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국의 운명"으로 본 3.1운동의 사회사적 재구성
해방 직후인 1947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재일조선인 작가 김홍원(金紅園)은 <조선인 사냥>(朝鮮人狩り)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의 소설을 탈고한다. 이 텍스트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 조선인이 겪은 수난과 저항을 집대성한 ‘사회적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작가는 소설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식민지 역사의 양면성을 포착했다. 제1부는 '3.1사건, 조국의 운명', 제2부는 '9.1사건, 조선인 사냥'이다. 이러한 구성은 식민지 시기 조선인이 겪은 '피의 역사'를 집대성하려는 작가의 거대한 기획이었음을 보여 준다.
제목이 <조선인 사냥>이라는 점은 매우 충격적이고 직설적이다. 이는 일제가 조선인을 인간이 아닌 '사냥감(짐승)'으로 취급했음을 고발하는 제목이다. 제1부는 저항의 서사로써 3.1 운동을 다뤘고, 제2부에서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 대량 학살을 다뤘다. 제1부에서 3.1 운동을 통해 조선인의 저항 의지가 확인되었기에, 일제는 관동대지진이라는 혼란을 틈타 조선인을 조직적으로 '사냥(학살)'했다는 논리를 펼쳤다.
김홍원은 한국 문학사나 독립운동사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나, 해방 직후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조선인 1세대 작가이자 사상가로 파악된다. 그는 1940년대 후반,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는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이 결성되어 재일 조선인의 권익 옹호와 민족 교육,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 전파에 주력하던 때였다. 그는 철저한 사회주의자이자 반제국주의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해석하고, 3.1 운동을 '계급 투쟁'으로 규정하는 등 당시 좌파 진영의 이론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일본어 세대가 되어 가는 재일 조선인 청년들에게 "우리가 왜 일본에서 차별받으며 살고 있는가?", "우리의 부모 형제는 일제에게 어떤 일을 당했는가?"를 알리기 위해 일본어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즉, 이 책은 소설 형식을 빌린 '재일 조선인을 위한 역사 교과서'였다. 일본 땅에서 잊혀 가는 조선인들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한 재일 조선인 지식인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저항의 기록'이다.
기억의 투쟁, 왜 지금 ‘김홍원’의 3.1운동인가?
역사는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동등한 권력을 갖지는 않는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 온 3.1 운동이 민족 대표 33인의 고귀한 선언과 유관순 열사의 성스러운 희생으로 형상화된 ‘박제된 신화’라면, 해방 직후인 1947년 9월 재일 조선인 작가 김홍원이 일본 도쿄에서 탈고한 소설 <3.1사건, 조국의 운명>은 그 신화의 이면에 감춰진 피 냄새 나는 현실, 즉 ‘생존’과 ‘계급’의 문제를 전면으로 호출한다.
작가 김홍원에게 1945년의 해방은 완전한 끝이 아니었다. 조국은 남북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고, 일본에 남겨진 조선인들은 ‘해방 국민’이 아닌 ‘제3국인’으로 분류되어 또다시 관리와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1948년의 절박한 시공간 속에서, 그는 3.1운동을 다시 불러낸다. 그에게 3.1운동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회고담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사슬을 끊고 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려 했던 ‘미완의 혁명’이자, 해방된 조국에서 완수해야 할 ‘제2의 건국 투쟁’의 교과서였다.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이 희귀한 1차 사료를 해부하여, 107년 전 그날 짚신을 신고 거리에 섰던 이름 없는 주역들의 목소리를 복원해 보고자 한다. 그들의 외침은 단순한 “만세”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를 향한 처절한 절규였다.
풍요의 역설, “측량은 곧 약탈이었다!”
기존의 주류 사학계가 3.1 운동의 발발 원인을 ‘고종 독살설’에 의한 반일 감정의 고조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같은 국제 정세의 변화에서 찾았다면, 김홍원은 철저하게 기층 민중의 ‘경제적 파탄’을 운동의 근본 원인으로 주목한다.
소설의 무대는 서울에서 60리 떨어진 가상의 농촌 ‘부천’(富川)이다. ‘부유한 내’라는 이름과 달리, 이곳은 일제의 수탈로 신음하는 기아의 땅이다. 작가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진행된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을 정조준한다. 일제는 이것이 근대적 소유권을 확립하는 과정이라고 선전했으나, 김홍원은 소설의 첫 장에서 그 본질을 꿰뚫는다.
