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톨릭평론> 50호(2025년 겨울, 우리신학연구소)에 실린 글입니다.

올해처럼 ‘연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적도 없다. 매일같이 드나드는 사무실 입구에도 ‘연대와 마주침’이라는 표어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그럼에도 낯설고 생경하다. 차라리 광장에서나 외치는 ‘단결’, ‘투쟁’ 같은 표현이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올해는 연대를 외친 횟수만큼이나 연대가 과연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궁리했다. 하지만 좀처럼 와닿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불법 계엄이 발생한 지도 어느덧 1년이다. 장본인은 파면되었고, 정권 교체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어 떤 사람의 삶과 존엄이 여전히 무참히 짓밟히고, 또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계엄 상황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불법은 수습되기는커녕 혐오와 폭력으로 진화해 한국 사회에 기생하기 시작했다.

계엄이 뿌리고 간 분열의 씨앗

4월 17일 밤의 사건은 파면된 대통령의 계엄 선포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과잠(대학교 학과 점퍼)을 입고 태극기를 흔드는 수백 명의 청년 무리가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들이닥쳤다. 건대 양꼬치 거리로 널리 알 려진 이곳은 중국계 이주민 밀집 지역이자 국적 구분 없이 모두가 즐겨 찾는 명소다. 한창 저녁 장사 중인 골목을 극우 시위대는 활보하며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쏟아냈다. ‘짱X! 북괴! 짱X!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는 혐오로 점철된, 이른바 ‘짱북송’으로 불리는 노래가 동네에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이곳의 가게는 대부분 중국계 이주민이 경영하고 있었다. 위압적인 분위기에 서둘러 셔터를 내린 사장도 있었고, 노골적인 모욕을 견디다 못한 종업원이 뛰쳐나와 항의하기도 했다. 종업원의 항의는 무력했고, 이내 수십 명이 가게 앞으로 몰려와 욕설과 비하를 쏟아냈다. 그리고 해당 가게는 이튿날부터 극우 커뮤니티의 ‘좌표 찍기’로 이른바 ‘별점 테러’를 당해야만 했다. 카카오맵에선 600여 개 후기가 달려 있었고, 대부분 건대 난동 이후에 올라온, 음식평과는 전혀 무관한 인종차별적 댓글이었다.

건대 난동이 충격적인 것은 그 폭력성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혐오가 너무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데 있다. 증오 범죄 연구자 브라이언 레빈의 ‘혐오 피라미드’ 이론에 따르면, 혐오는 단계적으로 양상이 달라진다. 선입견 방치가 혐오 표현과 행위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폭력 행위도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건대 난동은 고삐 풀린 혐오가 한국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보여 준 상징적 사건이다. 지금 우리는 혐오 표현이 혐오 범죄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서 있다. 지금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혐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같은 참극이 재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물며 한국(조선)은 1931년 화교 학살이라는 어두운 역사도 가지고 있다.

‘혐중’ 대항의 몇 가지 파편들

건대 난동 이후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언제든지 또 다른 약한 고리를 표적 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실제로 극우 커뮤니티에서는 ‘한 번 더 해 달라’, ‘대림동으로 가자’는 선동이 수시로 포착되었다. 기우이기를 바랐지만 “YOON AGAIN(윤 어게인)”을 외치는 극우 세력은 기어코 전장을 대림동으로 옮겨왔다. 7월 11일 저녁 7시 30분, 대림역 11번 출구 인근에서의 집회를 예고했다. 선동 포스터에는 “반국가 세력과 CCP에게 경고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성실하게 일하며 일상을 영위하는 대림동 이주민은 일순에 ‘반국가 세력’과 ‘잠재적 간첩’으로 등치되었다.

사실 대림동이 손쉬운 혐오의 표적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 대중이 소비하고 유통하는 대림동의 피상적 이미지는 대개 영화 한 편에서 기인한다. 2017년에 개봉해 565만 명 관객을 동원한 영화 '청년경찰'. “올여름, 최고의 오락영화!”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억울과 설움을 대가로 조작한 저렴한 ‘오락’이었다. 영화는 대림동을 여성을 납치해 난자를 적출하고 판매하는 ‘범죄 소굴’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범죄 일당은 늘 그래 왔듯이 관행처럼 중국 동포로 설정되었다. '범죄도시', '신세계', '차이나 블루', '황해' 등 반복되는 문제적 재현 때문에 중국계 이주민의 이미지는 ‘잔혹한 범죄자’로 굳어졌다. 따지고 보면 극우 세력이 아무런 윤리적 가책 없이 대림동에 들이닥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간 대림동을 향한 혐오가 규제되지 않은 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대림역. (사진 출처 = Flickr, Republic of Korea)
대림역. (사진 출처 = Flickr, Republic of Korea)

