두 ‘정부 지침’만 하느님 말씀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여진 때문에 집이 흔들리고 전기도 깜박거리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서 TV와 라디오를 켠 채 ‘뉴스’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뉴스는 오로지 정부 지침만 앵무새처럼 무한 반복한다. “우리는 안전하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정부는 최선을 다해 사태 수습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후 발표를 기다려 주십시오.”

유치원 아이를 둔 학부모 중에도 정부를 믿는 쪽과 아무것도 믿지 않는 쪽의 태도는 다르다. 사실 속으로는 모두 불안하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마스크 하나 쓰는 일도 거의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스크를 써서 다른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드니 정신병원이나 가라면서 온 동네의 욕을 먹는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나눠 준 동네 아주머니는 경찰이 ‘불순분자’, ‘유치원 무단침입’으로 잡아가는 상황이었다.

정부기관이나 건설 쪽 일을 하는 사람의 가족은 앞장서서 “불안을 가중시키지 말자. 지금은 극복할 때”라면서 주변을 선동했다. 급식을 걱정하는 학부모에게 유치원 선생님은 “저희는 정부 지침이 있기 전까지는, 안전하다고 믿고 급식에 넣어야 합니다”라면서 뉴스에 오른 ‘시금치’만 제외하면 괜찮을 거라고 덧붙인다.

“실의에 빠진 후쿠시마 농어민들을” 생각해서라도 ‘국산품’ 애용하기, “국민통합”을 위해 마트에 수입 수산물 금지하고 국산만 입점, 마스크 쓰지 않기, “지금은 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는 한 목표에 매진하기, 국민이 한 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이때 ‘혼자서만 튀는’ 행동은 이기적이니 단호히 응징하기……. 다 어디서 많이 듣던 구호들이다.

▲ “마스크 하나 쓰는 일도 거의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스크를 써서 다른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드니 정신병원이나 가라면서 온 동네의 욕을 먹는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나눠 준 동네 아주머니는 경찰이 ‘불순분자’, ‘유치원 무단침입’으로 잡아가는 상황이었다.”

안전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

실은 등장인물 모두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부를 믿건 믿지 않건, 모두 점점 미쳐간다. 평범했던 일상은 모두 파괴되었다. 내가 숨 쉬는 공기며 물이며 모든 음식이 다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의심되는 상황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피해가 어린이들일수록 특히 심하며 50년 후 100년 후에나 후유증과 기형이 나타날 수 있다는데, 살아있는 존재로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데, 불안해 하지조차 말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까지 “괜히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피해지역 주민들을 “차별하는 것”이니 아무 군말 말고 다 사먹어 줘야 한단다. 정부의 지침을 믿으라는 강요다. 주인공 중 하나인 유카코는 묻는다. “대체 안전이라는 게 뭐죠? 기준이 달라지면 안전도 달라지는 건가요?”

우치다 노부테루 감독은 3 · 11 대지진 후 일본 사회가 드러낸 이상한 침묵과 ‘평온에의 강요’, 이로 인한 갈등을 깊이 파고든다. 영화는 제목처럼 좀처럼 온화함을 잃지 않는 등장인물들이 놀라운 자제력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끝난다. 그러나 관객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저 대사들도, 상황들도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많이 보던, 익숙한 상황들이 그 기시감 때문에 숨 막힌다. 살아있다는 건 뭘까. 그 사회의 성원들이 순간순간 죽어가고 있다는 공포에 숨통이 조여 가는 데도, 정부의 안전하다는 보도지침만 들려오는 사회가 살아 있는 게 맞는 걸까?

이 영화에 제작비를 댄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비밀이라고 한다. 일본 사회 내에서 매장될 것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출연한 배우들도 모두 불이익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그런 큰 일이 있었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하게 행동하는” 일본 사회와 사람들이 이상해서 만든 영화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원전 사고 발생후보국 1위이다. 밀집도와 노후도에서 그렇다고 한다. 이미 사고들은 크고 작게 터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안전하다’고 신속히 조기 수습에 나선다. 학교 급식에 이미 2,230여 킬로그램의 일본 수산물이 조달되었다고 한다. 2년 반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을까. 안전의 기준이나 마련돼 있는 걸까. ‘온화한 일상’을 위한 대책은, (언제나 그랬듯이)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해야 하는가?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