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만세 소동과 가톨릭교>
1930년 4월의 경성, 일제의 '문화 통치'가 조선인의 일상을 파고들던 그 시절, 기묘한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히라야마 세이사이(平山政十)라는 일본인 평신도가 쓴 <만세 소동과 가톨릭교>(萬歳騒動とカトリック教)다. 겉모습은 평범한 종교 서적처럼 보였으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독자는 서늘한 권력의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책의 권두(卷頭)를 장식한 것은 종교 지도자의 축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한반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친필 휘호와 서문이었다. 총독은 붓을 들어 네 글자를 적어 내렸다.
"신자부동(信者不動)"
믿는 자는 동요하지 않는다. 검은 먹물로 쓴 이 네 글자는 단순한 서예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식민지 조선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내린 '정치적 자가 격리 명령'이자, 영혼을 구속하는 '제국의 부적'이었다. 총독은 왜 직접 붓을 들고 종교 서적의 서문을 써 주었을까? 총칼로 육체를 지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 신앙의 영역까지 총독부의 깃발을 꽂고자 했다.
"움직임(動)"에 대한 공포, 3.1 운동의 트라우마
사이토 총독이 쓴 "부동"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편에 있는 "움직임"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1930년의 시점에서 제국이 가장 두려워한 '움직임'은 단 하나, 바로 11년 전 한반도 전역을 뒤흔든 3.1 운동이었다.
사이토는 서문에서 자신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1919년의 가톨릭 교도가 한 사람도 이 정치 운동(3.1 운동)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것이 가톨릭의 본질이자 미덕이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자 기만이다. 안중근 의사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었고, 3.1 운동 당시에도 수많은 평신도와 신학생이 태극기를 품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총독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신앙인은 독립운동 같은 '망동'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틀이었다.
총독은 "신자부동"이라는 주문으로 교묘한 이분법을 제시했다. 움직이는 자(독립운동가)는 신앙심이 깊지 않고, 질서를 어지럽히며, 일시적 감정에 휘둘리는 '폭도'일 뿐이다. 이에 반해 움직이지 않는 자(순응하는 신자)는 신앙이 독실하고, 사리 분별이 있으며, 제국의 통치에 협조하는 '모범 시민'이다.
이 논리 앞에서 독립을 향한 조선인의 열망은 '신앙 없는 자들의 소란'으로 격하되었고, 침묵과 굴종은 '성스러운 신앙의 증거'로 둔갑했다.
로마서 13장의 오독(誤讀), 저항을 '죄악'으로 만들다
총독이 휘호로 압박하자, 저자 히라야마 세이사이는 신학적 논리로 이를 뒷받침했다. 그는 책의 성경 로마서 13장을 집요하게 인용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느님의 명을 거스름이니라.“(10-11쪽)
보편적 종교 진리인 '질서 존중'이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제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으로 변질되었다. 히라야마는 이 구절을 근거로 "현재 조선을 통치하는 일본 천황과 총독부의 권위 또한 신이 부여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 논리는 조선인 신자들에게 끔찍한 딜레마를 안겨 주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태극기를 드는 순간, 그는 제국의 반역자가 되는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일제는 종교적 양심을 인질로 삼아 저항의 싹을 잘라 내려 했다. 이것이야말로 총칼보다 더 잔인한 '영적 식민지화'였다.
히라야마는 더 나아가 당시 청년들 사이에 퍼지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을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착하는 저급한 인생관(유물론)"이라고 비난한다. 대신 식민 지배의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내세의 행복만을 구하는 태도를 '고상한 인생관'이라 추켜세운다. 종교를 현실의 모순에 눈감게 만드는 아편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공범자들의 기록, 뮈텔 주교의 편지(1919.12.25)
총독부가 기획하고 저자가 집필한 이 연극에는 또 한 명의 주연 배우가 등장한다. 바로 당시 천주교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다. 이 책은 뮈텔 주교가 3.1 운동 직후 신자들에게 보낸 공문(경고문)을 자랑스럽게 수록하고 있다.
이 문서는 1919년 12월 25일, 즉 3.1 운동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작성되었다. 뮈텔 주교는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엄명한다.
"교회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 신도들은 이러한 망동(독립운동)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국법을 준수하며 질서를 지켜라.“(24쪽)
'정교분리'라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어, 교회 지도부는 사실상 침략자의 편에 섰다. 민족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갈 때, 주교는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는 대신 "소란 피우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꾸짖었다. 히라야마는 뮈텔의 이러한 태도를 두고 "가톨릭 교도들이 경거망동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훌륭한 사례"라고 극찬한다.
"신자부동"이라는 총독의 휘호는, 뮈텔 주교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침묵과 방조 위에서 완성될 수 있었다.
붓으로 쓴 감옥, 그리고 탈출
히라야마는 일제의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일선(일본과 조선) 양 민족의 융화는…… 오직 가톨릭이라는 동일한 신앙 안에서만 가능하다.“(26쪽)
헌병의 총칼로는 조선인의 육체를 가둘 수 있어도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를 통한 내선 융화'를 꿈꾸었다. 조선인의 영혼을 가톨릭이라는 틀에 가두고, 그 틀을 일본 제국에 충성하는 방향으로 굳히는 것. 그것이 사이토 총독이 "신자부동"이라는 네 글자에 담은 진짜 욕망이었다.
그러나 1930년의 이 치밀한 기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일제는 "믿는 자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문을 걸었으나, 깨어 있는 조선의 신앙인들은 "믿는 자이기에 불의에 맞서 움직였다." 안중근의 총성부터 3.1 운동의 함성, 그리고 이름 없는 신자들의 저항까지, 진정한 신앙은 억압의 붓글씨 아래 갇혀 있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박물관 수장고에나 있을 법한 이 낡은 책을 다시 꺼내 읽는 이유는 명확하다. 권력이 종교의 언어를 빌려 "가만히 있으라"고 속삭일 때, 그 매혹적인 평화의 논리 속에 숨겨진 억압의 칼날을 직시하기 위함이다. 사이토의 붓글씨는 이제 빛바랜 종이 위에 박제되었지만, 그날 조선인들이 보여 준 '움직임'은 여전히 살아 있는 역사가 되어 흐르고 있다.

이규수
동농문화재단 부설 강덕상자료센터장. 한국근현대사 전공. 역사문헌을 바탕으로 근현대 일본인의 한국인식과 상호인식 규명에 관한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강덕상 소장자료의 정리와 분류, 목록화 작업 등의 기초작업을 통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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