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미쓰 홍’, 박선호, 나지현 연출, 문현경 극본, 2026

‘언더커버 미쓰홍’ 포스터. (출처 = tvN)<br>
‘언더커버 미쓰홍’ 포스터. (출처 = tvN)

드라마 IMF를 소환하다

아마 내년에는 IMF 외환 위기 30년을 맞아 많은 이야기가 오갈 텐데, 경제가 잘 굴러가면 IMF를 잘 이겨 내 여기까지 왔다고 할 것이고, 경제가 힘들어지면 IMF 상황을 빗댄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최근 IMF 시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두 편이 나왔다. 하나는 작년 말 방영한 ‘태풍상사’로, IMF 시기에 고군분투하는 상사맨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당시 서울 사람 말투, 유행했던 음악, 머리와 옷 모습 등 1990년대의 향수를 부르기도 했다. 다소 과장된 활극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위기의 시대를 잘 이겨 냈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반면 또 하나는 오늘 주로 이야기할 ‘언터커버 미쓰홍’이다. ‘레트로 오피스 코미디’라고 하지만 한 비리 증권사를 둘러싼 음모를 내세우며 첫 회부터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이름은 ‘홍금보’. 한때 홍콩 영화가 대세였던 시절 엄청난 인기를 누린 배우 이름도 홍금보다. 주로 희극에서 맹활약한 홍금보는 ‘강시’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에서 증권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증권감독관인 홍금보는 ‘여의도 마녀’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강직한 그는 팀장이 되자마자 한민증권의 비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10여 년간 한민증권이 연루되었다고 의심되는 주가 조작이 5건, 그와 관련해 3명이 자살하고 사주 일가가 빼돌렸다고 추정되는 비자금 규모가 1,000억 원이 넘는다.

자본주의가 여러모로 문제가 많지만,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은 그나마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주가 조작은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주가 조작은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 속에서 자행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최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1심에서 김건희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선고되어 공분을 사고 있다.

한민증권 회장 강필범은 갑질 때문에 경영에서 잠시 물러나는 척하고, 그의 아들 사장 강명휘가 경영을 이끈다. 강명휘는 한민증권을 비리의 온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기업으로 이끌고자 했다. 모든 것을 바로잡고자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홍금보와 접촉하며 비자금 회계 장부를 건네려고 한다. 강명휘는 홍금보에게 목숨 줄을 맡길 믿을 만한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목숨 줄은 사주 일가도 아닌 한민증권의 것이었으며, 자기에게 다가올 불이익을 감수하고자 했다. 하지만 강명휘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비자금 회계 장부도 사라지고 수사는 결국 무혐의로 종결된다. 홍금보는 강명휘가 죽은 뒤에야 그의 진심을 확인하는데, 강명휘의 죽음 뒤에 냉혈한인 그의 아버지 강필범이 있음을 암시한다.

증권감독원에서 좌천당한 홍금보는 자본시장조사국 국장 윤재범과 협업하에 한민증권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비자금 회계 장부를 찾기 시작한다. 홍금보와 한민증권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년 전 한민증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첫 직장이던 회계 법인에서 쫓겨났고, 애인과 헤어지기도 했다. 동생 홍장미의 신분을 빌려 위장 취업한 홍금보는 이제 자기에게 메일을 보냈던 예삐와 비자금 회계 장부를 찾으면 된다.

35세 직장 여성이 20세 신입 여직원으로 신분을 바꾸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귀엽기도 하다. 동생의 도움으로 머리 모양부터 말투까지 20대의 행동 방식을 배운다. 홍금보는 예삐를 찾기 위해 강명휘의 비서가 머문 미혼 여성 기숙사에 들어가 그의 방짝이 되는 데 성공한다. 강명휘의 비서 고복희, 한민증권 마강 지점 창구 직원 김미숙 그리고 그의 딸 봄이, 신분을 숨긴 회장 강필범의 딸 강노라 방짝들은 이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작용한다.

