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의 마을 취화당]
자전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것에 대한 정보를 잘 수집하고 전문교육을 받기도 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서를 열심히 읽습니까? 종교인이라면 자기 종교의 경전에 대한 마니아가 되어야 하겠지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묵상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단 말이지요.

저는 신학생 때 성서 묵상을 많이 한 편이었습니다. 사제가 되고부터 날이 밝고 시간이 되면 강론을 하고 청탁받은 원고를 보내는 생활을 했습니다. 강론 준비와 집필을 할 때면 성경을 곁에 놓고 뒤지게 됩니다.
그런데 글이나 강론에서 성서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는 것은 내 생각이 성서적 입장과 같은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고, 성서적 권위를 인정받고 싶은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던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을 때에(10년도 넘었지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 주님, 제가 당신 제자라는 것을 당신이 아십니다”하고 대답했어요.
대답한 순간 ‘내가 신부로서 말씀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할 사람이지, 성경이 내 강론과 원고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까지 성경을 내 생각의 권위를 위한 댓글이나 추임새용 어록으로 대하지 않았었던가? 하는 각성이 왔었어요.
성경 말씀 때문에 내 생각을 버리고 바꾸고 고쳐먹어야 믿음 생활일 건데, 저는 내 생각과 표현의 정당성을 위해서 여기저기 성경을 뒤져 골라서 인용했던 것입니다.
막말로 하면 성경을 내 사목직에 활용하는 직업적 습성으로 살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신자들에게 자신이 옳다는 아집을 버리고 복음을 따르라고 복음 전문가처럼 열을 냈는데 더러는 윽박지르는 수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 신자나 독자들은 박 신부가 성서적 신념을 가졌다고 생각해 준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거, 내가 진짜 신부 맞는가?” 자성하니 참 부끄러웠습니다.
복음이 내 생각을 바꾸게 하고 판단의 지침이 되었으면 충분하지, 굳이 인용을 제시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둡니다. 후학을 가르치는 신학자들이야 학생들의 공부를 위해서 필요하겠지만 저는 뭐 아닙니다.
그 후로는 강론과 집필에 성경 말씀 범벅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지요. 이제 경전의 말씀과 전승, 십자고상, 성화상, 성사적 상징들을 모두 스승으로 모시고 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국가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일어난 전쟁과 집단처형, 자살, 부정부패, 정치적 음모, 배신과 이혼, 사기행위들은 성경 말씀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겠습니까?
이기적인 어떤 결정임이 분명한데도 성서 구절을 잘 인용하면 합법적 권위가 될 수 있을까요? 턱도 없는 소리지요.
그런 건 다 초심자 때의 일로 생각하고 이제부터는 -
누군가를 위한 나의 희생, 헌신, 겸허, 섬김, 즉 사랑과 순명과 자비심, 기도하고 노동하고 함께 공유하고 배려하는 정직한 태도와 결정이 나에게서 나온다면 그것은 굳이 성경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없이 실천하면 된다. 성경의 어떤 말씀이 내 행위에 합당한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어딘가에는 있다. 들은 적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일 뿐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내 양심에 걸리는 일은 예수님이 반대하신다. 성경 어딘가에서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비우고 주님의 뜻을 담고 내 생각과 판단과 행위를 공동체 영성의 눈으로 보고 결정해야겠다.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성서를 인용하지 않는다 해도 성서를 묵상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물론 아니 됩니다.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