“이 부천군은 옛날에는 이름에 걸맞게 부유했다……그러나 1910년 합방 후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인들이 들어와 측량이라는 미명 하에 농민의 토지가 약탈되었다.” (9-10쪽)
토지는 농민에게 생명이자 조국 그 자체였다. 측량 기사가 꽂은 말뚝 하나에 대대로 경작해 온 땅을 뺏긴 농민들에게, ‘나라를 잃었다’는 말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당장 굶어 죽게 되었다’는 물리적 실체였다. 식민지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이 거대한 수탈은 농촌 공동체를 붕괴시켰고, 농민들을 3.1 운동이라는 거대한 폭발의 장으로 내몰았다.
식민지 지주제와 빈곤의 악순환
주인공 성녀(成女)의 가정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의 희생양이다. 성실한 자영농이었던 아버지는 토지를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한다. 그들이 겪는 빈곤은 개인의 나태함이나 무능 때문이 아니다.
“1년 내내 뼈가 부서져라 일해도 1년의 이자를 갚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11쪽)
생산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모순. 소설은 식민지 지주제가 고리대금업과 결합하여 조선 농민을 착취하는 구조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에게 ‘독립’은 태극기를 흔드는 상징적 행위 이전에, 당장 입에 풀칠할 ‘내 땅’과 ‘생존권’을 되찾는 투쟁이었다. 3.1운동의 저변에는 이처럼 거대한 ‘토지 혁명’의 에너지가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법(法)이라는 이름의 제도적 폭력
일제는 ‘법치’를 내세웠으나, 그 법은 철저히 식민 지배를 위한 도구였다. 성녀의 오빠 룡단(龍端)은 마름 태섭의 횡포에 항의하다가 오히려 절도범으로 몰려 구속된다.
“조선인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 (16쪽)
일본 순사는 사실 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그에게 조선인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처벌의 대상일 뿐이다. 룡단의 투옥은 식민지 사법 체계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도구가 아니라, 저항하는 민중을 격리하고 탄압하는 ‘제도적 폭력’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법이 지켜 주지 않는 현실에서, 민중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법 밖의 저항’, 즉 혁명뿐이었다.
교실에서의 전쟁, 거짓된 역사와의 결별
3.1 운동의 주력 부대였던 학생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일제는 학교를 통해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를 주입하려 했다. 그러나 소설 속 학교는 순응의 장소가 아닌 각성의 장소였다. 미국 유학파 교사 류동식(柳東植)은 학생들에게 ‘진짜 역사’를 가르치며 저항의 불씨를 지핀다.
“이순신 장군은 세계 해전 사상 처음으로 철갑선을 발명하여 일본을 물리쳤다……고려의 멸망은 민중의 죄가 아니라 썩은 지배층의 죄다.” (24쪽)
류 선생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학생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의식화 과정이었다. 역사를 배운 학생들은 일본인 교장이 강요하는 식민 사관을 “비웃으며”(24쪽) 스스로를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는 3.1 운동이 우발적인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치열한 대항 교육과 지적 각성의 결과물임을 시사한다.
적의 실체 규명과 ‘반자본주의’의 깃발
이 소설이 역사학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지점은 3.1운동의 성격을 ‘반제·반자본 투쟁’으로 규정한 것이다. 1919년 2월 28일, 거사를 앞두고 배포된 격문(檄文)은 적의 실체를 명확히 한다.
“친애하는 학생 제군에게 고한다……우리 강토는 일본 제국주의와 자본가, 그리고 그들의 앞잡이인 관료들에게 유린당했다.” (44쪽)
김홍원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단순한 민족적 억압이 아닌, ‘자본가 계급의 착취’와 동일시했다. 이는 3.1 운동을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이 중첩된 ‘인민 해방 운동’으로 해석한 것이다. 1947년 당시 재일 조선인 사회와 좌파 진영이 지향했던 ‘새로운 조국 건설’의 이념적 지향점이, 1919년의 3.1운동 해석에 투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짚신의 행진, 민중의 결의와 미학
지식인들이 선언서를 인쇄하며 이념을 다질 때, 기층 민중은 무엇을 준비했는가? 거리의 늙은 노인은 출소한 청년 룡단과 성녀에게 가죽 구두 대신 질긴 ‘짚신’을 건넨다.
“이것은 훌륭해. 가죽신 따위는 비교도 안 돼.” (61쪽)
이 장면은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순간이다. 화려한 근대(가죽신)를 거부하고 투박한 전통(짚신)을 선택한 것. 그것은 내일의 싸움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피를 흘리며 오래도록 걸어야 할 고난의 지구전(持久戰)임을 직감한 민중의 비장한 결의였다. 짚신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끈질기게 버티겠다는 조선인의 의지 그 자체였다. 그들은 짚신을 신고 제국주의의 아스팔트 위를 행진할 준비를 마쳤다.
