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 이행 단계의 구조적 결실, "평신도는 보조자 아닌 선교의 공동 책임자"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사제가 전담해 오던 주교회의 전국위원회 핵심 실무 자리에 평신도가 임명됐다. 그 주인공은 지난 3월 13일 제76차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정기 회의에서 새 총무를 맡게 된 대구가톨릭대학교 유혜숙(안나) 교수다.

여성 평신도 신학자인 유 교수의 이번 임명은 한 개인의 성취나 직책 변화를 넘어선다. 2028년 세계 총회를 향해 나아가는 '시노드 이행 단계'에서 한국 교회가 보여 준 '구조적이고 실천적인 쇄신'의 사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유혜숙 신임 총무가 지난 3월 13일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회의 이후 가톨릭뉴스지금여기와 인터뷰하고 있다. ⓒ경동현 기자<br>
3월 13일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유혜숙 신임 총무가 회의 이후 인터뷰하고 있다. ⓒ경동현 기자

'시노드 이행'의 제도적 첫걸음… 정관 개정으로 열린 평신도 총무 시대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문헌은 이행 단계의 주요 과제로 '성품성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책임자 자리와 리더십 역할을 평신도나 비수품 남녀가 실제로 맡도록 허용하는 일'(최종 문헌 60항)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러한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 이행 단계의 지향을 한국 교회 구조 안에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2025년 추계 주교회의에서 전국위원회 준칙 개정을 이끌어 냈다. 기존 규정에는 총무 임명 대상에 구체적 명시가 없어 관행적으로 사제나 수도자가 맡아 왔다. 하지만 준칙 제5조를 개정해 "총무는 위원장 주교의 추천과 소속 직권자(사제와 평신도는 소속 교구장, 수도자는 소속 장상)의 동의를 받아"라는 문구를 명시함으로써, 평신도 총무 임명을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주교회의 정관 제30조와 제34조 참조)

지난해 10월 열린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에서 유혜숙 위원이 총무 추천을 받았고, 위원장 장신호 주교를 포함해 위원들이 동의하면서 이번 임명이 실현됐다.

유 신임 총무는 "전국위원회 총무에 평신도가 임명된 것은 단순한 인사 변화가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 다양한 구성원의 공동 책임 안에서 수행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제도적 전환의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보조자에서 '공동 책임자'로… 풍요로운 교회는 '공동 식별'에서 나와

유혜숙 신임 총무는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산하 소공동체소위원회 총무로 9년간 헌신하며 '하느님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친교의 교회상'을 고민해 왔다.

그는 과거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여성 평신도로서 목소리를 내는 데 조심스러운 시간도 있었으나, 성직자 중심의 사목을 넘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모두 함께 참여하는 공동 식별 과정이 교회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현장에서 뼈저리게 체험해 왔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존하는 공동체보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논의하고 식별하며 책임을 나누는 공동체가 훨씬 더 풍요롭습니다."

유 교수는 평신도의 경험과 신앙 감각이 의사 결정에 통합되기 위해서는 '경청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첫 평신도 총무로서 새로운 권한을 행사하기보다는, 사제·수도자·평신도가 동등하게 협력하고 식별하는 공동 사명 수행의 모델을 실천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상과 소통하는 여성 리더십, '일상의 시노달리타스' 향해

대구가톨릭대에서 생명 윤리와 성 윤리 등 교양 과목을 담당하며 한 학기에 1300-1600명 학생을 가르치는 유 교수는 '신학의 대중화'에도 앞장서 왔다.

그는 비신자 학생들에게 교회 교리를 주입하기보다 인류 보편의 윤리적 가치로 접근하여 복음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여 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접근은 "평신도가 일상 안에서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선교"라는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유 교수는 여성의 교회 내 참여 확대에 대해서도 "역할의 수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자기 이해와 깊이 연결된 문제"라며, 여성의 은사가 온전히 발휘될 수 있는 구조적 기회와 사목적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27 서울 WYD 향한 영성 운동: '전 신자 성구 갖기 운동'

유 신임 총무는 장신호 주교를 보좌해 가장 먼저 주력할 실천 과제로 '천주교 신자 성구 갖기 운동'을 꼽았다. 이 운동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한국 교회의 내적 쇄신과 복음화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와 협력해 추진할 예정이다.

사제나 수도자가 서품·서원 성구를 가지듯, 모든 평신도도 자신만의 성경 구절을 선택해 정체성을 다지고 일상 속에서 복음을 생활화하자는 취지다.

유 교수는 "이 운동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신자들이 일상에서 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삶에 적용하는 '복음의 생활화'로 이어져야 한다"며, 이를 통해 평신도들의 선교적 정체성이 깨어나길 기대했다.

그에 따르면, 전 신자 성구 갖기 운동은 다가오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기점으로 본격 시작된다.

끝으로 유 교수는 시노드 이행 단계를 걷는 한국 교회의 궁극적 지향점을 '선교하는 제자'들의 공동체로 꼽았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경청하고 식별하며 사명을 수행할 때,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 은사를 서로 존중하며 함께 걸어가는 '선교하는 시노드 교회'로 성장하는 여정에 작은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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