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칼럼-안은초]

제가 저희 학교에서 가장 처음 들어간 동아리는 ‘작은 짜이 집’이라는 봉사 동아리입니다. 기부금을 받고 짜이(인도 차)를 대접하거나,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짜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중 제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 중 하나는 직접 독거노인 분들의 집을 방문하는 말벗 봉사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두 번 말벗 봉사를 해 보았는데, 그 두 번 중 제 기억 속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선배인 상규 오빠와 함께 찾아간 한 할머니의 집이었습니다. 저희 작은 짜이 집에서 찾아가는 독거노인 분들의 집은 산청에 ‘인애 복지센터’에 계신 분들이 연대를 맺어 데려다 주시는데, 우리가 갈 할머니네 집에는 인상 좋으신 남자 분께서 안내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 할머니 귀가 좀 어두우십니다. 큰 소리로 말해도 잘 못 들으셔서 당신 말만 자꾸 반복하고, 하던 이야기 또 하고 그러실 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매우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말벗을 해야 하는데 할머니께서 귀가 어두우시다니……, 저는 당황스러움 반, 그래도 기대되는 설렘 반으로 할머니 집으로 향했습니다. 할머니네로 가는 차는 어느 작은 밭이 있는 집에 멈추어, 저와 오빠를 내려준 후 사라졌습니다.

“할머니. 계세요? 간디학교에서 찾아왔어요.”
“어이고! 잘 왔습니다, 잘 왔습니다.”


연신 ‘잘 왔습니다’하며 존칭을 사용하시는 할머니께 가지고 온 롤 케이크를 건네드리자, 할머니는 함께 먹자며 접시와 포크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전에 갔던 봉사에서는 케이크를 받으신 할머니께서 내가 사는 지방을 물어보시며 “아! 이게 바로 강원도 떡인갑네?”하셔서 크게 웃었던 기억이 슬그머니 올라왔습니다.

“할머니! 저희는 산청 간디 고등학교에서 왔고요, 제 이름은 강상규입니다!”
“뭐라고요?”
“강상규요, 할머니!”
“뭐요?”


상규 오빠가 일부러 큰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였지만, 귀가 어둡다던 이야기가 사실인지 할머니께선 “허허, 난 몰라” 하시며 자꾸 같은 말씀만 되풀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다 말이 서로 맞더라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또 되돌아가 반복되니 말벗이 되어드리고 싶었던 저와 오빠는 서로 난감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난감함이 극에 달해있을 무렵, 저는 갑자기 짜이 집 선배 언니의 경험담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말이야, 할머니랑 너무 할 게 없어서 너무 어색했는데, 마침 할머니 집에 화투가 있더라고! 할머니도 좋아하셔서 같이 화투를 쳤는데, 할머니께서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꾸중도 하시면서 재미있었어.”

화투! 더 어렸을 때는 단순히 그림을 맞추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저런 게 왜 재미있지? 하며 의아함을 가지게 했던 빨간 카드! 사실 어린 학생이 어르신께 그런 것을 권하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닐까 한참 고민했지만, 그래도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할머니, 화투칠까요?”
“네? 뭐요?”
“화투요! 혹시 집에 화투 있으세요?”
“아! 화투요? 집에 가지고 올까요? 집에 있을거구먼……,”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얼마 되지 않아 화투가 들어있는 작은 보자기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화투로 할 수 있는 것은 맞고, 고스톱, 섯다 정도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했던 저는 아무 생각 없이 할머니께서 패를 나누어 주실 때까지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상들이 민화투를 칠 줄 알랑가 모르겄네……,”
“네? 뭐라고요?”
“민화투 칠 줄 알아요? 나는 그것 말고는 몰라.”


민화투?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일반 고스톱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였고, 화투는 생 초보라는 상규 오빠에 말에 힘입어 저는 민화투에 세계로 뛰어들기로 하였습니다.

“이상하구먼! 왜 계속 껍다구만 먹어요?”
“네?”


껍데기? 확실히 저는 꾸준히 모으기 위해 띠나 동물보다는 피를 많이 먹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할머니께서 말하는 껍데기의 의미가 그것인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피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의아하게 느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의 그 짧은 생각은 할머니께서 점수를 합산하실 때가 되고 나서야 고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에, 그러니까……, 이게 10점이고……,”

할머니는 이상하게도 피는 하나도 세지 않으시고 띠와, 동물, 광만 점수에 넣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할머니께서 화투 치시는 법을 모르시나? 또는 나중에 따로 세시려나?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알고 보니 민화투에서 피란 아무 점수도 주지 않는 무의미한 것!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껍데기’는 바로 피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저는 속았다며 발버둥을 쳐댔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저와 상규 오빠, 그리고 할머니는 봉사 시간이 끝나갈 무렵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민화투를 쳤습니다.(사실 멈추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데, 계속되는 화투에 지친 상규 오빠가 계속 화제를 돌려보려 하였으나, 민화투에 푹 빠지신 할머니께서는 아무 말도 듣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패를 돌리셨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의 기억은 화투를 치던 기억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함께 롤 케잌을 먹기도 하고, 할머니께서 심심할 때 드시곤 했다던 사탕도 나누어 먹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며 잠시나마 옛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고, 그러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 난감하기도 하였습니다.

늘 혼자서 지내셔서 심심하시다는 할머니. 봉사를 한답시고 찾아간 우리가 어쩌면 거만했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할머니께 봉사를 한 것일까요? 저는 왠지 ‘독거노인 분들을 위한 봉사’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를 심심하지 않게 해 드리겠다고 간 것이었지만, 오히려 얻고, 배운 것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 생에 처음으로 존재 가치부터 배우게 된 민화투는 학교 동아리에서 자청하여 말벗을 가겠다고 찾아간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로 부터였습니다. 민화투를 열심히 치시면서 어린 학생들의 사소한 농담에도 진심 어리게 웃어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다음에도 또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도록 하였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다면 아마도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화투를 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고스톱이 아니라, 민화투를 제대로 배워 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런 때가 오게 된다면, 절대로 껍데기는 먹지 않을 것이라 마음 속으로 단단히 다짐하고서 혼자서 슬그머니 웃습니다.

안은초/ 17살 아웃사이더. 몇몇 대안학교와 홈 스쿨을 하다가, 올해 간디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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