3월 1일, 해방구의 출현
운명의 날, 파고다 공원과 남대문 일대는 거대한 해방구가 되었다.
“하늘에서 종이 눈(삐라)이 내리듯 격문이 흩날렸다……학생과 노동자, 상인이 하나가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71쪽)
소설은 이 순간을 “노예 상태의 사슬을 끊고 자유를 획득하는 인민 해방의 날”로 묘사한다. 학생, 기생, 노동자, 상인 등 계급과 신분을 초월한 연대는 식민 통치의 근간인 ‘분열 통치’를 무력화시켰다. 만세 소리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억눌린 자들의 존재 증명이자 해방의 언어였다.
일제의 진압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었다. 작가는 진압 경찰을 “하얀 늑대”라는 야수로 묘사한다.(83쪽) ‘문명’과 ‘근대’를 자처하던 제국주의자가 실상은 가장 야만적인 짐승에 불과함을 폭로하는 역설적 비유다. 깨진 유리에 찔린 성녀의 피와 그를 지키려다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순옥의 신음은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증언하는 물증이다.
고문과 순교, “육체는 죽여도 혼은 산다”
감옥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룡단은 거꾸로 매달려 코에 물을 붓는 ‘물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
“네 놈들은 짐승이다. 내 육체는 멸할지라도, 내 혼까지는 멸하지 못한다!” (105쪽)
이 대사는 식민 지배의 한계를 폭로한다. 제국주의는 조선인의 몸을 가두고 부술 수는 있었으나, 그 내면의 독립 의지(혼)는 결코 정복할 수 없었다. 룡단의 죽음은 패배가 아닌 ‘순교’였으며, 이는 남은 자들에게 저항의 불씨를 남겼다. 또한 성녀는 회유하는 형사에게 "나의 양심이 시킨 일"이라며 당당히 맞선다.(96쪽) 이는 3.1운동이 누군가의 선동이 아닌, 개개인의 도덕적 자각에서 비롯된 시민 혁명임을 증명한다.
김마리아와 여성의 지도력
유치장에서 만난 실존 인물 김마리아(金マリア)는 절망에 빠진 성녀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당신도 훌륭한 상처를 입지 않았습니까.” (91쪽)
소설 속 김마리아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그는 고문을 ‘영광스러운 상처’로 재해석하며, 3.1 운동이 실패가 아니라 더 큰 싸움을 위한 준비 과정임을 일깨우는 탁월한 전략가이자 지도자다. 작가는 그를 통해 여성들이 독립운동의 보조자가 아닌, 고통을 연대로 승화시키는 주체였음을 역설한다. 팩션 기법을 통해 등장한 김마리아는 텍스트에 강력한 역사적 사실성을 부여한다.
상하이로의 탈출과 제2의 투쟁
결말부에서 김마리아는 병보석을 틈타 상하이(上海)로 탈출하고, 성녀도 그의 뒤를 따른다.
“성녀는 희망을 가졌다……이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성채를 공략하는 첫걸음이다.” (124-125쪽)
맨손의 만세 시위는 끝났으나, 그 정신은 압록강을 건너 조직적인 무장 투쟁으로 진화했다. 작가 김홍원은 1947년의 후기에서 “일본 자본주의의 과잉 생산과 공황이 식민 침략의 원인”이었음을 상기시키며,(128쪽)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제국주의적 모순과 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소설의 끝은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투쟁을 위한 도돌이표다.
3.1 운동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
김홍원의 소설 <조국의 운명>은 3.1 운동을 박제된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혁명’으로 복원했다. 107년 전 그날, 짚신을 신고 피 흘리며 걸었던 민중의 발걸음은, 단순히 국권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향한 거대한 행진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야 할 3.1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육체는 죽여도 혼은 죽일 수 없다”는 룡단의 외침처럼, 불의한 권력과 차가운 현실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양심’과 ‘저항 정신’일 것이다. 1948년의 어둠 속에서 김홍원이 펜 끝으로 다시 켜든 1919년의 횃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역사의 정의를 묻고 있다.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규수
동농문화재단 부설 강덕상자료센터장. 한국근현대사 전공. 역사문헌을 바탕으로 근현대 일본인의 한국인식과 상호인식 규명에 관한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강덕상 소장자료의 정리와 분류, 목록화 작업 등의 기초작업을 통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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