한창 잘 나가던 홍금보는 급전직하하고 신입 사원으로 잠입한다. 비자금 회계 장부를 찾는 본연의 업무보다 온갖 회사의 일을 너무도 잘 해내고 만다. (화면 출처 = ‘언더커버 미쓰홍’, 유튜브 tvN DRAMA 동영상 갈무리)
한창 잘 나가던 홍금보는 급전직하하고 신입 사원으로 잠입한다. 비자금 회계 장부를 찾는 본연의 업무보다 온갖 회사의 일을 너무도 잘 해내고 만다. (화면 출처 = ‘언더커버 미쓰홍’, 유튜브 tvN DRAMA 동영상 갈무리)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그러나 ‘미쓰홍’의 커피, 카피, 코피 풍경

때는 본격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시기다. 아직 월급 봉투가 있고, 대기업에서도 인트라넷을 만들어 가는 시기다. 증권가 소식은 ‘여의도 해적단’이라는 피시 통신으로 유통된다. 인터넷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 가능해진 것도 1997년이다. 이렇게 세상이 급격하게 변해 가지만, 직장 상사는 메일로 보내면 될 서류 처리 같은 일을 부하 직원에게 떠넘긴다. 수많은 ‘미쓰’들이 온갖 자잘한 일을 떠맡는다. 그들을 부려 먹으면서 남성 상사나 직원은 근무 태만이 일상이다.

‘미쓰 홍’이라는 명칭은 한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호칭이다. 영어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지칭하는 ‘미쓰’는 한국에서 여성을 하대하거나 만만하게 보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 ‘커피, 카피, 코피’에서도 나오듯 드라마 속 여성 직원들은 직장 상사의 온갖 허드렛일을 한다. 커피는 물론 담배 심부름, 구두 심부름, 도시락 심부름 투성이다. 잘 나갔던 홍금보 또한 “스무 살 고졸 말단 사원 홍장미”를 되뇌며 여느 직장 여성처럼 어처구니없는 직장의 관행을 다 감수한다. 일단 그 어떤 일보다 비자금 회계 장부를 찾는 일이 가장 먼저니까.

기숙사 방짝 4인방, 여성 간의 잔잔하고 따뜻한 연대를 보여 준다. (화면 출처 = ‘언더커버 미쓰홍’, 유튜브 tvN DRAMA 동영상 갈무리)
기숙사 방짝 4인방, 여성 간의 잔잔하고 따뜻한 연대를 보여 준다. (화면 출처 = ‘언더커버 미쓰홍’, 유튜브 tvN DRAMA 동영상 갈무리)

그녀의 회심은 어디로 향할까?

IMF 일보 직전 한민증권을 둘러싼 온갖 탐욕스러운 인간 군상이 난립한다. 회장 강필범은 ‘뉴코리아 펀드’라는 불량 상품을 만들어 내놓는다. 사주 일가는 경영권 승계라는 잿밥에 눈이 멀었다. 위기를 틈타 DK 벤처스는 성큼성큼 한민증권을 잡아먹으려 한다. 홍금보의 옛 애인 신정우는 DK 벤처스의 앞잡이로 한민증권의 사장이 된다. 홍금보의 한탄이 흘러나온다.

“식당에서 상한 음식을 팔면 돼요, 안 돼요? 증권사에서 당장 부도가 나도 놀랍지 않을 부실 기업만 모아서 펀드를 팔면 돼요, 안 돼요? 그러니까요, 어? 서민의 지갑을 두텁게 해야지 털어먹으면 되겠냐고요.”

많은 회사가 도산할 만큼 사태가 심각한 상황에서, 출시된 이 불량 펀드는 매우 위험한 상품이지만 높은 수익률을 미끼로 많은 사람이 가입하게 했다. 당연히 IMF가 터지자마자 급격히 하락한다. 홍금보의 아버지도 이 펀드를 샀다가 막심한 손해를 본다. 회사의 책임 있는 사람들은 나 몰라라 하고, 말단 직원들에게 책임을 넘긴다. 한민증권 마강 지점에서 일하는 방짝 김미숙이 고객에게 고소당해 자살을 시도하자, 홍금보는 각성하기 시작한다.

경영난에 처한 한민증권은 검은 머리 외국인의 자금을 들여 오고자 하고, 그 조건으로 직원 40퍼센트를 감축하기로 한다. 회장이 전횡한 자금만 풀어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이익은 개인에게 손해는 사회에게” 돌린 재벌의 치트키를 그대로 써먹는다. 부서장은 정리 해고 명단을 적어야 하는데, 거기에 자기 이름만 달랑 적고 쓸쓸히 회사를 떠나가는 이도 있다. 하지만 아주 신나 하며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직원을 적어 대는 이도 있다.

