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안은초]

부모님이 운영하는 그룹 홈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저는 태어나 쭉 그 그룹 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수가 되어버린 지금도 그룹 홈에 같이 사는 언니, 오빠들과 함께 왁자지껄 지내다 보면 심심한 날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순진하고 마냥 귀여운 오빠들, 센스 있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언니들과 함께 16년을 보내면서 이런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고, 집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진심으로 즐겁습니다.

그때 너무 어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기껏해야 기억이 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집의 추억은 유치원 시절 정도…… 그 마저도 굉장히 흐릿흐릿한 기억입니다. 하지만 가장 걱정 없이 행복했던 기억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살고 계시던 서울에 있는 그룹 홈에서 살면서 막내란 이유로 온갖 응석을 부려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는 것과,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함께 지내는 우리 그룹 홈 언니, 오빠들을 친척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두 이유가 있었습니다. 함께 살던 언니들도 분명 얄미운 감이 있던 어린 저를 마냥 예뻐해 주었고, 저는 그것을 당연한 듯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새삼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가족상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같은 반이 된 남자아이에 의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아는 스님과 절에서 함께 살던 남자아이의 순진하고 순수한 질문이 화근이었습니다.

“너희 집 고아원이라며?”
“응? 고아원 아닌데? 다 친척들이야.”
“이상하다…… 우리 스님이 고아원이라 그랬는데……”

우리 집이 그룹 홈이라는 것도 몰라서, 아버지 직업란에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몰라서, 저는 우리 집 언니, 오빠들이 친척이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아이가 잘 몰라서 그랬을 뿐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린 마음에 들어오는 약간의 의문…… 초등학교 1학년 안은초는 온 가족이 즐겁게 밥 먹는 시간, 눈치 없는 질문을 하고 말았습니다.

“오빠. 우리 집 고아원이야?”

떠들썩한 식사 시간에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정적의 중심에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잘못을 몰라 멀뚱멀뚱 눈만 껌벅이고 있었습니다.

그 일은 곧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있던 진짜 친척언니가 숟가락으로 머리를 가볍게 때리는 것으로 무마되었지만, 저는 내가 왜 맞았을까 하는 의문만 가득할 뿐, 제 말로 인해 상처받았을 언니, 오빠들의 마음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어렸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품게 되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저는 어른이 되기 위한 상식을 조금씩 배워나갔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우리 집이 그룹 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니, 오빠들은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사실에 충격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저의 생활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연스러운 생활 중 상처를 배웠습니다. 언니, 오빠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나와, 세상에 눈으로 바라보는 그룹 홈 가족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타인은 언제나 자신과 다르고, 맞지 않는 부분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로 인해 서로에게 새겨지는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 상처를 해석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언니, 오빠들의 눈에 비춰지는 저는 아마 부모님이 있어 행복한, 편하게 공주대접을 받는 재수 없는 아이. 세상의 눈에 비춰지는 우리 그룹 홈 가족들은 ‘가족’이 아닌 그냥 고아원. 조금 다를 뿐인 가족 구성원이 틀린 것이라도 된 듯 숨겨야 할 것 같은 강박감 같은 것들, 사람들이 보는 고아에 대한 시선…… 구구 절절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저희 가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우리 집 가족들도 저를 사랑하고 있지만,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는 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남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는 법이니까요. 아마 그것 역시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자연스럽게 여러 요소들을 통해 배우면서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할 능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서로의 상처에 공통점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공통점은 둘 다 환경적인 요소 때문에 다소 다른 이들에 비해 자유가 한정적이고, 서로의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좋아하고 고마워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이런 그룹 홈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곳에서 살게 돼서 최악이야.’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배려해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결국 타인의 아픔은 자신의 아픔과 매우 근접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엉켜 한 형태를 이루게 될 때, 서로를 이해 한 것과 이해하지 못한 결과물은 확연히 차이가 나게 되어있습니다. 저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이라 생각하게 될 때, 비로소 그 사람이 바로 보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은초/ 16살 아웃사이더. 몇몇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지금은 홈 스쿨을 하고 있어요. 주로 영월에 살면서 가끔 서울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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