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이야기-안은초]

저희 부모님께선 그룹 홈 운영을 하시면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그 아이들과 함께 자라면서 여러 경험과 나름대로의 신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희 집을 좋아하지만, 바쁘신 저희 부모님께서 이 이상에 일을 더 만드심으로서 더 힘들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특히 저희 아버지의 경우에는 워낙에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도맡아 하시기 때문에 제발 더 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 그런 제 맘을 하시는지 모르시는지 또 일을 벌이시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끝내지 않으시고 외국까지 발을 넓혀 머나먼 나라 네팔까지. 이게 어찌된 일이고 하니, 저희 부모님께서 한국에서 일했던 네팔 외국인 노동자 부부가 네팔에도 그룹 홈을 만들고 싶다고 찾아와 그들의 그룹 홈과 ‘한국 네팔 사회복지 연대’줄여서 ‘한네연’이라 이름 지은 연대를 맺어버린 것입니다. 한국에서 후원자들을 모집해 네팔 그룹 홈에 보내주는 식으로 말입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네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랬기에 부모님께서 그 말씀을 전하셨을 땐 꽤나 놀라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분명 좋은 일이었기에 우리 그룹 홈 가족들과 함께 적은 돈이지만 후원을 하였고, 후원자분들은 조금씩 늘어나 네팔에 아이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후원자중 한 명이었지만 그냥 좋은 일이라는 생각과 약간의 의무감으로 돈을 냈을 뿐, 그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나 사랑 같은 것들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돈을 내고 싶었지만, 역시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이란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 사진출처/한네연 카페

그런데 제가 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네팔 그룹 홈 아이들도 만나고, 네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기 위해 저희 부모님과 한네연 대표 식구들과 함께 네팔에 방문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머릿속 네팔의 이미지는 깨끗한 자연과 산이 많은 평화로운 나라였습니다. 아마 네팔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 네팔에서 가장 유명한 에베레스트 산만을 생각하며 멋대로 단정지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네팔은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희가 묵었던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첫인상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교통이 어지러웠으며, 먼지가 많아 기관지가 안 좋은 사람들은 괴로울지도 모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나는 네팔 풍경에 신기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반반씩 엉켜 복잡한 심정으로 아이들이 사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눈살을 찌푸릴 수 있는 지저분한 물이 흘러 약간의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공터가 있고 집들이 모여 있어 제법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대문이 없고 검은 개 한 마리가 짖어대는 집 앞에 들어서자, 그곳이 아이들의 집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고, 네팔 이모께서 조심스레 문을 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 앞에 서서 조금씩 열리는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열린 문틈 사이로 기분 좋은 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문 앞에 일렬로 서 한국에서 찾아온 손님들에게 일제히 환영의 인사를 건넨 것입니다. 네팔의 인사말 ‘나마스테’라고 말입니다.

처음으로 만난 아이들은 천사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예뻤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함께 살 수 없어 떨어져 사는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예쁘게 웃었습니다. 환영의 표시로 들판에서 꺽은 꽃을 손에 조심히 건네는 아이들의 모습은 후원을 좀 더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가장 어린 사가르와 앨리사를 포함해 애스더, 선재, 순일, 비끄람, 라츠쿠멀과 지금은 엄마와 함께 홈을 나간 뽀리. 새로 들어온 수니따와 가네쉬까지 너무 예쁘고 순수한 아이들이 반겨주는 네팔에 있던 열흘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이 너무나 기뻤고, 우리가 가르쳐주는 여러 한국의 문화를 즐겁게 배우는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공부방을 꾸미며 그림을 그릴 때는 천연 페인트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어지럽고 팔이 아팠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없던 기운도 솟아났습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과자를 정말 맛있게 먹어주었고, 무엇을 하든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저희는 그런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느꼈고, 이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네팔 생활 중 아이들과 함께 네팔에서 가장 크다는 유원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가장 크다는 그 유원지에 있는 것은 놀이기구 3개와 한국보다 훨씬 적은 동물들. 그 놀이기구마저 철판으로 만들어 허술한 감이 없지 않아 보이는 작은 놀이기구였습니다. 그런 곳이라도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해 주었지만, 저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롯데월드, 에버랜드, 서울랜드 같은 큰 놀이공원을 여느 아이들의 몇 배로 많이 갔지만, 이 아이들만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는데, 반성이 되더군요, 이 아이들에게 더 넓고 행복한 세상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온 한국에서 저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네팔에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빠. 내가 그 아이들이라면 후원자들이 돈을 모아 생활비를 전해주는 것도 감사하겠지만, 아이였을 때 즐거웠던 추억을 선물하는 것을 더 좋아할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서는 다 한국에 초대하고 싶을 정도예요.”

어른들이 생각하기엔 조금 철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저는 제가 어릴 적 부모님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추억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팔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무심코 던진 말에 행동력 좋으신 우리 아버지는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를 하심과 동시에 제게 모금을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아는 지인들과 그 지인들의 소개를 통해 직접 찾아가는 모금 순례. 갑작스런 말씀에 놀라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작은 기쁨에 덥석 아버지 말씀에 동의를 해 버렸습니다.

덕분에 저는 2009년 초부터 ‘비행기 값 천만 원 모으기 프로젝트’의 행동대장이 되어 여기저기 모금활동을 다니며 돈을 모았습니다. 우리 학교와 오빠네 학교 축제에 모금 통을 놓고 앉아있기도 해보고, 남의 학교 입학식에 찾아가 뻔뻔한 얼굴로 학부모님들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아는 이모께서 선생을 맡고 계시는 학교 방송을 통해 후원을 부탁드리기도 하고, 네팔 사람들의 모임에 찾아가 부탁도 했습니다.

그렇게 2010년 말이 되어가자, 돈이 꽤 모여 11월 20일 즈음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예상 계획을 짤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돈이 많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을 전부 다 데려올 수는 없어 큰 아이들 몇 명만 데려오기로 했는데, 큰 아이들만 해도 수가 많아 지금 모은 돈으로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힘든 일에 부딪쳤을 때 그 추억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어린애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철없는 생각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철없는 제 생각이 아마 철 든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는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네팔 아이들에게 철없는 초대장을 보내려 합니다. 초대장만은 저 혼자도 충분히 보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예쁜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해 주실 분들은 저를 조금만 도와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은 돈이라도 저희 아이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천사 같은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시고자 하시는 분은 꼭 저희를 도와주세요. (문의: 한국 네팔 사회복지 연대 http://cafe.daum.net/nekosol/ )

안은초/ 16살 아웃사이더. 몇몇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지금은 홈 스쿨을 하고 있어요. 주로 영월에 살면서 가끔 서울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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