홍금보는 우여곡절 끝에 예삐도 찾고 비자금 회계 장부도 찾지만, 모든 것이 소용 없어진다. 정부에서는 경제 위기 때문에 기업의 비리를 들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홍금보는 증권감독원으로 복귀하는 듯했지만, 사표를 던지고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새 국면에서 드러나는 여러 인물의 반응이 이 드라마의 별미가 될 것이다.

“비자금을 훔쳐서 한민증권 주식을 사자고요. 강필범의 경영권을 뺏고 신정우와 DK 벤처스의 도둑질은 박살 내고 그럼 한민증권도 한민증권에서 일하는 사람도 지킬 수 있어요.”

사실 올곧고 원칙에 충실했던 홍금보는 점점 눈물도 많아지고, 사람에게 공감도 하기 시작한다. 정말 그는 많이 달라졌다. 미숙의 딸 봄이에 대한 태도만 해도 예전의 그가 아니다. 일만 보던 그가 사람을 보기 시작했다. 친구가 되어 준 사람들이 있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비자금 회계 장부를 통해 한민증권을 응징하겠다는 최초 목표는 좌절되었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해법을 찾아간다. 비자금을 찾아 한민증권의 주식을 매입해 DK 벤처스 같은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부터 회사를 지키는 것이다. 여성 직장인의 애환과 기업 사냥꾼에 맞선다는 내용에서는 1995년을 배경으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과도 통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커피 심부름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이런 대사가 슬프다. “상고 출신이라고 진급도 못하고 잔심부름만 하다가 사라지겠지.” (화면 출처 = ‘삼익그룹 영어토익반’)<br>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커피 심부름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이런 대사가 슬프다. “상고 출신이라고 진급도 못하고 잔심부름만 하다가 사라지겠지.” (화면 출처 = ‘삼익그룹 영어토익반’)

IMF 외환 위기는 우리의 삶을 엄청나게 바꾸었다. 30여 년 전 일이지만, 그 상처에서 온전하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도 되었고 대한민국의 세계 속 위상은 높아졌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이 궁극적으로 나아졌는지를 돌아보면 뭔가 허전하기도 하다. 드라마 속 IMF 풍경은 그 시절의 짠한 느낌을 불러온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 기숙사를 떠나는 여성 노동자들, 시민들은 나라를 구한다고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지만 재벌 경영주는 비웃기만 할 뿐이고, 기업의 책임 있는 이들은 자기 살 길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정의 실현을 위해 분투한 주인공 홍금보는 이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모험에 뛰어든다.

홍금보와 고복희의 협업으로 비자금을 찾는 데 성공한다. (화면 출처 =&nbsp;‘언더커버 미쓰홍’, 유튜브 tvN DRAMA 갈무리)<br>
홍금보와 고복희의 협업으로 비자금을 찾는 데 성공한다. (화면 출처 = ‘언더커버 미쓰홍’, 유튜브 tvN DRAMA 갈무리)
한민증권의 주식을 사들이는 작전을 개시하고, ‘여의도 해적단’의 선장이 본부장 알벗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이들의 작전에 우군이 하나둘 늘어 간다. (화면 출처 =&nbsp;‘언더커버 미쓰홍’, 유튜브 tvN DRAMA 갈무리)
한민증권의 주식을 사들이는 작전을 개시하고, ‘여의도 해적단’의 선장이 본부장 알벗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이들의 작전에 우군이 하나둘 늘어 간다. (화면 출처 = ‘언더커버 미쓰홍’, 유튜브 tvN DRAMA 갈무리)

드라마는 몇 차례 위기 상황이 찾아오겠지만 아주 뻔하게 시청자가 원하는 행복 결말로 마무리될 것이다. 얼핏 보면 보는 내내 유쾌하고 다소 과장된 전개로 시간 때우기 드라마처럼 비치지만 그 이면엔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성별과 학력에 따른 고질적 차별, 결국 많은 것을 구원해 내는 따뜻한 자매애 같은 가볍지 않은 요소가 촘촘히 엮여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신정우는 ‘여의도 마녀’로 불린 홍금보에게 ‘마녀의 운명은 공동체에서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라며, 경고성 악담을 퍼붓는다. 하지만 홍금보는 공동체에서 쫓겨날 일이 없다. 그는 이미 연대와 운명의 공동체를 이끄는 선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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