집회 소식을 사후에 전해 들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건대 난동과 달리 이번에는 무언가를 하자는 여론이 기저에 흘렀다. 혐오의 준동을 더는 방치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모이기 시작했다.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는 플랫폼씨, 지구촌동포연대, 각색모임 등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발 빠르게 대응 방법을 논의했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제조차 없는 나라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대림동의 방파제가 되기로 했다. 집회 정보를 입수한 시점이 이틀도 남지 않은 마당에 집회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집회 신고를 할 수 있더라도 그런 방식은 피하고 싶었다. 집회나 시위가 익숙지 않은 이주민에게 맞대결의 양상은 그 자체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혐오에 맞서는 시민사회는 동일한 시간대에 극우 집회 장소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자 회견을 갖기로 했다.

기자 회견 조직을 위한 연대 단위를 모으기 시작했다. 많은 단체가 호응해 주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불과 하루 만에 60여 개 시민사회 단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동 주최 연서명에 참여했다. 그리고 당일 예고된 기자 회견 시간에 이르자 다양한 배경과 동기를 가진, 동원되지 않은 수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퇴근 후 바로 현장으로 달려온 직장인도 있었고, 당일에 급히 ‘번개를 치고’ 삼삼오오 모인 이름 모를 이웃도 있었다. 많은 사람은 공존과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손팻말을 직접 준비하기도 했다. ‘여기(대림동)는 공존과 환대의 거리 입니다’가 적힌 손팻말은 인증샷 소품으로 인기였다. 구태여 머릿수로 승패를 가리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그날은 모두에게 ‘연대가 혐오를 이긴 역사’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불법 계엄 이후 극우 세력의 부상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반혐오 세력의 결집이 괜히 뿌듯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목격한 건 참담함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차별을 이기고, 혐오보다 힘이 센 연대를 보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엔 소수자의 삶을 지키려는 여러 진보 정당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비롯해 한국의 구조적 차별에 맞서 싸워 온 시민 단체들이 함께했습니다. 대림동을 비롯해 현장에서 이주 배경 청소년을 직접 만나고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들도 동참했습니다. 국적의 구분 없이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참석한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비롯한 여러 노조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대림동에서 공부하는 이주 배경 고등학생, 대림동에 애정을 듬뿍 갖고 계신 지역 주민들, 대림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동포 단체, 모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발언하는 중에 뜨거운 무언가가 자꾸 솟구쳤다. ‘아, 이것이 연대의 감각이구나’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날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도 하나 있다. 보통 집회나 기자 회견 때면 연대와 저항의 상징인 깃발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수십 개 단체가 함께해 준 것에 비해 펄럭이는 깃발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연대 단위들이 현장에서 일제히 깃발을 내린 것은 기자 회견 직전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의 작은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그동안 대림동과 그곳을 살아가는 이주민이 받은 차별과 질시에 비하면 한국 시민 사회의 연대 움직임이 미미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림동 이주민은 한국 시민 사회에 대한 이해도 전무하고, 그런 차별에 적극 대항하는 ‘우군’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대림동에 와서 떠드는 사람들에 대해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반감을 표출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아무리 취지를 설명하고 현수막에 명시해도 운동의 언어가 생소한 당사자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신들을 필요 없는 정쟁에 끌어들인다고 오해할 여지도 다분히 있기에 꺼낸 제안이었다.

"대림동 주민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오히려 그간 그들과 라포(신뢰 관계)를 꾸준히 형성하지 못한 저희 운동을 성찰하는 계기, 당사자들과 함께 차별·혐오에 대항하는 시험적 실천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주제넘게 제안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여러 발언 메시지는 가급적 쉬운 언어로 이주민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또 깃발 같은 대림동 주민 입장에서 다소 ‘위압감’을 느낄 만한 장치 사용은 최소화해 주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자리에 함께한 단체들은 일제히 제안에 화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유형의 깃발을 잠시 내리는 대신 이주민과 보이지 않는 연대의 깃발을 서서히 올렸다. 그리고 이내 ‘우리’의 연대를 ‘모두’의 연대로 확장하려는 노력의 결과를 받아 보게 되었다.

혐오의 사슬은 대림동에서 끊어져야

9월 25일 밤, 극우 세력은 대림동에서 또 한 번 ‘혐중 집회’를 예고했다. 지난 7월의 집회가 개인 유튜버의 일탈이었다면 이번에는 본진이 들이닥치는 셈이었다. 그간 줄기차게 해 오던 명동에서 ‘혐중 집회’가 제한 통고를 받자, 중국 동포를 비롯한 다수 이주민이 모여 사는 대림동으로 우르르 몰려왔던 것이다. 거기에 맞서 또 한 번 대항 기자 회견을 준비했다. 그런데 지난번과는 확연히 달라진 대목이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 중심으로 모여서 이주민을 응원했던 지난 기자 회견과 달리 당사자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

7월 대응을 지근 거리에서 목도한 대림동 중국 동포 단체와 주민들은 자기 일처럼 나서 준 연대 시민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한편,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중국동포단체 공동대응협의체’라는 임시 기구를 조직하고, 직접 기자 회견을 제안하며 한국 시민사회에 연대의 손길을 요청하는 데 이르렀다. 사실 중국계 이주민이 행동에 나선다는 건 여간 큰 결단이 아니다. 살아온 환경상 시민운동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뿐더러, 현행 출입국 관리법이 외국인의 이른바 ‘정치 활동’을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소수자의 목소리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데, 결국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움직였다. 선주민 사회가 먼저 내민 연대의 손길에 대한 응답이었다. 맞손을 잡고 혐오의 사슬을 여기서 끊어 내리라는 의지가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 냈다.

그리고 9월의 대항은 대림동을 초월했다. 여기만 아니면 된다고, 혐오 세력이 대림동에서 떠날 것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혐오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 내지 않으면, 결국 또 다른 소수자 집단과 지역을 표적 삼을 것은 자명하다. 혐오의 (재)생산을 지금까지 충분히 목격해 오지 않았던가. 9월 25일 밤, 우리는 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혐중 집회’의 바로 맞은편에 진을 쳤다. 혐오 선동에 대한 사회의 지탄을 인식했는지 구호가 다소 온건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림동에 와서, 이주 배경 학생이 많이 재학 중인 학교 앞에서 자행하는 극우 집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편에서 고성능 확성기로 송출하는 구호가 들렸다. 사회자가 “한미 동맹 만세!”를 외치며 만세 삼창을 유도했다. 그런 우리는 “연대 만세!”를 외치며 맞불을 놓았다. 그날 연대의 감각은 현장에 있는 모두에게 아로새겨졌다.

대항 넘어 대안으로

현행 한국 법체계에서는 혐오 표현에 대한 정의는 물론, 인종차별적 폭력을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오래전부터 발의를 반복했으나, 소위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계속해 좌절되었고,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역시 제도적 틀은 있지만, 인종 차별 및 혐오 금지 조항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러한 법적 공백은 이주민 당사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며, 혐오와 차별이 구조적으로 심화하는 것을 방치한다.

옆 나라 일본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이 없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나이지만, 최소한 혐오 표현을 억제하기 위한 법적 장치는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민주당의 아리타 요시후 참의원이 발의한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대처법’이 2016년 6월 3일 시행되었으며, 그에 앞서 오사카시는 2016년 1월, 일본 최초로 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한국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이 지연되는 현실 속에서 최소한 ‘혐오표현금지법’이라도 임시적·보완적 조치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연대의 감각은 현장에 있다

한국의 혐중 문제를 궁구함에서 중국계 이주민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법 많이 들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일상에서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는 당사자는 그다지 없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인지하면서도 별도의 대응 필요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이 양가적인 감정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려고 노력했다. 당사자의 말을 빌리자면 실생활에서는 위협을 끼치는 사람보다 안위를 걱정해 주고 연대하는 이웃을 더 많이 만난다는 것이다. 극우 주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거꾸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요행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에게 관계의 빈곤은 상수다. 대중 매체에서 주목받고 쉽게 노출되는 건 자극적인 콘텐츠다. 관계의 빈곤 때문에 여론에 쉽게 영향받는 이주민들에게, 한국 사회에는 한 줌의 혐오 세력 외에 거기에 맞서는 건강한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는 것도 더없이 중요하다. 대항 집회는 그러한 목소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혐오의 폐해를 목도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그 재생산의 사슬을 끊어 버릴 적기다. 더 많은 현장과 대안을 용감하게 조직하자.

박동찬

중국 선양(瀋陽) 태생 동포 5세, 한국살이만 10년 이주인권 연구활동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한편,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를 통해 이주민·디아스포라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등과 환대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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